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탁 노트 들고 거울에 비춰보기

소비를 통해 진짜 내 것을 찾는 법

by yeonee
작년 10월 18일,

프라이탁 노트 커버와 노트를 샀다. 무려 57,000원이나 주고서. 평소 쓰는 몰스킨 노트는 가볍게 들고 다니기가 힘들어 작은 노트를 찾고 있던 차에, 배민 마케터 규림님이 쓰고 있는 프라이탁 노트를 보고 아 이거다! 싶었다. 마음을 먹은 김에 냅다 한남동 mmmg로 가서는 몇 개 뒤적이는데.. 음.. 와 이거 진짜 예쁘다, 싶은 건 없었고 제일 깔끔해 보이는 걸 골랐다. 프라이탁은 지저분해 보이는 게 매력인가, 싶으면서도 개중 제일 덜 손이 탄 것 같은 수첩으로만 손이 갔다. 결국 원톤의 빨간색을 골랐다. 손으로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이 정도 셀프 선물쯤이야! 하고는 손을 떨며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너무 예쁜 mmmg 종이 포장과 함께 매장을 나왔다.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이게 정말 좋아서 산 걸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오른다.


프라이탁, 너무 멋진 철학을 가진 브랜드긴 하지만 디자인만 따지고 봤을 땐 거금을 들여 사고 싶을 만큼 꼭 맞는 나의 취향은 아니다. 순전히 오래 사용할 노트 커버가 필요해서 샀다기엔 또 거짓말이다. 가볍고 쉽게 쓸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내 노트북에도 사용 안 하는 커버를 쓴다고! 빨간색, 하나쯤 있으면 포인트로 좋겠지만 나의 색 취향 반경에서도 꽤나 벗어난 색이다. 57,000원. 아무리 생각해도 이 크기의, 이 40 매수도 안되어 보이는 노트와 노트 커버에 쓰기엔 큰돈인 것이다.



사서 나오자마자 개시해버린 첫 프라이탁

'난 도대체 이걸 왜 산거야?'

곰곰이 생각해보는데, 커버를 구경하며 했던 이상한 행동이 있다. 프라이탁 노트를 들고 있는 나를 거울에 비춰 보기. 내가 이걸 들고 있을 때 나에게 잘 어울릴까 궁금했다. 노트를 사러가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도 카페에서 그 노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나의 모습이었다. 이거 완전 내 거야! 너무 맘에 들어!라는 나의 취향과 감정보다, 꼭 필요한 것이라는 필요성에 의해서보다, 시선을 위한 소비였나. 결국 소비를 통해 소유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거 쓰면 센스 있고 기록을 즐기는 사람 같아 보여서, 또 멋져 보이기만 하는 이 취향이 진짜 나의 취향이 되었으면 싶어서 말이다.


좋다고 필요하다고 우겨서 샀으나, 그건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조금은 뼈 아픈 소비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하나 사보니 조금 더 알겠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을 구별하는 법을. 이 노트는 이왕 샀으니 누군가의 시선도 즐기며,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겠다는 목적에도 충실하게 사용하며, 또 이렇게 내 취향을 걸러내고 더하며 정교하게 알아갈 것이다. 노트 커버의 유용성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완벽하게 좋아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안 예쁘다 생각했으면 사지 않았을 거니, 기쁜 마음으로 뽕빼야지. 후회는 남지 않는 유익한 낭비였다!




1년이 지난 지금은

6만 원 남짓한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어딜 가든 들고 다녔다. 지하철에서도 꺼내서 쓰고, 비행기에서도 쓰고, 회사에서 잠깐 딴짓할 때도 이 작고 빨간 노트를 펴 무언가를 끄적끄적 적는다. 커버가 있어 종이 노트가 헤질 일이 없고 속지만 바꿔주면 계속 같은 노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막상 사용해보니 그전에는 몰랐던 이점이었다. 빨간색 노트 커버는 온통 무채색 옷밖에 없는 내게 포인트 아이템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것도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구린 일도 아니었다. 노트 멋지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그거 하나만으로 센스 있는 사람으로 남기도 하니, 소소한 셀프 브랜딩이기도 했다. 비록 진짜 내 것일 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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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다양한 순간을 함께한 나의 노트


그러나 여전히 유니크함을 떠나 프라이탁 디자인은 나의 취향이 아님을 더욱 느낀 1년이기도 하다. 노트를 꺼냈을 때 종종 들리는 노트 멋지다는 칭찬은 좋지만, 그래도 난 역시 방수포보단 가죽이 좋다.


1. 프라이탁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2. 노트 커버는 앞으로도 평생 쓰고 싶은 아이템이다.

3. 색이 있는 아이템은 생각보다 덜 질리고 무채색 인간에게 종종 포인트가 되어준다.


이 세 가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제는 유익한 낭비가 아니라 충분히 유익한 소유다. 시선을 의식하며 남 좋다는 걸 좇아가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누군가를 따라한 것이었어도 그 후에 남는 감정과 생각들은 결국 자기 자신의 것이기에. 진짜 내 것은 이렇게 쌓아갈 수 있다는 결론으로 마치는 프라이탁 노트 구입 및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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