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탈을 쓴 늑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배운다.
직장에서는 위계를,
사회에서는 눈치를,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기류를 읽는다.
사람들은 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표정이 변하고,
어디선가 조용한 비난이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입을 다문다.
말하는 순간 터져버리는 비눗방울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이미 누군가 터져버리는 순간을 몇번이고 목격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런 말은 하지 마"라는 지침은 말로 하기 전에 이미 눈빛으로 주어진다.
특정 집단을 비판하면
"너 조심해라"라는 말과 함께 위협적인 언행이 다가온다.
공식적으로 그 단체는 보호받지 않는다.
어느 정치인보다 더 두렵고,
어느 기업보다 더 건드리기 어렵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게 된다.
말하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맞서기보다 그들을 따르는게 사회를 지키는 일이란 것을.
우리 사회는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권한다.
문제가 있어도 '괜히 건드리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는 사이, 잘못은 쌓이고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어떤 조직인데도 말이다.
'말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말하면 위험하다'는 분위기는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 공기 속에서 가장 무서운 건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데,
이미 처벌이 시작된다는 점이고,
정의라는 이름 아래 내려진 망치질은
독재를 위한 탄압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름은,
그 자체로 성역이 된다.
처음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것이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게,
그들의 권리가 지켜지게 하기 위해.
하지만
보호받는다는 사실이 오래되면,
그 구조는 스스로 권력이 된다.
그때부터는 무언가 이상해져도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래도 그건 필요하잖아."
"괜히 입 밖에 꺼냈다가..."
그 순간부터
우리는 보호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힘이 옳다고 믿기 시작한다.
우리는 가난하면 선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피해자라고 여긴다.
하지만,
누구나 힘을 가질 수 있고,
그 힘은 언제든지 누군가를 짓누를 수 있다.
보호받는 이름 아래에 있을수록,
더 조심스러워야한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건 옮지 않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단체, 어떤 구조, 어떤 운동이든
영원한 약자는 없다.
한순간 권력이 된다.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거냐?" 묻는 이도 있다.
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나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무언가를 함에 있어 묻는것조차 불편해지는 사회.
불편하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면 안된다.
비판이 없다는 건
평화가 아니라
침묵 위에 얹힌 불균형일 뿐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균형이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 존 달버그 액턴 경 (Lord Ac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