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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Jan 16. 2018

동쪽 바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어느새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매일 밤, 다음날을 걱정하며 온몸에 파스를 바르는 일도, 자전거와 대화하며 제주도 위를 달리는 일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항상 그래 왔듯이 그 당시에는 힘들고 무서웠던 일들조차 지금 돌아보면 추억이고 한 줌의 미소가 된다. 짧은 지난 여행의 길들도 그렇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지도에 쓰인 성산읍을 보면서 과연 내가 여기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나는 어느새 성산읍에 와 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이 가득했고,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작은 우리나라지만 이렇게 넓고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도 했었다. 많은 순간들을 만나고, 이별하고, 손을 흔들며 달려서 어느새 끝을 마주하고 있다. 그 많은 순간들은 정말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이렇게 적어두지 않았다면 기억하지 못했겠지. 소중하게 새겨두지 않는다면,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에 온 것처럼 어느새 사라져 버리겠지.
인생에선 슬픈 일 조차 소중한 기록인데,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존재일 텐데.



우리는 순간의 감정으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구기고 버려서 '어느새' 잊혀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여행을 계획하면서 읽던 제주도 관련 책에 이런 글이 있었다. '제주도의 동쪽 바다에서 또 다른 제주를 만날 수 있다.'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처음 여행을 출발할 때, 이 말을 기억하면서 바다들을 머리에 새겨두고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두었다. 마지막으로 동쪽 바다를 지나쳐 달릴 때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 제주의 동쪽 바다.'라고 외쳤다.
 뭐가 어떻게 다르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쉽게 비유를 들어 이렇게 설명해준다. 나는 사진을 편집할 때 이런 고민을 하곤 한다. 예쁘게 편집할 것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둘 것인가. 둘 다 매우 매력적이고, 어느 한쪽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취향정도. 제주도의 서쪽, 동쪽 바다는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서쪽 바다는 반짝거리며 예쁜 모습이었다면, 동쪽 바다는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수수함이 보였다. 여행을 마치는 경로로는 매우 적합했다. 여행의 시작에선 마치 나를 환영해주듯 반짝이는 서쪽 바다를 만나고, 여행의 끝이 보일 즈음엔  조금은 지쳐가는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편안한 미소를 지어주는 것 같은 동쪽 바다를 마주하니, 나는 이제 바다 앞에서 어떠한 마음도 모두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끝없이 꾸미고, 포장하고, 가면을 쓰기 바빴던 나와는 반대의 모습으로 천천히 다가왔던 동쪽 바다를 보며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너를 보고 하는 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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