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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Aug 09. 2018

[육아일기] 아기가 내게 오고 난 후 14화

육아가 더 힘들었던 이유


                                                                                                                                              

삼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나는
언니와 남동생에 비해
부모님께 관심을 덜 받고 자랐다.
남들에 비해 행복하게 자란 편이라고 해도
 집에 비교대상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그런 걸 잘 느끼지 못하다가,
고학년 들어서며 부모님이
언니와 남동생과 다르게 나를 대한다는걸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나?
내가 못나서 부모님이 안좋아하시는 걸까?
부모님께도 사랑을 못받으면
누구에게 받을 수 있을까?
등등 답이 안나오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던 시기를 보냈고,
부모님은 날 사랑하실까라는 질문에

"당연하지, 많이 사랑하실거야."

라고 자문자답을 하며

스스로를 달래고는 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따로 부르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솔직히 너 어떻게 크는지
엄마아빠가 별로 관심 없었는데,
생각보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
이 말을 듣고 스스로 고민하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었고,
붙들고 있던 감정의 끈을 집에서
놓아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행동 하나에 의미를 두고
부모님의 사랑 = 나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며 보냈던 학창시절
마음의 끈을 매듭짓고,
집과 내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어느 것에 더 이상
감정이 얽매이지 않는 자유영혼이 되었다.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관계에서
벗어나 한군데 정착하지 않고
유유자적 바람 속 공기 마냥 어딘가로
떠나가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회사 다니며 독립하고 나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그러나 사랑을 많이 원해서
마음이 아프지 않기 위해
감정을 놓았던 나였기에
독립해서 사는 동안 너무 외로웠고,
주말에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러다 지구보다 더 큰 사랑을 줄 것만 같은
신랑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고목나무처럼 항상 그 자리에서
날 바라봐주는 신랑 덕분에
사랑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는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기를 갖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있었다.
내가 한 인간을 한평생 책임지고,
끊임없는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필요로 하고 원하는 내가
한 인간에게 무한대의 사랑을 줄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 아기가 생겼고,
내 스스로를 잊을 정도로 한 대상에게
사랑을 주어야하는 상황이 오면서
어린 시절 기억이 다시 깨어나게 되었고
육아의 어려움을 매일 느끼게 되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육아로 체력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도 힘들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근본적인 문제가
날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부모님과의 정서적인 교감이 적었던 나는
남에게 의지하는 것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거라고
스스로 버릇처럼 생각하고 있었기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아이를 보며
어린시절 내가 떠올라 그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했다.
     
난 이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난 이만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 같은데...
     
아기가 100일이 되기 전까지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기에
더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아기를 볼 힘을 내 자신에게서 찾아야 했는데
어린 시절 아팠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과
온전하지 않은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어
더 그 시간이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육아에 익숙해져서
예전같이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연로하신 부모님께
기댈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다.
     
비록 정서적인 따뜻함을 주시진 않았지만
대학교 때까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라게 해주셨고,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삼남매를 건강히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육아를 하며 얻은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의 앙금이 물 흐르듯
씻겨내려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안해주신 것에 대한
섭섭함이 컸다면, 지금은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을 받는 것으로
아픔을 치유하려던 내가,
다른 대상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줌으로써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가 크며 엄마도 큰다는 말을
몸소 겪으며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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