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정말 봄을 만났다. 코트를 벗고 다녀도 춥지 않고 볕 좋고 바람 좋고. 날씨와 호르몬의 노예인 나는 이런 날엔 진짜로 어느 곳에서든 이름 없는 춤을 추고 싶다. 사실 대형 모니터를 가림막 삼아 회사에서 작은 댄스도 춘다(연희님 맨날 어깨춤 춘다고 소문은 없나 몰라). 날이 너무 좋으니 제일 하고 싶은 건 글을 쓰는 일이었다. 간밤의 싱숭생숭한 마음에 대하여 털어놓고 싶었으나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지고 말았던 어제를 이어받아서. 마음 좋지 않은 얘기다 보니 굳이 더 깊게 파고 싶지 않아 져준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같은 주제도 지금처럼 기분 좋을 때 쓰면 조금 더 긍정적인 바이브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풀어보는 나의 (어떤) 마음.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친구가 앞서 나갈 때 100퍼센트 축하해 줄 수 없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다잡아 본다. 그나마 텐션이 올라와 있고 기분이 좋은 순간 포착된 진심을 겨우 꺼내어 축하해 주는 마음. 친구의 배로 늘어난 연봉을 듣고 다시 또 현타가 오는 마음.
어떤 가치관이 뚜렷해질수록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대화들이 불편해지는 마음도 있다. 그들의 생각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분리해놓은 채, '그렇구나'라며 물 흘러가듯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음. 한 마디 하고 싶다가도 영혼 없는 'ㅋㅋㅋㅋ'로 대체하는 마음.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 마음이 하루 동시에 올라오자 스스로에게 옹졸하다고 말했다. 낯짝은 두껍진 않아 이런 마음들은 금방 표가 날 테고, 되는대로 이 마음을 쏘아붙이자니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고 싶다. 늘 그래 왔듯 아무도 없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언제나 좋은 사람이고 발전하고 싶어 하는 것도 짜증이 났다. 사실 저런 마음들은 옹졸하기 이전에 인간이라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 아닌가. 언제고 어느 상황이고 중심이 단단하게 잡힌 사람이 아닌 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난 아주 보통의 마음 크기를 가진 사람이다.
부러운 거 맞고, 불편한 것도 맞다. 사실 진짜 내 친구 너무 잘 풀려서 엄청 부럽고 그 카톡창은 가끔 나가기를 누르고 싶을 정도로 짜증 나는 대화들이다. 그래서 뭐? 착하게 다독이고 '친구가 잘 되면 너에게도 정말 좋은 일이야. 언제고 네가 원하는 깊은 대화만 할 수도 없어. 시시껄렁한 얘기들은 흘려듣자.'라고 예쁜 말로 얘기하는 건 가끔 도저히 읽히지 않아 두세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보는 자기 계발서 문장 같다.
그렇다면 뭐 어쩌겠나. 짜증을 에너지원 삼아 난 나의 길에서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끼고 싶지 않은 대화들이지만 아직은 유지하고 싶은 관계라면 그럴 땐 카톡창을 밑으로 쭈욱 내려버리면 되지 뭐. 굳이 읽고 시답잖은 답장을 할 필요가 있나. 보기 싫으면 며칠이고 보지 말자. 보기 싫으니까! 예쁜 말들에 덮인 한 겹을 걷어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이제 코인 노래방에서 꽥꽥 소리만 지르다 나오면 응어리가 다 풀릴 것 같은데 말이지. 시국이 시국인지라 오늘 밤엔 분노의 달리기를 하련다. 가끔은 가식 떨 필요 없이 솔직하게 마음으로, 몸으로 풀어버리는 게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데 제일이다.
옹졸한 마음이기 이전에 그냥 자연스럽고 솔직한 마음. 내 마음은 그런 거였다.
내일은 왠지 정말 좋은 하루일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