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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23. 2022

나 혼자만 비비드 컬러

#4. 성격대로 살면 이렇습니다.



나의 퇴사 배경에는 나만의 분명한 색깔이 존재한다.


계약직으로 6개월 간 근무한 회사와 정규직으로 재계약을 하던 날, 팀장님은 지난 6개월 간의 나에 대한 동료평가를 말씀해주셨다.





OO 씨 색이 너무 튄다는 얘기가 있었어. 앞으로 적당히 섞이도록 노력해봐.


나는 왜 저 말에 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회사생활은 이미 예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드라마 작가님이 회차 초반에 결말에 대한 복선을 깔듯이,

어쩌면 나의 회사생활도 저 시기에 이미 정해진 게 아니었을까?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니 이전의 나의 퇴사를 예고했던 복선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특이하다'라는 말을 아주 많이 듣고 자라왔다.

단순히 어른들과의 경계선에서 너무 먼 아이여서가 아니라, 같은 또래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내게 의아한 상황을 만든 것은 '나' 때문이었다.


물론 세상에 적당히 섞여 살아가는 것이 사회생활의 일부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만이 가진 특성을 지울 필요는 없다.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부분을 지우는 것이 사회생활이라면 '나'를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내가 정말 개선이 필요한 특이한 인격을 가졌다면 지금처럼 오랜 인연을 유지하고 있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한두 명도 아닌 사람이 그저 나 같은 성격을 좋아하는 마니아라 나와의 인연을 계속 유지한다? 그건 아마 마더 테레사가 와도 아니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니 필자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 말해보자면)

나의 성격은 크게 #솔직함 #팩트 공감 #긍정적 이 세 가지 키워드를 베이스로 한다. 여러 가지 이미지로 살아가는 와중에도 본질적으로 모든 인격에 묻어 있는 베이스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지금보다 더 날것의 나로 살아갈 때는 정말이지, 나는 할 말은 꼭 다 하고 사는 타입이었다. 대학을 거쳐 여러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 인턴생활을 통해 나는 내 성격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남들처럼 사회생활이라며 내 성격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시도해본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갖게 된 습관 중 하나가 바로 '웃으면서 말하기'였다.






OO 씨는 해피걸이야. 보면 매일 웃고 있는 것 같아


인턴 시절, 팀장님과 책임님이 내게 지어준 별명이었다. 특별히 좋은 일이 있냐며 몇 번 물어보던 책임님은 내가 평소에도 잘 웃고 다니는 사람이란 걸 안 이후로 나를 우리 팀 공식 해피걸로 부르곤 하셨다.


팀장님께서도 오랜 회의에도 눈이 마주치면 웃곤 했던 내가 팀의 유일한 새싹 같다고 하셨다. 가끔 반복되는 업무에 일만 하는 기계가 된 것 같을 때 나를 부르면 생기가 도는 새싹을 보는 기분이시라고...(단순히 어려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었겠지?)




이때의 기억으로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도 밝은 성격을 지닌 포지션으로 근무를 했었다.



처음부터 회사의 유일한 MZ세대를 맡고 있다며 눈도장을 찍고 입사했고,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는 나의 성격은 여감 없이 남들에게 시선을 끌었다.


시작은 복장이었다. 우리 회사는 자율복장으로 편한 옷을 입고 근무할 수 있었다.

(적어도 회사 규칙에는 그렇게 표기되어 있었다.)


내가 입사한 시기가 가을 끝자락이다 보니 주로 니트류로 된 옷을 입었는데, 평소 비비드 컬러를 좋아하는 터라 화사한 색상의 옷을 주로 입고 출근했다. 그렇게 두어 달 출근을 하니, 어느 날 사수가 점심시간을 코앞에 둔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희 회사에서 OO 씨만 유일하게 무채색이 아니네요?


이 말이 내 회사생활의 복선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당시 회사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대부분은 무채색 옷을 주로 입고 다녔다.

(남자 직원이 대부분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별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비비드 색을 선호하는 내가 신기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 말에도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눈이 지루하실 때마다 한 번씩 보시면 리프레쉬되고 좋으실 거예요."

"OO 씨가 지나다니면 아주 잘 보이긴 해요."

"기대에 부응하게 내일은 노란색으로 입어볼게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팀원들은 나 같은 팀원이 처음이라 낯설어하면서도 그럭저럭 적응해나갔다. 그래, 그런 줄만 알았다.


내가 우리 팀에서 혼자 튀는 게 옷만이 아닌 걸 알아챈 건 클라이언트와의 통화를 얘기하면서였다.






입사 3개월 차에 처음으로 업무 담당자가 되어 홀로 업무를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클라이언트는 몇 년째 우리 회사와 업무를 진행하는 사이었고 그렇기에 나보다 업무 지식이 더 빠삭했다.



" 여기 업체는 정말 요구사항이 너무 많으면서 유연하지 않아서... 괜찮겠어?"


사수는 이곳이 까다로운 업체라며 나 대신 연락을 취해줄지 물어보았다. 내가 맡은 일이니 내가 해보고 싶다는 말에 걱정스레 그러라고 하던 사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긴장한 마음으로 연락을 취한 나의 담당자님은 사수의 말처럼 깐깐하고 콧대 높은 분이었다.

(지금의 기억으론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시던 담당자님은 깐깐하시긴 했지만 나름 친절하셨다고 생각한다.)



"팀장님은 어떤 게 좋을 것 같으세요?"

"코로나 때문에 저희도 100% 온라인으로 해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팀장님이 말씀해주신 방향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구상해서 기획서 전달드려보겠습니다!"



업무적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매우기 위해 나는 항상 밝은 목소리로 담당자님과 연락을 취했고, 니즈를 최대한 맞추는 쪽으로 이야기를 조율해나가곤 했다.


일방적인 친절이 어느 정도 빛을 발한 것이었는지, 한 번은 내가 외부 출장을 나가 있을 때 조사를 진행 중이던 서버의 속도가 느려져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이렇게 크게 사고가 난 적이 없어 매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담당자님은 나보다 더 차분하게 나를 달래는 놀라운 태도를 보여주셨다.



"죄송해요. 우회 경로를 전달드리고는 있는데 갑자기 서버에 이상이 생겨서..."

"괜찮아요. 그런 문제는 어쩔 수 없죠. 회의 나가 계시다고 들었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일 보세요."



내가 서버 관리자가 아님에도 빨리 해결해보라고 다그치기만 우리 회사와는 전혀 다른 그 말은, 상황을 해결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업무 연락이든 항상 상냥하고 밝은 태도로 취하려 노력했다. 콜센터 직원까지는 아니지만 업무 내용 외에도 틈틈이 인사를 곁들이는 등 나름의 친절을 전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일까? 팀 차원에서 진행되는 업무에서도 나와 팀원들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트러블이 자주 발생하는 업체와 내가 통화를 해보면 별문제 없이 이야기를 하고 끝내는 것을 팀원들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OO 씨가 여자라 톤이 달라서 그런가?
그래도 너무 맞춰주지 마. 귀찮은 일만 많아질 거야.


내가 여자라서, 조금 더 높은 톤으로 통화를 해서 무언가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조금 귀찮아지더라고 보이는 작은 호의가 쌓이면 상대방에서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양보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퇴직 의사를 밝힌 지금 팀원들은 나의 첫 깐깐 쟁이 담당자와의 일을 걱정하고 있다. 클라이언트와의 계약 종료까지 4개월이 남았는데 방패막이였던 내가 없어지니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별나게 일했다고 하지만 그 별남 덕분에 나는 지난 1년 4개월간 단 한 번도 클라이언트 측과 싸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부에서 싸웠으면 싸웠지)



부디 나의 동료들이 내가 사라지고 난 뒤, 업무를 진행하는데 고생을 했으면 한다. 그러면서 내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방법으로 일을 한 것이란 걸 느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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