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회생활에 허우적 대는 IT회사 인턴의 여름 일기
정말이지 좋은 게 하나 없는 여름이었다.
23년 인생의 여름은 온통 방학이었는데, 이번 여름은 회사와 새로운 업무로 인한 혼란과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이달 말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서비스에 대해 주어진 업무는 나름대로 중요하고 흥미롭고 재미있다. 하지만 서비스 기획의 시옷 자도 몰랐던 인턴으로서는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낯선 일보다 괴로운 것은 나를 갉아먹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회사원들의 여름은 다 그런 걸까? 일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여름은 유난히 고되게 느껴진다.
따뜻한 물속에 있는 것 같던 날씨의 한 주였다. 이것저것 섞인 감정싸움에 힘든 한 주를 버텼다고 생각이 들었다. 집 방향이 같은 친한 디자이너님을 쿡쿡 찔러 집에 가던 지하철에서 잠시 내렸다. 그리고 금요일 밤 수원역, 빛나는 거리 귀퉁이에서 치킨을 뜯고 맥주를 마셨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은 아주 잘 웃는다. 상사가 없는 우리 회사의 '상사'에게 웃기도 잘 웃고 맞장구도 아주 잘 친다.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기분 나쁜 피드백도 선사한다. 위트 있는 척하며 시답지 않은 불편한 농담이나 인신공격을 내뱉고는 한다. 적어도 첫 사회생활을 하는 내가 보기엔 그런 사람이다.
사회생활은 다 이런 건가? 하며 어김없이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함께 한 모금 한 모금 맥주를 삼켰다. 삼키던 분노가 다시 역류해 갉아먹는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가, 또 삼키다가를 반복했다.
하지만 뒤에서 이야기하는 게 그다지 득 되는 일은 아닌지라 조심스럽다. 득이 되지는 않지만, 앞에서 말할 용기는 없다. 자유로운 척하는 위계에 익숙해진 건지, 직접 면전에 대고 말할 수도 없다. 용기도 없을뿐더러 말하기엔 바보같이 눈물만 날게 뻔하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저 이렇게라도 마음을 비우기 위해 에피소드를 곱씹는 것이 어쩌면 생존을 위한 발악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그 오랜 괴로움이 극에 달할 때쯤, 묵묵하게 듣던 디자이너님이 말했다.
그런 사람은 ‘감정 흡혈귀’라고. 감정적으로 대하면 대할수록 나만 힘들어진다고.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들켜버리는 것.
그 사람은 그걸 원하고 있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애꿎은 감정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힘들면 나한테 말하세요.
내가 다 받아줄 테니까, 그런 일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세요.”
그래, 이 사람 말이 다 맞았다. 알고 있었지만 잊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잊고 있던 '감정 소모 방지법'을 상기시켜줘서 고마웠다.
그것까지 괜찮았다. 하지만 저 큰따옴표 속의 두 마디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은 말이었다. 엄마 말고는 누가 저렇게 나한테 말해준 적이 있었나? 다시 한번 생각했다.
진심이 담겨있다고 믿은 저 두 마디가, 내 머릿속에 자꾸만 맴돌았다.
그래서 맥주를 그냥 마셨다.
나올 것 같던 눈물을, 눈을 크게 떠서, 맥주 한 모금과 함께 삼켰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은 한 없이 소중하게 여겨주고 싶다. 이런 평범하지만 고질적인(?) 성격 때문인가? 사람 때문에 눈물도 많이 흘렸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특히나 이런 '비즈니스'관계라면 더욱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쿵'하는 한마디는 정 많고 눈물 많은 나의 마음을 후벼 판다. 단순히 흔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뾰족한 나뭇가지 같은 것들로 마음을 쿡쿡 쑤신다.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사람한테 사람한테 정 주지 마, 너는 지나갈 관계에 너무 애써서 상처 받는 것 같아.”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친한 친구가 항상 내게 하던 말이다. 나도 안다. 일상적인 관계들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 모순적이게도 점점 행복해지기보다 힘들어지고, 또 다른 감정싸움을 스스로 하게 될 거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죽도록 미워할 사람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고, 나는 그 사람들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데.
좋은 게 하나 없던 여름이 가고 있다.
남은 주말 동안은 좋아하는 여름 영화를 봐야겠다.
이번 여름은 어딘지 모르게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