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제부터 트루먼 쇼의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매일 거울 앞에 선다.
엘리베이터 안, 찻잔 너머, 빛 번진 창가…
습관처럼 반사면에 얼굴을 비춘다.
"나 오늘은 좀 괜찮은데?"
"앞머리는 이게 나은가, 저게 나은가…"
그건 단순한 외모 점검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확인하고, 미래의 나를 상상하려는 작은 의식이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이 나를 비추지 않는다면?
혹은… 낯선 얼굴만이 비쳐온다면?
수원의 행복센터.
공구 하나를 빌리려던 평범한 하루에,
작은 이상함이 있었다.
"AI 보정 사진은 신분 확인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예시로 걸린 사진 속 인물은
더 어리고, 더 갸름하고, 더 정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누구의 삶도 반영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건 당신이 아닙니다."
짧은 문장이, 묘하게 멀리까지 퍼졌다.
민원실 유리문을 나서며,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지금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또 다른 '거울'도
혹시 그런 종류는 아닐까?
보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고,
비추는 듯하지만 비추지 않으며,
실은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관찰하고 있는...
그런, 매직미러.
"더 내고, 더 받는다."
이상하게 말이 잘 붙는다.
정돈된 리듬, 익숙한 구조.
그래서인지 더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숫자는 정직하니까.
아니, 정직하다고 믿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 계산의 바닥엔
출산율 1.2명이라는 희망이 깔려 있다.
그리고 현실은
0.6, 점점 낮아지는 그래프.
마치 건물의 설계도가 미래 도시의 풍경을 약속하듯,
그들도 설계도를 펼쳐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다른 길로 접혀들고 있다.
수많은 손길이 서명했고,
수많은 입들이 찬성을 말했다.
그러나 유리창 너머,
단 한 사람만이 손을 들었다.
그는 젊었고,
그는 반대했다.
그러나 그 반대는
그저 유리벽을 두드린 소음처럼
가볍게 묻혔다.
합의는 완성되었다.
마치 이미 정해져 있던 듯이.
누구도 “언제 정해졌냐”고 묻지 않았고,
누구도 “왜 지금이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 시기,
국가의 심장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더 단단히 쥐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세대를 나눠서 올리자 했다.
나이 많은 이들이 더 많이,
젊은 이들이 조금씩.
그게 공정이라 믿었고,
조금은 덜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단순했다.
모두에게 같은 비율의 부담.
누구는 말한다.
"이제 다 같이 내는 거야. 형평성이지."
하지만 우리는 안다.
같은 퍼센트라도, 누군가에겐 더 무거운 숫자라는 걸.
무게는 같을 수 있어도
그 무게를 버틸 시간은 같지 않다.
이 모든 건 단지 한 장의 거울이다.
그러나 그 거울은
우리를 비추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그 앞에 서서
스스로를 다듬고,
서로를 탓하고,
이해하려 애쓰지만
어쩌면 이 모든 풍경은
반대편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누군가에게
익숙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쟤네는 왜 저래?”
“몰라, 자기들끼리 또 싸우네.”
우리는 여전히 거울 앞에 선다.
하지만 그곳엔
진짜 우리의 얼굴이 없다.
그들은 비추는 장치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 앞에 서는 법만 배웠다.
어쩌면, 이 모든 풍경은
누군가가 설계한 쇼의 한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