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글 쓰는 즐거움
필사 모임에 참여하면서 책을 읽고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보았다.
아주 초기의 감정은 이러했다. 일종의 공직에 몸담은 나의 퇴직 시기는 만 60세이다. 언젠가 65세로 변경될 것이고, 내가 입사했을 때의 나이가 29살이었으니 연현이 너는 여기서 30년이나 일할 수 있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지금 내 나이가 30대 중후반이니 만 65세까지 일하려면 아직도 약 30년이 남았다. 이럴 수가. 끔찍했다. 어느 순간 안정된 직장이 기쁨이 아니라 끔찍함으로 다가왔다. 이곳의 일이 특별한 새로움이 없고, 가슴 떨리는 도전이 없으니 잔잔한 고인 물과 같다. 그렇다고 아주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기업을 많이 마주하는 이곳의 일이 아주 천직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아이러니하게도 끔찍함이 느껴졌을까.
그렇다면 직장을 떠나 아주 재미난 일을 벌이는 건 어떠할까? 하지만 금세 현실의 압박이 나를 주춤하게 만든다. 지금 벌고 있는 돈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대로 꾸준히만 하면 노년기에 이를 때까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멈추려 하는지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을. 결론부터 말하면 직장에는 나를 위한 특별한 즐거움이 없었다. 일이 성사될 때 잠깐 성취감에 사로잡혀 즐거울 수 있겠지만 그 일이 결국 나의 일이 아니다. 나의 밥그릇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그저 회사의 실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만의 무언가도 채워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 SNS를 시작한 건 아니었고 그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 SNS를 특별한 목적의 무언가로 채워나가기 시작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나의 지인들만 모여 있는 이 공간에 굳이 내가 읽는 책을, 내가 적는 글을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많이 망설였고 새로운 계정으로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소소한 고민이 있었지만, 그냥 나아가 보기로 하고 계정의 결을 바꾸어 나갔다.
책을 읽다 보니 필사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은 무엇을 적는지 궁금하여 나도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아 적어보았다. 서평단에 참가하여 책을 받고 서평 글을 남겨보고 싶었는데 글을 적어본 적이 없는 나는 무슨 글을 적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내가 찾은 것이 책을 집필한 작가님께서 운영하는 필사 모임이었다. 책을 읽고 무언가 적는다고 하니 분명 서평 작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시작해 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공짜로 책을 받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서부터였다. 그렇게 하다 보면 책 계정도 점점 커질 거로 생각했고 계정이 커지면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고 서평을 남길 수도 있다고 전해 들어서 그런 소소한 것에 욕심이 났다.
그렇게 나의 필사 인생이 시작되었고 읽고 쓰는 일에 빠져들게 되었다. 고요한 시간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며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순간이 즐거웠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가 읽고 싶었던, 혹은 작가님이 정해주신 필사용 책을 읽고 적는 과정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즐겁게 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적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입혀지게 되었고 그 활동들로 인해 나를 위한 행복을 찾게 된 것이다.
읽고 쓰는 일이 바쁜 하루 중 온전히 나를 위해 선물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공짜 책에 눈이 멀어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예쁘게 포장하는 일은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 행복의 우선순위가 하나둘 결정되었다. 여유시간이 많지 않기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1순위에 두고 조금씩 해나갔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고 한 권의 필사 노트가 가득 채워지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일기도 적지 않고 다이어리도 꾸준하게 작성하지 않던 내가 노트 한 권을 가득 채워 글을 적다니. 그것도 손글씨로. 이것이야말로 함께하는 글쓰기의 기쁨이다. 나 혼자 그저 묵묵하게 적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고 때론 다독여 주면서 지켜봐 주었기에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시도하지 않았다면 내면을 채우면서 마주하는 행복감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는 직장인도 엄마도 아내도 아닌 박연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사회적 지위, 벌어들이는 수입, 재산, 학벌 기타 등등 줄 세우기를 하는 모든 것들을 떠나서 나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아끼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책 읽기와 글쓰기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