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편지
나에게 보내는 열네 번째 편지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시는 아침의 계절이 왔어. 오늘은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이불을 정리하는 여유에 감사하는 주말이야.
다만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괜찮은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불안이 마음속에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긴 해. 바쁘고 알찬 시간 후에 갖는 여유에 찾아오는 나의 오랜 습관이지.
이 마음이 마냥 나쁜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아. 때로는 지나치게 늘어지는 나를 잡아주고 일으켜주기도 하니까.
처음에는 이 마음에 쫓기듯 몸을 일으켜 달렸어. 눈앞에 보이면 급하게 일어나 죽도록 달리고, 다시 털썩 주저앉아 뒤를 돌아보며 멀리서 나를 쫓아오는 모습에 아주 잠시 여유를 부렸어. 그리고 다시 우리의 간격이 좁아지면 일어나 달리는 거야.
그렇게 쫓기는 일상을 살았지만,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이 마음과 같이 걷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거야. 술래잡기를 하듯 쫓고 쫓기는 일상이 아닌, 함께 발을 맞춰 걷는 거지.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며 걷는 거야. 꾸준히 걷다 보면 숨이 차지도 않고, 조금 느려 보여도 정신을 차려보면 꽤나 멀리 걸어온 것을 알 수 있어.
꾸준히 걷다 보면 강박처럼 여기던 여유에 대한 고민도 없어지는 것 같아. 천천히 걸으면 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꼭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만이 쉼과 여유, 휴식은 아닐 거야. 걷는 일이 휴식이 될 수도 있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걷는 것이 쉼이 될 수 있어.
이전에는 나를 점령해 버릴까 봐 눈에 보이면 도망치기 바빴던 불안의 마음은 내 옆자리를 지키며 오히려 남들과 비교하고 불안해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해줘.
걱정하지 마. 눈에 힘주고, 어깨를 쫙 펴고 걸어. 뛰지 않아도 괜찮으니, 어리석어 보여도 괜찮으니, 우직하게 꾸준히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