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는 정책기획단, 기업지원단, 자동차기술지원단, 정밀화학소재기술지원단, 에너지기술지원단, 경영지원본부 등 많은 부서가 있다.
나는 정책기획단으로 입사하여 기업지원단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나노공학을 전공하여 정책기획단에 입사하면서 나노소재 분야 산업기획을 수행했고, 결혼을 하면서 기업지원단으로 부서 이동을 했다. 이곳의 업무는 지역의 중소기업에 국가사업을 지원하는 일로 전공과 크게 상관없지만 지원사업 평가 시 지난 경험을 간간히 활용하는 정도였다. 네트워크 사업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사람을 만날 기회도, 행사를 진행하는 일도 많았다. 귀찮은 일이 많았지만 외향적인 성격의 나와 잘 맞는 업무라 생각했다.
올 1월까지 그렇게 잘 살고 있었다.
문제는 2월 인사발령이 나고서였다.
1월 말 아이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돌봄 휴가 중이었는데, 갑자기 실장님 전화 한 통이 왔다.
너랑 나랑 인사발령 났어!
네? 어디로요?
너는 자동차...
네? 자동차요???? 제가요?? 자동차?? 자동차...
자동차 부서는 전체 인원 45명에 여성이 1명 있는 부서다.
본부에서 많이 떨어진 위치에 있어서 집에서도 제법 먼데 불행 중 다행인 건 본부 가까이에 있는 센터란다.
그날 바로 엄마를 불러 아이들을 부탁하고 회사로 뛰어 들어갔다.
제가 자동차라고요? 왜죠? 왜요??
아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서류상으로 봤을 때 공대 출신의 내가 제일 적합하다고 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상황이 심각하다.
언젠가 특화 센터에 발령이 날거라 생각했지만 화학이나 에너지 부서일 거라 생각했는데 자동차라니!
자동차에 관심이 1도 없는 내가 자동차 부서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인사 시즌 여러 가지 요소에 휩쓸려 희생당했다 생각했다.
2월 1일. 내 생일을 기점으로 나는 자동차기술지원단 소속이 되었다.
올해로 지금 회사에서 9년 차가 되었다.
나름 선임급이고 경력도 제법 길어졌는데 다시 신입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같은 회사 내라고 하지만 맡은 업무가 180도 바뀌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한 달쯤이 흘렀다.
사방에 남자들 뿐이라 고민을 나눌 사람도 없었고, 특히나 업무 격차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이건 못하겠다 생각했다. 거리가 멀어져 출퇴근 시간도 더 길어지고 아이들을 데리고 출퇴근하다 보니 시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커져갔다. 그 길로 이사를 결심했다. 원래도 이사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침체되는 부동산 시장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입장이었는데 앞뒤 보지 않고 무조건 이사를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서둘러 4월 말 이사를 마쳤다. 한두 달 반짝 집중해서 매도/매수에 매달렸고 새로운 집에 산다는 기쁨에 취해 또 한 두 달이 흘렀다.
그걸로 끝이었다.
이사에서 오는 기쁨이 업무에서 오는 이질감과 무능력감을 이길 수는 없었다.
무기력의 늪에 빠질 때쯤 전시회 행사 업무 하나를 맡았고 또 잠시 최선을 다했다.
행사를 무사히 끝마치고 나니 또다시 무기력에 빠진다.
내 삶에서 일이 주는 만족감의 크기가 이렇게나 컸던 것일까.
나는 오늘도 마음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1%의 무언가를 찾아 주위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