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턴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 Sep 28. 2019

환절기에는 누구나 열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어쩌다 보니 인류애 회복한 it회사 인턴의 가을일기



가끔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근 10일 정도는 그런 시기였다. 환절기에 맞이하는 독감처럼 극도로 별로인 사람이 되어 가는 나를 스스로 바라봐야 할 때, 그 괴로움을 안고 한 없이 밑바닥으로 파고들 때가 있다.



 

 휴학 전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교양 수업 중에는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것들을 배우는 과목이 있었다. 그중에 한 가지 방법이 ‘불행의 원인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는 것’이었다.

 지난 10일간은 내 불행의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을 미워해보려고 애썼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적인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내 어이없는 노력하는 나를 다시 돌아보고는, ‘아 나는 외부 원인만 찾아 불평을 늘어놓는 구제불능의 사람인가’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외부 원인을 모두 없애면 될 것 같았다. 지금 주위의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괜찮아질까?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 있으면 내가 다시 잘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들을 가지고 더 싫어해보려고 노력했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견딜 수 없이 분노했고 뱉어냈다. 결국 나는 행복해지려다가 이 불행을 가지고 동굴 속으로 자꾸만 들어갔다. 아무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직장동료 L과 S와의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일 하는 파트는 달랐지만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mbti 검사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 취향이 비슷했다. 또 책방과 여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누구는 infj라서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있고, 누구는 enfj라서 어떻더라- 하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성격유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내 성격의 고질적 문제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가끔 좋은 사람들에게 영양분을 공급받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너무 좋아져 버리면 어쩌지’, ‘나는 어차피 떠나야 하는데, 저 사람들 덕분에 여기를 떠나기 싫어지면 어떡하지’ 이것이 내 성격의 고질적인 문제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L은 격하게 공감을 해줬다. 평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고민까지 함께 공유한다니 행복했다. 굉장히 반가웠고 고마웠다.

 이 이야기로 또 한참을 떠들다가, 카페가 닫을 시간이 되어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는 똑같은 고민을 이야기하던 중, S가 말했다.


“연과 L이 떠났을 때 이 사람들이 그리울까 봐 걱정하는 것보다, 남겨진 사람들이 여러분의 빈자리를 봤을 때 느끼는 공허함이 더 크지 않을까요?”


 심장을 콕콕 찌르는 말을 한마디 들어버렸다. 떠난 나보다 남겨진 사람들이 더 아파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에게 왜 위로가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남겨질 그 사람들을 다시 걱정하겠지. 하지만 오늘은 잠시 사랑받고 있었다는 행복감을 놓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나는 떠날 사람이니까 저 사람들을 사랑하지 말아야지’와 같이 어리석은 다짐을 반복한 하루였다. 저 말을 들은 순간 이제 저 다짐을 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죽도록 미워할 사람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고, 나는 그 사람들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데.




오늘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몇 가지 있다.


하나, 불행의 원인을 굳이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자. 내부적으로 소진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찾는 것이 더 괴로운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일 수 있다. 이론보다는 나의 기준에 맞추자.


둘, 함부로 뒷이야기를 하지 말자. 지금까지 돌아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뒷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것은 불안과 찝찝함 뿐이었다. 어차피 나는 ‘ 떠날 사람’이니까, 남겨질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자.


셋, 잘 모르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으로 두자. 어차피 평생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니까. 그도 나를 모르니까.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에 집중하자.


마지막,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여름 일기에서도 다짐했던 것이지만 또 간과해버렸다. 하지만 이만큼 행복해지는 것도 없을뿐더러 가장 쉬운 방법임을 깨달았다. 잊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챙기고 돌보고 사랑하자.




집에 와서 누우니 선선한 공기가 창을 타고 살랑거린다. 미련인 듯 불어오는 여름 바람을 이제 보내줘야겠지.


그리고 짧고 굵었던 나의 유용한 열병도.


매거진의 이전글 정말이지 좋은 게 하나 없는 여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