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구지가
드넓은 하늘이 열리고 변한 땅의 강산이 춤을 추며 그 자태를 가다듬는 동안, 그곳에도 안정된 삶을 찾아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도합 9개의 크고 작은 부락에는 모두 7만 5천의 사람이 살았다.
이때까지 나라의 이름이 없고 왕이라고 칭할 만한 자가 없었다.
머릿수가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을 지켜줄 지도자를 갈구했다.
각 부락을 대표하는 아홉 추장들이 길일을 점쳐 금관의 구지봉에 모여 하늘에 지도자를 내려줄 것을 간청하는 의식을 치렀다.
하늘께서 인간을 사랑하심일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한줄기의 빛이 남쪽 바다에 쏘아졌다. 하늘의 응답에 사람들은 몸을 떨며 의식을 이어갔다.
의식을 주관하던 추장 중 하나인 신귀간이 말했다.
"하늘이 바다에 빛을 내려주신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부족에서 바다에 제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를 해 봄이 어떤지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다를 향해 노래했다.
웅성이던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하늘에서 내려온 빛줄기는 눈이 부시게 밝아지고 있다.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먼 하늘까지 울려 퍼지던 그 순간, 갑자기 바다에서 집채만 한 거북이 튀어 올랐다. 거북은 한동안 하늘의 빛을 바라 보고는 육지로 빠르게 헤엄쳐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구지봉의 제단으로 올라왔다. 하늘은 제단을 비추었다.
제단에 올라온 거북은 하늘을 다시 올려보더니 큰 울음과 함께 몸을 비틀고는 9개의 알을 낳았다. 이후 거북을 비추던 빛줄기는 점차 사그라들고, 하늘은 예전처럼 푸른빛으로 밝아졌다. 이때 거북이 낳은 알이 차례로 하나씩 깨지더니, 그 안에는 잠들어 있는 아이들이 있다. 구지봉에 모인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하늘께 감사를 표했다. 아홉 추장들은 알 속의 아이들을 거둬 각 지역의 왕으로 삼았다.
매년 금관의 구지봉에서는 지도자를 내려준 하늘에 감사를 표하는 의식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번 의례에서 두철이 의례용 검을 제작하게 되어 삼 남매는 눈앞에서 구지봉 의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누님!"
"왜?"
도이의 부름에 단이가 답했다.
"근데 왜 거북이를 먹으려고 해? 불쌍해. 머리를 내놓든 안 내놓든 거북이는 결국 죽잖아."
"하하하. 도이야, 그저 전설이고 노래일 뿐이야. 거북이에게 마음 쓰지 않아도 돼."
"싫어. 그래도 난 그 노랜 안 부를래."
"역시 겁만 많아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자식."
도이의 말에 서기가 퉁명스레 말했다.
"아냐 난 용감해! 그냥 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물통 이리 내. 아휴 더워."
"형은 맨날 말을 밉게 해. 어! 아버지!!"
아이들의 목소리에 두철이 달려왔다.
"대동에서 용케 여기까지 잘 왔구나! 이리 오려무나 내 새끼들. 하하."
도이와 서기는 구지봉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고있다.
"어머니는 가한과 함께 오고 계셔요."
단이가 옆에 앉아있던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이 아비는 밤낮없이 불 속에 빠져있고, 어미는 대동의 가한을 보필하기 바쁘니.. 이거 우리 아들 딸들에게 미안해서 어쩐다."
두철은 미안한 눈빛으로 단이를 바라보았다.
"제가 있잖아요 아버지. 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 서기와 도이도 어머니 아버지를 어찌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르실 거예요."
단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버지는 금관의 1등 철기장으로 계시고, 어머니는 온 가락이 인정하는 무사잖아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니 어미 아비가 참 고맙구나. 우리 단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허허.."
그때 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와 말했다.
"아버지, 이제 곧 의례 시작한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