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하는 사이, 그 넘어

그어떤 : 2024 신진작가 공모 기획전 ≪변화와 응시≫ (2024)

by 연두

그어떤 : 2024 신진작가 공모 기획전

≪변화와 응시≫

2024. 11. 19 – 12. 8


작가: 남서정, 정우빈


그어떤 갤러리의 신진작가 공모 기획전은 2018년부터 매해 신진작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를 청주에 소개하는 전시이다. 청주 북문로의 전시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켜켜이 쌓아 7년 차를 맞이한다. 2024년 11월 19일부터 12월 8일까지 열린 ≪변화와 응시≫는 남서정과 정우빈의 2인전으로, ‘변화’와 ‘응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두 작가의 작업 세계를 조명한다.


인간은 눈을 뜨는 순간 사물 자체를 보며, 세계란 우리가 보고 있는 바 그것이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본다는 것에 대해 명확히 발언하기 위해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우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보는 것’이 단순한 시각적 과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세계 간의 깊은 상호작용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변화와 응시≫는 변화의 순간과 응시의 행위를 통해 물질과 인식, 구체와 추상, 빛과 어둠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남서정과 정우빈의 작업을 통해 현대미술이 지닌 다층적 가능성을 짚어본다.


시각예술가라는 관찰자(혹은 주체)가 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 대상(혹은 세계)을 표현할까? ‘(세계와의) 맺는 관계’를 탐구하는 두 작가의 작업은 변화와 응시라는 두 단어로 연결되면서도, - 그어떤의 두 행성과 같이 분리된 공간처럼 -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남서정의 추상회화는 캔버스 위에서 이루어지는 미묘한 조형적, 물질적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흔적과 기억의 층위들을 포착한다. 이번 전시에는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한 문학적 레퍼런스를 제목으로 차용하여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는 미완의 길’을 화면 위에 풀어내는 한편, 관람객에게 작품의 열린 해석을 위한 다양한 단서를 제공한다. 정우빈은 응시의 행위를 기반으로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펼치면서 존재의 의미를 탐색한다. ‘해골’이라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여 작가 특유의 깊은 응시를 통해 회화와 영상으로 풀어낸다. 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험하며 본다는 것이 단순한 시각적 행위를 넘어 존재론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변화와 응시≫는 예술가, 관람객 그리고 예술 작품 사이의 관계가 서로 횡단하며 상호작용하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안한다. 이는 관람객에게 단순한 미적 경험을 넘어, 물질과 감각, 인식과 해석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론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이: 남서정의 회화적 탐구


a4R7A0278.jpg 그어떤 갤러리 전경 (출처 : 그어떤)

남서정의 회화는 고정된 형태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물질과 비물질의 과정들을 탐구하며, 그것을 조형언어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그녀의 초기 작업은 일상의 관찰에서 출발하지만, 작업 과정에서 재료와 화면 간의 충돌을 통해 점차 추상적이고 다층적인 조형 언어로 변모한다. 이번 전시 작품은 재료가 물리적으로 쌓이고 겹쳐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연성과 불완전성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히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넘어 변화 자체를 회화적으로 서술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나는 만남과 이별, 과거와 현재를 나누는 단절된 틀에서 벗어나 그 사이에 숨겨진 흐름과 변화를 기록한다. 과거의 흔적은 현재를 이루는 동시에 미래를 암시하는 지표가 된다. 『메밀꽃 필 무렵』 속 길의 이미지는 이러한 탐구를 위한 중요한 영감을 제공하였다. 밤길을 걸으며 과거에 대해 깨닫는 주인공의 여정은 과거와 현대, 미래가 중첩되는 경험을 상징한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여정을 비유 삼아 시간의 흔적과 변화의 미완성된 떨림을 표현한다.”


작가노트에서 드러나듯 작가는 자신이 인식하는 순간을 이미지로 발현한다. 그가 언급하는 ‘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어떤 기억 혹은 경험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기록된 사실들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하고, 느끼며, 지각하는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지각을 단순한 시각적 재현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고 관계를 맺는 총체적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지각이 우리의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법이며, 그 과정에서 존재가 언어와 감각을 통해 드러난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남서정의 회화는 끝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지각들의 총체이자, 경험의 의식들이 반영된 것이다.


a4R7A0264.jpg 그어떤 갤러리 전경 (출처 : 그어떤)

유화 작업 <오즈의 마법사>. <바벨탑>은 시간이라는 추상적 대상을 캔버스 위에 담아두려는 시도들이다. 유화물감을 비롯하여 겹겹이 쌓아 질감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혼합하여 선과 면, 색과 명암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각각의 화면을 구축한다. 이는 시간이라는 대상의 비물질성과 이것을 조형적 언어로 표현하려는 작가와 대상 간의 관계, 그리고 이를 직면하고 해석하려는 작품과 관람객과의 관계가 동시적으로 촉발되는 것이다.

a4R7A0267.jpg 그어떤 갤러리 전경 (출처 : 그어떤)

파스텔 작업은 지각의 순간이 더욱 섬세하게 드러난다. 파스텔의 부드러운 질감과 섬세한 손끝의 감각은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며, 유화 작업에서보다 더 변화의 순간성을 강조한다. 화면 안에서 자유롭게 퍼지고 스며드는 안료의 분명하거나 흐릿한 경계는 작가가 수없이 잡아보려 했던 그 길을 떠오르게 한다. 이 길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시간과 기억, 감각의 복잡한 얽힘을 상징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변화를 기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지점이 된다. 이 불완전한 길은 관람객에게도 열려, 각자의 경험 속에서 계속 완성되어 간다. 이처럼 남서정의 회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순간들의 연속을 기록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어둠 속 응시(당)하는 것 : 정우빈의 시각적 서사


우리가 보는 것은 실재인가? 정우빈은 어둠 속 대상을 응시하며 시작되는 내적 서사를 작품으로 구현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이’를 구현하는 남서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가 작업노트에서 언급하는 ‘깊은 어둠’은 단순히 대상을 감싸고 있는 배경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심리적·인지적 경험의 출발점이다. 어둠 속 사물들은 관찰자의 심리와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이야기를 생성하고, 이는 보는 행위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응시의 대상을 ‘해골’로 설정하고,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정우빈의 기존 작업은 두 시리즈로 나뉜다. <ACT> 시리즈는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어둠 속 불확실한 현상을 포착하는 작업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어둠에 적응하듯, 사물들이 환상적인 풍경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그는 극명한 명암 대비를 통해 어둠 속 사물의 존재를 연극처럼 구성한다. 반면, <Wave> 시리즈에서는 빛의 파장에 의한 불확실한 풍경의 변화를 포착하며, 강렬한 빛의 섬광을 화면에 담아내어 내적 분출의 상태로 변형시킨다. 즉, 비문증을 기반으로 한 환시적 풍경이 점, 선, 면의 구조로 표현되며, 색채와 빛의 파장을 통해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정우빈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풍경을 처음 목격하는 경험을 시각적으로 탐구하며,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를 제시한다.


“응시가 깊어질수록, 해골의 물리적 형상은 점차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분명했던 윤곽선이 흐려지고, 새로운 면모들이 드러난다. (중략)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응시의 방향이 전환되는 때이다. 처음에는 내가 해골을 관찰하는 입장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해골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 찾아온다”


‘해골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이한 감각’, 정우빈의 작가노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일련의 작업 과정은 자크 라캉의 응시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라캉에 따르면, 응시는 주체가 대상을 지배한다고 믿는 순간, 오히려 대상을 응시하는 주체가 그 시선에 포획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보기’와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그는 빛과 어둠, 구상과 추상, 현실과 현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적 서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왔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해골이라는 상징적 이미지와 응시하는 자신을 전시장이라는 무대 위에 세워 ‘현실과 환상의 경계’라는 시각적 서사를 연출하는 것이다.

a4R7A0353.jpg 그어떤 갤러리 전경(출처 : 그어떤)

앞서 언급한 대로, 해골은 정우빈의 작업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하는 데, 지독하리만큼 한 대상을 응시하면서 촉발되는 여러 경험을 분리하고, 분해하여 다양한 프로세스로 보여준다. 이 프로세스는 5점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대형 회화 작품 <SPECTRUM#1 (Head)>부터 시작한다. 빛이 들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부터 야광색 점들로 흩뿌려진 추상적 색채 흐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누는 데, 이는 작가의 대상을 응시하면서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이자,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다.

a4R7A0364.jpg 그어떤 갤러리 전경(출처 : 그어떤)

<Process# 1~7(Head)> 시리즈는 현실과 환시 사이의 변화를 점진적 전환을 포착하고 그 과정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밝힌다. 총 7점의 평면을 두 챕터로 나누고 응시의 순간(첫번째 챕터 #1~#2)과 어둠 속에서 빛의 파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환영적 이미지 표현(두 번째 챕터 #3~#7)로 분류하여 점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해골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가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 과정의 변화와 복잡성을 탐구한다.

반면 <브레드 스핀>에서는 회전하는 해골의 형태가 디지털로 재해석되며, 대상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고민한다. 작가는 영상에 사용된 49점의 이미지를 나열하는데, 이 49개의 이미지는 영상에서 자연스러운 회전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최소한의 프레임(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한 바퀴가 도는 숫자-작가 역)이다. 애니메이션 영상은 픽셀화된 이미지의 연속이며, 픽셀화된 디지털 이미지는 인간의 인식 과정을 통해 편집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는 라캉이 말한 응시의 핵심, 즉 인간이 시각적 경험을 통해 실재를 지배하려 하지만, 결국 인식의 모순과 한계 속에서 주체의 결핍(지배한 듯하나 포획된 상태)을 자각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a4R7A0345.jpg 그어떤 갤러리 전경(출처 : 그어떤)


변화와 응시의 교차점


이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관객 스스로 변화와 응시의 주체가 되도록 유도한다. 두 신진작가는 각각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확장된 가능성을 탐구하며, 새로운 시각 언어를 구축하는 여정을 수행 중이다. 낯선 청주라는 도시에 만나 성사된 이 전시는 현대미술이 관객과 어떻게 관계 맺고, 질문하며,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자, 사이의 과정이다. 이 여정은 물질적 변화와 응시의 행위가 만들어내는 다층적 의미를 관객과 함께 탐구하는 장이자, 변화하는 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안한다.




메를로 퐁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남수인, 최의영 역, 동문선, 2004

남서정 작가노트

정우빈 작가노트

자크 라캉, 『정신분석의 네 가지 기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역, 새물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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