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디서 오는가?

삶과 예술

by 사색가 연두

때는 바야흐로 2022년, 내가 군대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을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연평도라는 매우 폐쇄적인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아마 연평해전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사건으로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 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대한민국 서해안, 서북도서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령도라는 섬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남한보다 북한이 더 가깝다. 또한 섬 전체 규모가 정말 작아 외출이나 외박을 나가도 할 게 없을 정도다. 인프라나 환경은 굉장히 열악하기 그지없고, 북한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항시 전투대기 상태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군인들 사이에선 그야말로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인천에서 배 타고 2시간 30분에서 3시간을 견뎌야 하며, 파도가 심한 날엔 그냥 지옥 그 자체다. 한 번은 멀미가 너무 심하게 나, 배 안에서 몇 차례나 시원하게 속을 비우곤 했다.


그런 섬에도 딱 한 가지 장점은 있었다. 바로 경치가 좋다는 것. 눈 뜨면 보이는 게 잔잔하게 펼쳐진 서해바다의 얼굴이었다. 그것만 보면서 버텼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구보를 뛸 때 보던 그 바다 경치 하나만큼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자연경관 중 손에 꼽을 정도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여기서 예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웬 뜬금없이 예술이라며 궁금해하실지 모르겠다. 군대 가기 전, 대학에서 인문학 수업을 들던 중 어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예술은 심심함에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그냥 그럴싸한 소리인 줄로만 여기고 넘겼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그게 또 예술이 될 수도 있겠지라며 말이다. 그런데 그걸 내가 직접 경험할 줄은 몰랐다. 다만 여기엔 아주 중요한 전제조건 하나가 있다. 바로 '자연'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평도에서 근무를 하면 그렇다. 바쁠 땐 정말 정신없이 바쁘지만, 한가할 땐 그토록 한가할 수가 없다. 근무 중 한가할 땐,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햇빛이 바다에 닿는 능선을 바라보며 근무를 서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정말 평화롭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감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나와 동료들이 다 같이 예술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스타트를 끊은 것은 나였다. 별 것 없었다. 그저 심심해서 포스트잇에다 편지를 쓴 뒤, 그것을 다음 근무자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벽에다 붙여 놓았다. 그런데 그 근무자가 또 포스트잇에 편지를 담아 그다음 근무자에게 넘겨준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이 일은 계속해서 반복이 되었고, 편지는 어느새 '시'로 변하고 말았다. 우리는 다 같이 포스트잇에 그날 느낀 감정이나 하루를 담아 다음 근무자에게 보내는 시를 적게 된 것이다.


tempImageDJw6WT.heic 실제 군 시절에 썼었던 시와 조촐한 그림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으면, 인간의 생각은 어떻게든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실제로 심심하면 '창의력'이 오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예술을 하는 것에 있어 가장 많이 요구되는 것 중 하나가 창의력이기에 이에 관한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아보자.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10대 청소년들을 두고 비교를 해 보니 재밌는 연구 결과가 하나 나왔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어릴 적부터 매우 체계적으로 정형화된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자라온다. 그래서 수행능력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상위권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그 대신 행복지수가 낮고 우울감이 높다. 반면 뉴질랜드 청소년들은 너무 할 게 없어서 창의력이 비교적 높게 나타난다. 신기한 점은 그렇다고 해서 행복지수가 높고 우울감이 낮게 나타나진 않는다. 되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과 똑같이 그들도 행복지수가 낮고 우울감이 높게 나타난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실제로 예술가들이 우울과 불안에 관한 감정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견해는 너무나도 다양하다. 자연에서 나올 수도 혹은 속세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심심함에서 온 번뜩임 혹은 바쁜 일상 속 찰나의 순간에서 나오는 예술 작품들도 있을 테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충만함을 불러오는지 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를 얼마나 풍부하게 현실 세계로 꺼낼 수 있는 가를 고민하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행위'이다. 꼭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기타를 치며 선율을 만들지 않아도, 다른 모든 것들이 예술이 될 수 있다.


우리 삶이 다 각자의 서사가 된다면 말이 되지 않은가? 실은 이야기가 온통 헛수고와 실패로 가득한 들, 그것이 주인공의 서사가 아니겠는가? 오히려 기술의 발달로 더욱 나의 이미지를 현실 세계로 내놓는 것이 편안해진 시대에서 나는 어떤 그림과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건 괴로우면서도 동시에 재밌다.


나는 심심할 때면 시를 필사하기도, 그림을 그리기도, 기타를 치기도 한다. 그리고 영상을 제작해 보기 위해 편집 툴을 배우기도, 요즘 ai를 이용해 바이브 코딩으로 웹 제작을 배우고 있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을 어떻게 이 세계에 꺼낼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한다. 이처럼 예술은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그냥 우리 삶에 이미 녹아들어있다. 허무맹랑한 낭만이 아니라, 삶이 무르익을 때 피어나는 낭만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궁금하다. 그것이 그 사람의 그림이자 삶이다. 시이자 서사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당신께도, 감히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삶은 어떤 그림으로 채워져 있냐고.


어떤 시로 쓰여져 왔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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