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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ee Oct 12. 2018

엄마의 그림

엄마는 그림을 그린다. 주로 추상화다. 미대를 가고 싶었던 옛날의 엄마는,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던 할아버지와의 협상으로 교대 미술교육과를 진학했다. 그때부터,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엄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엄마의 그림 생활도 벌써 30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그리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진 그림 세계라 그런가? 엄마의 그림은 항상 뭐라 말하기 힘들었다. 엄마의 손을 거쳐 완성된 작품들로부터 받는 첫 느낌은 항상 '잘 모르겠다' 또는 '그저 그렇다'였다. 그림 알못인 내가 어떤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 이유의 8할은 고운 색감인데, 엄마 그림은 대체로 어두운 편이다. 그냥 어둡기만 한 게 아니라 어두운 색채들이 겹겹이,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도로 자리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던 점은, 그림으로부터 받는 인상과 내가 엄마를 떠올렸을 때의 이미지가 매치가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림은 화가의 자식 같은 존재니까 화가와 그림은 비슷하리라 생각했는데, 언제나 씩씩하고 밝고 착한 우리 엄마가 저런 그림을 그린다고? 언제나 의문이었지만 내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굳이 '왜'라는 질문으로 연결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 그림인데 딸인 내가 엄마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묘한 죄책감을 남긴 채.








며칠 전, 엄마는 매년 대학 동문들과 여는 작은 전시회에 낼 작품을 집에서 완성했다. 완성된 그림을 건조하기 위해 네 점의 그림을 복도에 쭉 세워두니 복도가 제법 갤러리 같았다. 약주를 한 잔 걸치고 온 아빠가 그림들을 보더니 "여보, 이번 당신 그림들 참 좋다. 정말이야."라고 했다. 엄마가 그림 10점을 그리면 1~2점 괜찮다고 칭찬하는 아빠인지라 엄마의 그림을 향한 칭찬이 낯설기도 하고, 조금 달라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엄마다운' 그림들에게서 아빠는 무얼 본 건지 궁금해졌다. 곧이어 아빠가 말했다. "당신 마음이 이제야 좀 편해 보여. 그래서 내가 증말 좋다."



무언가 마음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어쩌면 스스로 알고 있었으면서도 귀찮다고 외면했던 엄마의 마음. 이해할 수 없던 엄마의 어두운 그림은 엄마와 미스매치인 게 아니라, 내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림이 아니었다면 절대 몰랐을 내밀한 마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그 세월 동안 그림을 그려왔을까. 너무 아득해서 또 생각하고 싶지 않아졌다.





대신 다시 엄마 그림을 봤다. 평소에는 쓱 보고 말았던 그림을, 이번엔 자세히 봤다. 이전 그림들과 확실히 뭔가 다르긴 다르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이전보다 밝고, 크고 깊던 덩어리들이 작아지고, 경계가 옅어진 느낌. 부드러운 색채가 더 다양해진 느낌. 더 가까이서 보니 다양한 크기와 색을 가진 점들의 합이다. 전체적으로, 잔잔하다. 아빠도 그림을 보고 이런 느낌을 받았던 걸까, 그리고 그 느낌이 엄마의 마음이라 생각했을까? 그래서 아빠는 그동안 엄마의 그림을 별로라 했었나. 엄마의 그림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그림을 통해 보이는 엄마의 마음이 불편하고 싫어서. 내가 아는 아빠라면 그랬을 것 같다.



아빠의 말이 주관적이기만 한 해석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이야,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하여튼 내 그림은 제일 잘 봐."라고 했다. 확실히 아빠는 엄마를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생각하는구나. 새삼스레 느꼈다.



엄마는 그동안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변화가 있었길래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엄마에게 물어보고 얘기를 듣는다면 훈훈하고 완벽했겠지만, 진짜 나는 못 쓸 인간인 건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건지 또 엄청 궁금하진 않다. 그냥 엄마가 그랬구나, 싶을 뿐이다. 허허. 나란 딸... 다만 언제고 볼 수 있는 그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굳이 물어보지 않고도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를 찾은 것 같아 마음이 괜찮다. 엄마의 그림이 내게 그저 그런 그림으로 남는 게 아니라 그 그림도 엄마라는 걸 알게 됐으니 좋다. 앞으로의 엄마 그림이 궁금해지니 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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