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영
Hall1에 설치된 강민영의 회화는 더 이상 고정된 평면이 아니다. 빛과 시간, 움직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미지의 생성과 해체를 반복하는 이 회화는 감각의 물결을 일으키는 하나의 시각적 사건으로 존재한다. 전시 《glide》는 2차원의 회화가 지닌 고정된 운명을 미끄러트리고,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상태로서 회화를 재구성한다.
강민영이 그동안 쌓아온 회화의 시간 속에는 ‘자연’ 그리고 ‘회화’라는 두 개의 축이 일관되게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자연을 관찰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시하고, 그 과정에서 한 장면의 단면을 포착해 화면 위로 옮겨왔다. 풀잎의 결, 잎사귀의 윤곽을 세밀하게 확대하거나, 어안렌즈처럼 왜곡된 시야, 곤충의 복안처럼 반사와 굴절을 인식하는 시각을 통해 자연의 감각을 시뮬레이션한다. 이러한 시선은 회화의 물성 실험과도 맞물린다. 원형의 형태로 바닥의 모래에 의지하지 않으면 움직일 여지를 둔 <VOT_100cm diameter>(2021), 비정형적 형상으로 화면을 분절한 뒤 병풍의 형태로 구축한 <병풍 Op.1>(2021)는 고정된 회화에 운동성을 부여하였고, 27cm의 폭에 약 5미터 길이의 <겹>(2021), 캔버스를 벽이 아닌 바닥을 향하게 설치함으로써 관람자의 시선을 전복시킨다. 일련의 과정들은 ‘움직임이 없는 자연은 없다’라는 작가의 관념이 시각언어로 구체화한 것으로, 단순히 화면 위의 자연을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자연이 지닌 변화 가능성과 시간성을 회화의 조건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다.
그 배경에는 작가가 작업과 동시에 조경디자인을 병행해 온 경험이 한몫하였다. 시간과 계절, 식물의 생장 주기를 고려하며 공간을 설계하는 조경 작업은, 자연을 정적인 배경이 아닌 살아 있는 유기적 질서로 깨닫게 된다. 이는 곧 회화의 정체성과 지각 방식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어졌고, 회화를 ‘움직이는 자연의 구조’로 탐구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 회화는 ‘사건’으로 흐르며
이 감각적 탐구는 《Green Motion》(2023,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당시 작가는 한옥의 대들보에 회화를 삽입하고, 모터의 회전을 통해 회화가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풍경’으로 경험되도록 설계했다. 이번 전시 《glide》는 그 실험의 연장선상으로, 다이크로익 필름을 ‘빛’이라는 요소를 본격적으로 개입시킨다. 이제 그녀의 회화는 이제 더 이상 화면에 고정되지 않고, 반사와 굴절을 통해 공간 전체로 확산한다.
Hall1은 높은 층고와 노출된 목재 트러스 구조를 가진 장소로, 회화가 중력과 구조물에 의지해 공중에 매달릴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제공한다. 벽에서 분리된 회화는 공간 속에서 부유하고, 회전과 빛의 교차를 통해 끊임없이 형상을 바꿔가며 하나의 조형적 시나리오를 완성해 낸다.
작품의 핵심 구조인 세 개의 대들보는 한옥 해체 현장에서 가져온 오래된 목재로, 작가는 이를 ‘보물’이라 부른다. 단순한 지지대가 아니라, 과거의 시간성과 장소의 기억을 품은 이 보물은 회화를 매개하며 시공간을 잇는 역할을 한다. 이것의 몸체를 관통한 회화는 각각 독립적으로 혹은 짝을 이루어 회전하며, 서로 교차하고 분리되기를 반복한다. 대들보를 자전축으로 둔 이 회전은 예측된 구성이 아니라 우연적 조합과 해체의 연속이며, 관람자의 시점에 따라 매번 다른 사건을 생산해 낸다.
시각적 ‘상태’로써 탐색하고
《glide》는 하나의 회화가 아닌, 회화의 상태들에 대한 탐색이다. 공중에 매달려 회전하는 회화들은 빛의 반사, 다이크로익 필름의 산란 효과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며 감상자에게 실시간 ‘다시 보기’를 요청한다. 특히 세 개의 대들보는 각각 독립적인 운동을 수행하며, 자신의 몸체에 귀속된 회화의 일시적 조합과 분할을 유도한다. 이는 회화가 하나의 결과물로 귀결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해체되는 시각적 상태들’로 존재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시각적 상태는 각 회화를 보는 시점과 위치, 회전의 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필름이 반사하는 빛, 대들보의 회전 위치, 그리고 회화 간의 우연한 조합은 언제나 유일하고 불안정한 구성을 만드는 다중적 양태들이다.
움직이고, 빛나며, 변화하는 이 회화는 더 이상 평면 위의 이미지가 아니다. 《glide》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머물던 회화의 오랜 운명을 해체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적 사건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관람자는 이 움직이는 상태 속으로 끌려 들어가며,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되고, 회전과 반사의 리듬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이미지들은 매 순간 관람자의 시선을 따라 새로운 풍경으로 변주된다.
미끄러지듯 ‘감각’ 한다
이처럼 하나의 고정된 회화로 읽히기를 거부하는 《glide》는 관람자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의 흐름 속으로 이끈다. 익숙했던 감상의 틀은 서서히 해체되고, 시각을 넘어 몸 전체로 반응하며, 자연이 지닌 생명의 순환, 빛의 떨림, 바람의 결 같은 다층적인 감각들을 불러일으킨다. 그 순간은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는 자연의 흐름 자체를 ‘감각’하게 하는, 시간 속 사건이자 감각의 체현으로 작동한다.
주최, 주관 : 강민영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서문 : 이연주
촬영 : 최철림
테크니션 : 김유석
설치 : 최민석
3D 시뮬레이션 : 도경원
2025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