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긋 웃는 듯 맑았다.

in JEJU / 세 번째 날

by 도하

연분도련 캘리여행 이란?


연분도련의 생활 속 혹은 여행 속

마주치는 고마운 사람들, 장소에

즉석으로 캘리그라피를

선물하는 캠페인입니다.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빼 먹은 것 중 하나가 날씨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설마 내 여행길에......'라는 생각이 가득하던 것일까 비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고 출발을 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날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을 보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그런 그림과 똑같이 말이다. 하지만 지난밤, 핸드폰으로 뉴스를 뒤적거리던 중 날씨를 보게 되었고, '아 나는 지금 서울이 아니라 제주도였지'라는 생각과 함께 제주도 날씨를 봤다. '비 소식' 비라니? 난 지금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야 하나? 우비를 사야 할까? 통풍이 되지 않는 우비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를 탈 바에는 그냥 비를 맞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내 커다란 짐을 바라보았다. 아직 제주도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할 많은 액자들이 들어있었다. 내 짐이 젖는 것은 상관없지만 젖은 액자를 건네줄 수는 없잖아. 불쌍한 척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 컨셉?... 은 무슨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어느새 나는 나보다 제주도를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제주도에게 나를 나눠줄 때, 제주도도 나에게 자신을 나눠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계획함에 있어서 그저 받기만 하고 배우기만 하는 것만 생각했다. 나는 힘들게 네 위를 걸어 다니잖아. 나는 힘들게 너를 만나러 왔잖아!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러니 너는 나에게 너를 나눠주렴 경비도 얼마 없는데 여행자에게 봉사한다 생각해!'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기적인 나를 발견하고는 부끄러운 손길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마음을 나눠주니 제주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주었고, 자신을 나눠주었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도도하게 코를 세우고'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무너져버렸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렇게 쉬운 일인데, 우리는 바보같이 상처받고 서로를 오해하며 살아왔구나. 내가 먼저 다가가면 되는 것을. 우리는 뭣도 없는 이기적인 마음을 앞세우며 서로를 미워했구나.

비가 내리면 어쩌나 창밖을 보며 걱정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아침이 밝았다.


세 번째 날 제주도의 아침은 방긋 웃는 듯 맑았다.







자전거 여행을 혼자 하다 보니 점점 변하는 나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평소 보지 못 했던 풍경이나 환경에 그저 감탄사만 내뱉는다. 하지만 그 감탄사조차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점점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혼잣말은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불안할 때 하는 행동인데 더 외롭고 더 심심하고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때가 되면 자전거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자전거와 대화를 시도한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다. 굳이 자전거에게 나의 지난날이나 짝사랑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어떠하다. 방금 다녀온 카페 주인이 조금 쌀쌀맞아서 무서웠다. 이런 이야기들...... 그런데 자전거는 대답이 없다. 그리고 나 또한 지쳐서 침묵을 한다. 쉬지 않고 햇볕 아래서 달려가기도 힘든데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체력 낭비라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자전거와는 계속 대화를 한다. 마음속으로! 자전거는 대답을 안 해주고 있던 것이 아니다. 내가 듣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다른 방법으로 말을 걸기 시작한다. 힘이 들지도 않고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서로 '윈-윈'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자전거가 대답을 해주고 있는 것을 알게 되니 좀 슬퍼진다. 내 여행에는 끝이 있을 텐데, 그때가 되면 자전거를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이별에 서툰 나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부터 한다. 괜히 울적한 마음에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본다. 천천히 해변가를 함께 걸어본다.









해변 도로를 따라 달려가니 바다가 보인다. '계속'보인다. 아마 '질리도록'이라는 말이 쓰일 수 있을 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를 찾는 걸까.







제주도는 어디서든 한라산이 보인다.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도로 위를 달리다가 힐끔 쳐다보면 아직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딴짓을 못하겠다.


네, 열심히 달릴게요.







매일 밤, 잠이 들기 전에 파스를 붙이는 거대한 행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오는 포기할까 고민.


자전거 반납 전화를 찾아보고

걸어간 다닌다면 어떻게 가야 할지 교통편을 찾아보고

내일 밤을 보낼 숙소를 찾아보고

피곤해서 잠이 찾아오고

아침이 되고

신나서 제주도에게 아침인사를 건네고








캘리로 만난 네 번째 제주

달 숲

객의 하우스에서 추천받은 카페 '달 숲'. 객의 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가보니 게스트하우스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 놀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해주다니..... 제주도에 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있고 그 게스트 하우스들은 서로 손님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했었지 이렇게 서로 이웃지간으로 함께 도우면서 지내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 했다. 너무 계산적이고 치열한 세상으로만 내 마음과 머리를 가꿔가고 있었나 보다. 날 숲에 들어가 쉬자.




카페 달숲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기 전 손님들이 잠시 쉬었다가 가는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나는 오후 5-6시쯤 찾아갔었는데 이 시간 때가 딱 좋은 것 같다. 카페에 살짝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아담한 크기의 카페를 따뜻하게 밝혀주며 말 그대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카페 한쪽에는 제주도와 관련된 책이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여유'를 즐겨 봐!라고 말해주는 듯한 만화책들이 준비되어 있다. 나도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어 놓고 냉장고 바지와 슬리퍼를 신고 나와 다이어리에 일기를 끄적이고 여행 계획을 정리해보다 만화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학교 주변에 'Forest' (숲)이라는 카페가 있었다. 그 카페에서 과제도 하고, 친구의 생일파티도 하고, 심심할 때 수다 떠는 장소로 모이기도하면서 일상을 함께한 카페였다. 그 당시 한 친구가 울적해하거나 혹은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숲으로 모여!'. 카페 달숲에 오니 그때가 생각난다. 여행 중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 자리 잡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달 '숲으로 모이자'









일주 도로에서는 차들이 정말
쌩쌩 달린다.

그래 내가 먼저 양보해주지!
( 절대 무서워서가 아냐 )








네가 맑으니까 네 안에 있는 나도 맑아지는 기분이야. 가끔은 생각해. 혹시나 내가 너를 흐트러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발을 살짝 담갔다가 겁을 먹고 다시 빼버리곤 하지.


그래도 가끔 생각나.

너무 맑아서 하늘 같았던 너의 모습을 다시 보러 갈까. 지금 난 너무 더럽고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기 때문에 보고 있기만 해도 맑아지던 너의 모습을 다시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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