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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Jan 02. 2018

날씨가 방긋 웃는 듯 맑았다.

자전거와 대화하기







날씨가 방긋 웃는 듯 맑았다.








제주도 여행의 두 번째 날이 지고 있다.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오늘 찍은 사진들을 들쳐보며 내 마음과 가방에 가득 채워진 제주도의 흔적을 돌아보며 혹시나 잠이 들고일어나서 기억나지 않을까 걱정되어 블로그에 정리되지 않은 글들로 기록을 남겨 두었다. 살짝 숨 가쁜 일기처럼 글을 남기고 난 후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평소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뒤처지는 것이 있진 않을까 싶어 여행 중에 뉴스를 챙겨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핸드폰 안에 나열된 뉴스 소식 한 귀퉁이에 소심하게 보이는 '내일의 날씨'가 눈에 띄었다. '맑음' 다행이다. 자전거 위에서 비를 맞으며 달리고 싶진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서울이 아니라 제주도인데?' 다시 핸드폰을 켜고 제주도의 내일 날씨를 확인했다. '오전에 비'. 비라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야 할까?' '지금 우비를 사러 나갔다 올까?' 끝없이 이어지는 걱정의 마지막은 내 등에 업혀 함께 여행하는 짐이었다. 그중에서도 액자들. '내 짐이 젖는 것은 상관없지만 사람들에게 나눠 줄 액자가 젖으면 안 되는데...' 침대에서 내려와 액자들을 비닐봉지로 하나하나 싸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니 살짝 웃음이 나왔다. 전에 다니던 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 모습이었다. 예전 여행에서 내가 챙겨야 했던 것은 오직 '나' 뿐이었다. 또한 '나' 중심의 여행을 준비하고, 떠났었다. 여행을 통해서 내가 받고, 얻어가고, 배워가는 것만 생각했었고, 내가 힘들게 여행지까지 왔고, 나는 경비도 얼마 없으며 시간도 많지 않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했었다. 하지만 나보다 내가 만날 제주도를 더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에 따뜻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내가 먼저 수줍은 인사를 나눔으로 다시 돌아오는 따뜻한 인사를 받던 순간들은 '코를 세우고 상대방이 먼저 주기만을 기다리던 예전의 내 모습'을 무너뜨렸다. 
 크고 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작게나마 나를 나눠줄 때, 제주도와 여행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주었고, 자신을 나에게도 나눠주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내가 갖고 있는 작은 부분을 먼저 건네보는 쉬운 일인데. 그동안 나는 여행지에서 타지에 놓인 외로운 사람으로 혼자 정해버리며 외로워하고, 가난한 여행자라며 상처받고, 타인을 오해하며 여행해왔던 것은 아닐까. 


액자들을 봉지로 싸며 비가 내리면 어쩌나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다.


세 번째 날, 제주도의 아침 날씨는 방긋 웃는 듯 맑았다.








자전거와 대화하기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니 점점 변하는 나를 발견했다. 다름 아닌 혼잣말이 늘었다는 것. 처음에는 평소 보지 못했던 풍경이나 환경에 그저 감탄사만 내뱉었는데, 그런 감탄사조차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 정말 큰 외로움과 허전함을 동반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외롭거나 심심해서 하는 혼잣말은 더 외롭고 더 심심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함께 여행하는 자전거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대화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더 나아가 지나치는 해변이나 바다 그리고 나무들에게까지 말을 걸게 되었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였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멋지다. 방금 다녀온 카페 주인이 조금 쌀쌀맞아서 무서웠다. 한라산의 성격은 어떨까 등등.....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대답이 올 수 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자전거의 대답이 없으니 괜히 서운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지쳐서 침묵을 하게 되었다. 쉬지 않고 뜨거운 햇볕 아래서 달려가기도 힘든데, 쉬지 않고 재잘재잘 얘기하는 건 쓸데없는 체력 낭비는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마음속으로 자전거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지만, 그러다 보니 자전거도 나에게 대답해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힘이 들지 않고 마음껏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 하는 기분이다. 





여행이 지속될수록 나는 자전거와 더 깊이 친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친해지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언젠가 끝날 여행에 우리는 이별을 해야 하는데. 이별에 서툰 나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나는 여행 첫날에 혼자 하는 여행이 혼자만의 여행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자전거 덕분에 여행 내내 작은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넓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별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하게 보내기로 했다. 



괜히 울적한 마음에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 핸들을 꼬옥 잡고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해변을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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