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7일의 글
소포를 하나 받았다. 낯익은 친구의 이름이 보낸 이에 적혀 있었다. 그제서야 한 달 전에 친구가 우리 집 주소를 물어봤던 게 기억났다. 박스 크기는 되게 큰데 무겁진 않아서 뭔지 더 궁금했다. 상자를 열어 보니 투박한 종이 포장지에 싸여진 선물과 카드 하나. 다시 종이 포장을 뜯으니 웬걸, 들어도 들어도 끝이 안보이는 초록색의 니트 담요가 있었다. 담요를 들고는 이게 뭐야- 하며 빵 터졌다가, 이내 카드를 읽고선 엉엉 울었다.
일년 반 전, 친구의 강아지 브라우니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가족들이 모두 해외에 있어서 혼자 살고 있는 친구에겐 제일 소중한 가족 구성원이었고,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나도 참 예뻐했던 강아지였다. 내 딴에는 조금 갑작스레 브라우니의 소식을 접했고, 브라우니의 장례를 치뤄주고 싶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나갔다. 소중한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보낸 경험이 별로 없었기에, 브라우니의 마지막 앞에 어떤 말로도 친구에겐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외엔 별 도리가 없었다. 친구는 크게 울지도 않고 생각보다 덤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를 묵묵히 쥐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참, 이런 방면으로 서투른 내가 싫을 정도였다.
브라우니의 화장을 마치고 유골함은 친구가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역시나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당시 친구 집 근처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라 힘들면 언제든지 부르라고 같이 밥 먹자고 하며 헤어졌다. 그 후로 왜인지 친구도 나도, 나는 이래 넌 괜찮니 하며 연락하지 않았고 브라우니 얘기도 일체 하지 않았다.
나에겐 일종의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는 일이었다. 당시 너무 힘들었던 인턴 생활에 치여 밥 먹자고 나오라고 전화 한 통 못한게 미안해서, 그 이후로도 더 그 친구에게 연락을 못했다.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네 없었으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근데 정말 한 걸음에 와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어. 고맙다는 말도, 고마움의 보답도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네. 지금도 브라우니 생각하기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이제 너랑 우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어.' 눈물이 났던건 고맙다는 친구의 말을 비집고 나온, 그동안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던 나의 미안함이었나 보다. 직접 떴다는, 완벽보다 더 멋지게 엉성한 담요가 그렇게 예쁘고 고맙고 미안하고 멋질 수가 없었다. 무슨 마음으로 친구는 초록 실을 한 코 한 코 떴을까.
이 담요를 마냥 기쁜 마음으로 받기엔 내가 느끼는 미안함이, 그리고 그 미안함에 반해 받는 고마움이 너무 무겁다. 고맙다고 너무 마음에 든다고 아주 난리를 치면서 카톡을 보내니 친구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라며 오히려 감동 받았다는데, 내가 그동안 이렇게 느끼고 있는 줄은 친구는 꿈에도 모르나 보다. 길고 긴 담요는 침대에 펼치니 딱 내 침대 길이였다. 이 정도면 친구는 담요가 아니라 이불을 떠서 보낸 셈이다. 항상 한기가 도는 내 방에서, 어느 때보다 따뜻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