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 일주일 살기
올해 말 안에는 독립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서른 즈음엔 혼자 살고 있지 않으려나, 막연히 생각해오긴 했지만 비단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정체 모를 갈증과 정체를 느끼고 있었고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과 환경에서 영감을 받는 걸 좋아하면서도 집에 관해선 #프라이빗, #독립된, #나만의공간 등의 폐쇄적인 키워드를 지니고 있기에 혼자 사는 오피스텔 혹은 단독주택 정도의 형태를 벗어나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낯선 누군가와 얽힐 수 있는 환경에서의 '집'을 과연 집이라 부를 수 있으려나. 그만큼 내게 집만큼은 타인의 존재를 생각하기 힘든 사적이고도 사적인 장소였다.
그랬던 내가 고작 일주일을 맹그로브에서 지내고는, 어쩌면 코리빙하우스(co-living house)가 생각보다 나에게 적합한 일상의 주거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광호 디자이너와 협업한 감도 높은 브랜드답게 멋진 공간이긴 했지만, 그런 공간에서 잠시 머무는 것과 실제로 나의 일상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별개다. 공간이 마음에 드는 게 전부였다면 일주일로 만족했을 터였다. 애초에도 딱 에어비앤비의 슬로건이었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와 같이 놀러 가는 느낌으로 신청했던 일주일 살기였다. 맹그로브는 그와 달리 '매일을 이렇게 살아보는 거야'라며 이전까지와는 다른 삶의 양식과 가능성을 보게 된 곳이다.
맹그로브 입주 하루 전, 일주일을 낯선 곳에서 보내려다 보니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없을까 생각하다 목표를 하나 세웠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며 살고 싶은지 몰입해서 생각해볼 것. 살아오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단편적인 조각을 꾸준히 모아 오긴 했지만 이번엔 한 주의 테마를 아예 'WHERE I LIVE’로 잡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맹그로브라는 새로운 공간 안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몰입했던 일주일.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경험했던 공간과 더불어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몇 가지 문장들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선명한 문장 넷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꽤나 성공적인 일주일 살기가 아닐까. 문장들은 아래와 같다.
마음의 곁을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공간에서 매일을 살자.
오롯이, 하나의 목적에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혼자일 수 있으면서도, 느슨하게 함께 하는 삶.
독립에도 물맞댐이 필요하다.
맹그로브 입주 이틀 차였다. 출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씻고 나와 침대 헤드의 램프를 켜고 집에서 가져온 엄마의 오미자청에 공용 부엌에서 가져온 얼음을 두둑이 넣어 차가운 오미자차를 만들어 마셨다. 일주일 분의 물건만 가져오느라 방이 제법 휑한데도 예쁘고 아늑하니 이내 마음도 공간에 옴팡 동화됐다. 문득 ‘내 방에 있는 거구나’ 싶었다. 어느 곳에서든 일주일의 일상을 보낸다고 해서 꼭 느끼진 않는 감정이다. 그 자체로 감도 높은 공간에서는 마음의 곁을 쉽게 내어주게 되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공간이 주는 힘, 특히나 마음에 드는 공간이 주는 긍정적인 힘은 누구보다도 스스로 잘 안다. 몇 년 전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오며 한껏 내 취향을 반영한 방을 가져보니, 잘 가꿔진 공간에서 매일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도 훨씬 큰 일상의 위안이자 확실한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알차게 하루를 살아낸 날에도, 지치는 날에도 그 끝에는 ‘얼른 내 방으로 가고 싶다’는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지금은 내 공간을 알뜰살뜰히 치우고 가꿔나가는 일이 곧 나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되었고, 어디서든 나와 주파수가 꼭 맞는 감각적인 공간을 찾아다니며 ‘내 공간’이라고 느껴지는 곳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맹그로브의 싱글룸은 기본 공간 자체만으로도 감각적이고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으면서도, 또 각자의 색을 칠하는 대로 다양하게 어울릴 수 있는 도화지 같은 공간이라 생각했다. 원룸이라고 쳐도 조금 작게 느껴지긴 했지만,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끔 가구마다 배치마다 밀도 높은 고민들이 녹아있어 큰 불편함 없이 공간과 빨리 친해졌다. 내가 이 공간에서 지낸다면 조명은 여기 두고, 러그를 이렇게 깔 거야 하며 또 한 번 가장 사랑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상상으로 즐거웠던 일주일이었다. 다시 한번 어디서든 내가 있는 공간을 가꾸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새삼스러운 다짐과 함께.
주중이든 주말이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하며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충분히 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코로나로 집이라는 한 공간에서 다양한 목적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알게 된 점이 있다. 공간에는 그를 사용하는 개인에게 가장 알맞은 목적이 있다는 것. 특히 나는 환경에 정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인지라, 내 방에서의 내 몸과 마음은 이미 가장 편안한 상태에 이르도록 세팅되어있다. 내 방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로써는 최악인 셈이다. 본디 그러했던 것처럼, 방은 온전한 쉼의 공간으로 두기로 했다. 아침마다 바지런히 집을 나서는 이유다.
맹그로브에서 지내며 가장 좋았던 점은, 아침 시간을 위해 굳이 카페로 나서지 않아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 많다는 점이었다. 주중 아침엔 주로 내가 있는 층의 공용 키친 창가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출근했다. 오늘은 왠지 아침부터 다양한 영감을 받고 싶다 하면 지하 2층의 라이브러리 공간으로 커피 하나 들고 내려가 원하는 책을 잔뜩 골라 앉았고, 1층 로비의 큰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 있다 가기도 했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마음도, 몰입도도 확연히 달라지기에 다양한 공간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장점이 아닐 수 없었다. 싱글룸이 조금 작게 느껴졌어도 충분히 용인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분리된 공간이 있다는 게 가장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맹그로브에 입주하면 입주 정보 및 공지사항 확인, 공용공간 예약 등을 맹그로브 앱에서 한다. 입주 이틀 전, 맹그로브 앱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메일로 왔다. 앱을 접속하자마자 했던 일은 시네마 룸 예약하기였다. 프라이빗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마 룸은 꼭 한번 써보고 싶었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금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시네마 룸 예약을 걸었다.
혼자 그 공간을 누리는 것도 좋겠지만, 이왕 머무는 김에 이 커뮤니티를 공유하는 누군가와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다. 혼자 볼까 열 번은 고민하다 맹그로브 앱 자유 게시판에 <오만과 편견>을 같이 보자는 글을 올렸고,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아주신 분과 만나 영화를 봤다. 맹그로브에서 처음 만나는 나의 이웃분은 고맙다며 예쁜 로제 와인 캔을 건넸다. 그분도 바로 전날 입주해 나처럼 처음 시네마 룸을 이용한다고 하셨다. 신나서 이리저리 사진도 찍고 프라이빗한 영화관에서 빈백에 누워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그 영화를 같이 좋아해 주시는 분과 함께 하니, 분명 맹그로브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다. 먼저 손을 뻗어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었을 테지. 내가 올린 글에는 같이 영화를 본 이웃님 외에도 정말 좋을 것 같다, 다음에도 열어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조금 더 알찬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도한 일이었지만 이 경험이 좋아 소소하게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갈 나를 처음으로 상상해보게 되었다.
‘따로 또 함께’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지만 ‘집’에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라 생각했다. 막상 독립을 하게 된다면 때때로 외로울 것 같으면서도 어떤 형태로는 누군가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을 공유하는 건 불편할 거라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막상 맹그로브라는 코리빙하우스에서 일주일을 보내보니,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채로 닫힌 결말을 썼던 거구나 싶다. 사적인 공간은 충분히 보장되면서도 공용 공간에서 마주하는 다수가 그저 낯선 이들이 아니라 맹그로브라는 한 지붕 아래 느슨하게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또 묘한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이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지붕 아래 나름의 방식으로 맺어갈 관계들이 궁금해졌다. 따로 또 같이, 느슨하게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각난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이 지붕 아래서는 혼자라는 단어의 무게를 조금 더 따뜻하게 덜 수 있지 않을까.
머무는 동안 맹그로브에서 온, 오프라인의 여러 경험을 설계하는 동일님을 잠시 뵐 수 있었다. 동일님께 첫 독립을 고민 중이라고 하니, "맹그로브에서 첫 독립을 시작해 진짜 자신의 공간을 찾아 나가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실제로 독립을 하려면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맹그로브에서 살며 하나씩 체험해 보는 거죠.”라고 하셨다. 동생은 이 이야기를 듣고선 '물맞댐 하기 좋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물맞댐. 처음 듣는 단어였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물고기를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기 전, 수질이나 온도를 맞춰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한다. 맹그로브를 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단어라고 생각했다.
독립을 '하고 싶다'도 아니고 '해야 한다'는 말에는 까닭 모를 직관만이 있을 뿐 그 외에는 아직 머물러도 좋을 이유가 한가득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 치솟는 전세가, 지금 나의 공간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이번 일주일을 지내보니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머물러야 할 이유와 더불어 막연한 두려움이 컸다는 것을. 아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독립'은 안정을 추구하는 내겐 매우 큰 변화이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수도 없이 많은 미지의 세계였다. 맹그로브에서의 일주일은 짧게나마 물맞댐을 연습하는 기간이었을까. 고작 며칠 지냈다고 집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하는 내 모습을 보니 이제는 정말 다이빙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의 힘이 세졌다. 그 첫 다이빙 공간이 맹그로브라면 어느 곳보다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은 걸 보면, 분명 맹그로브는 내게 좋은 물맞댐 공간이었을 거다.
맹그로브에서의 모든 경험들이 좋았다고 할 순 없다. 내가 머문 맹그로브 신설점은 2호점이자 아직 오픈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곳인 만큼 여기저기 개선이 필요한 지점들도 꽤 보였다. 하루는 내가 머무는 방의 시설 문제가 있었고, 앱 사용이 불안정하다거나 내부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가오픈 기간이라 많이 이용해 보지 못한 점등이 그렇다. 이런 부분들은 서비스 초기인 만큼 안정화의 시간을 거치면 충분히 보완될 수 있는 점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지향점을 공간으로 말하는 게 전해졌다. 개인적으로는 삶에서도 일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던 한 주였다. 그저 힙한 공유 주거 브랜드인 줄 알았으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사하는 맹그로브의 철학에 동참해본 일주일. 이 시간은 앞으로 있을 나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곧 맹그로브와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길고 긴 후기 디 엔드.
Thanks to @mangrove.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