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필름 카메라를 고쳤다

by yeonee


스물두 살 즈음이었나, 집 안의 고물 더미 속에서 아빠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발견했다. 무겁고 투박한 매력의 미놀타 X-300. 필카 특유의 사진 느낌이 너무 좋았던 나는 그때부터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겠단 로망이 생겼다. 입문자용 책도 사고 필름도 샀으나, 나이 많은 카메라의 상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도 이미 10년 넘게 사용하질 않았으니 부품이 녹슬고 고장이 나는 건 당연지사. 어디서 어떻게 고쳐야 하나 고민만 하다 어느새 버렸는지,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갔는지 모르게 카메라는 의식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몇 주 전, 어떤 이유로 필름 카메라를 찍고 싶다는 옛날의 그 마음이 다시 살아났다. 지금은 더 오래되었을 그 카메라가 문득 생각났다. 제발 버린 게 아니길 바라며 집 안의 이곳저곳을 다시 뒤져보니 여전히 고물 더미 속에 자리한 낡은 카메라. 갑자기 토이스토리의 먼지 소복이 쌓인 인형들이 생각나며 조금 미안했다. 10년 만에 다시 쓰이나 싶더니, 다시 꼬박 7년을 제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니. 뭐든 쓰이지 않는 건 슬프지 않나. 이번에는 다시 보내지 않으리라.


바로 '필름 카메라 수리'부터 검색했다. 생각보다 나처럼 집 한 구석에서 발견했다는 사람들이 꽤 있고, 죄다 미놀타 X-300인 걸 보면 당시 굉장히 보편적인 모델이었나 보다. 새것처럼 수리한 필카도 꽤 파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왕 옛 물건을 쓰는 거라면 나의 소중한 사람이 썼던 물건을 이어 쓰는 게 가장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치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빠가 쓰던 이야기를 이어서 내가 새롭게 써 보는 그런 가치.








종로의 '제일 카메라' 사장님이 카메라 수리를 잘해주신다는 걸 보고, 주말에 바로 달려갔다. 세운 스퀘어의 한 구석, 인자한 목소리의 사장님이 7만 원에 카메라 전반을 손 봐주시기로 했다. 이 자리에 도대체 몇 년을 있으셨던 걸까, 오래 묵은 시간의 공기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었지만 사장님의 시간은 여전히 바빠 보였다. 젊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계속 찾아온다.


두 시간 정도 카페에서 기다리던 중, 수리가 끝났다는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은 토이스토리 2에서 여기저기 흠집난 우디를 깨끗이 닦고 물감을 발라 NEW우디로 재탄생시키는 수리사 할아버지의 현생 버전이 분명했다. 잘 없어지지 않던 해묵은 먼지들이 싹 사라지고, 새 빈티지 제품처럼 다시 태어난 아빠의 카메라. 하도 오래 쓰지 않아 내부 부품이 다 녹슬어 있었다고 했다. 역시 물건이나 사람이나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겉으론 말짱해 보여도 무용지물이다. 테스트로 셔터를 한 번 눌러보니 '찰칵'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소리와 셔터 돌아가는 손맛에 마음이 착, 감긴다. 카메라 쓰다가 잘 안 되는 부분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카메라를 받아 들고 나왔다.








매번 '이왕이면 무조건 새 거!'를 외치던 내가 무언가를 고쳐 쓰는 일에 이렇게 설레다니, 신기하고 묘한 마음이다. 좋은 게 무조건 새 것만은 아니구나 싶은 마음을 새로이 알게 되었으니, 종종 엄마 아빠의 오래된 물건을 찾아볼 테다. 고물 더미가 아니라 보물창고 인지도 모른다. 혹시 아나, 새 것에는 절대 담을 수 없는 가치를 또 찾아낼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덧씌울지도 참 기대되는 일이다. 잘 지내보자 나의 올드앤뉴 미놀타야.








그 후 나의 첫 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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