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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Jan 09. 2018

숲으로 모여!

다시 너를 만나러 갈까





숲으로 모여!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게스트하우스 주인분께 주변에 가볼만한 카페가 있는지 물었더니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작은 카페 하나를 소개해주셨다. 소개해 주신 카페에 도착해보니 게스트하우스와 함께 운영하는 카페였다. 사실 조금 놀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주다니. 제주도에 정말 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있고 그 게스트하우스들은 서로 손님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며 서로에게 뾰족한 날을 세우고 있을 거라 생각만 했었다. 이렇게 서로 이웃으로서 함께 공생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 계산적이고 치열한 세상과 생각으로만 내 머리와 마음을 가꿔가고 있던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카페 이름은 달숲이었다. 숲에 들어가 쉬는 듯한 느낌으로 오후를 보내기 좋은 카페였다. 한쪽 벽에는 만화 책부터 소설책까지 다양한 책이 준비되어 있었고, 작고 아담한 크기의 카페는 원목가구들과 햇살이 잘 어우러져 오후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카페 이름을 보고 있자니 대학교 1학년 시절, 학교 주변에 있던 Forest라는 카페가 생각났다. 그 카페는 친구들과 내가 과제도 하고, 생일파티도 하고, 심심할 때 수다 떠는 장소로 사용하면서 일상을 함께한 카페였다. 우리는 그 카페를 숲이라고 불렀는데, 기분이 울적한 날이나 혹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숲으로 모여!'라고 얘기했었다. 달숲에 들어온 나는, 그때의 추억이 중복되면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친구들과 함께는 아니지만 여행 중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숲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순간 제주의 숲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오후가 아니기에 가까운 숲을 검색해 찾아가 보고 싶었다. 다행히 버스 한 번에 갈 수 있는 숲길이 있었고,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를 쭉 들이키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숲으로 향했다.

숲에 도착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여행 내내 파도소리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없어지고, 가끔가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전부인 숲에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숨소리마저 줄이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장난스럽게 얘기했던 ‘숲으로 모여’라는 말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런 숲이라면 함께 있는 사람이 애써 얘기해주지 않아도 마음을 읽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후로 제주여행을 떠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숲에 찾아가 볼 것을 추천하게 되었다. 제주도로 떠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바다를 보러 제주를 떠나지만, 하루쯤은 파도소리를 떠나 숲으로 들어가면 서로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제주를 느껴보라고 얘기한다.











제주 일기





해변도로를 따라 달리는 나의 여행길 옆에는 항상 바다가 함께 한다. 바다를 매일 보니 슬슬 '지겹다' 혹은 '질린다'라는 표현이 나올법한데, 바다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바다를 찾는 걸까?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바다의 반대편에서 나와 함께 해주는 것은 한라산이다. 바다보다 가까이 있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나를 든든하게 지켜봐 주는 존재같이 느껴진다. 가끔은 나를 감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도로 위를 달리다가 힐끔 한라산을 쳐다보면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한라산 덕분에 딴짓을 못하겠다.


'네, 네. 열심히 달릴게요'







매일 밤, 잠이 들기 전에 파스를 붙이는 거대한 행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오는 '그만 포기할까'라는 고민.
자전거 중도 반납 절차를 알아보고, 앞으로 걸어 다닌다면 어떻게 다녀야 할지 교통편도 알아보고,

내일 밤을 보낸 숙소를 검색해보다 피곤해서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면 나는 또다시 들뜬 마음에 자전거에 올라타며

제주도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본다.






일주 도로에서는 차들이 정말 쌩쌩 달린다.
그래 내가 먼저 양보해주지! (절대 무서워서가 아냐!)










네가 맑으니까 네 안에 있는 나도 맑아지는 기분이야. 가끔은 생각해.

혹시나 내가 너를 흐트러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발을 살짝 담갔다가 겁을 먹고 다시 빼버리곤 하지.


그래도 가끔 생각나.


너무 맑아서 하늘 같았던 너의 모습을 다시 보러 갈까.

지금 난 너무 더럽고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기 때문에

보고 있기만 해도 맑아지던 너의 모습을 다시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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