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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쓸모 Oct 23. 2023

아버지와 삼겹살

용서

아버지가 죽어버리길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랐다. 그날은 30년을 견디고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출산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만삭의 임신부인 나는 주저앉아 울지 않았다. 슬픔으로 가득 차야 할 아버지의 부고에도 마음이 가벼웠고 몸도 가벼웠다. 다행이다 싶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를 두고 고모들은 독한 년이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울지 않는다고. 눈물 많은 애가 눈물 한 방울을 안 쏟는다고.


어제까지 아버지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그런 아버지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계셨다. 참이슬 한 병과 함께.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날에는 세상 평범하고 멀쩡한 사람이었으나, 술을 대는 날에는 술이 술을 먹다 고꾸라져 토하기를 며칠을 해내야 끝을 내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을 보듬어야 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겠지.


중고생 시절 아버지가 술 먹고 어디 나가서 죽기를 바랐고, 어머니에게 제발 아버지와 이혼하고 우리끼리만 살자고 애원도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이혼이 그렇게 쉬운지 아냐며 너도 크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그때의 어머니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지, 왜 이혼할 수 없었는지 아이넷을 낳아 키우면서야 알게 됐다.     


내방까지 들려오는 아버지의 욕설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학교에 가기 일쑤였다. 전화기를 던지고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날엔 울며 밖으로 뛰쳐나가 골목을 배회하기도 했다. 갈 데가 없는 새벽엔 주인할머니의 옥탑방에서 쪽잠을 자다가 아버지가 잠든 뒤 몰래 집으로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아버지가 늙어갈수록 폭력을 휘두르는 날도 줄었지만, 몸은 술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었다. 몇 날 며칠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초록색 병만 들이켰다. 사흘이 지날 무렵엔 방에 술 한 병 가져다 놓고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 고를 반복했고, 그다음엔 토하고 토하고 토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핼쑥해진 채 다시 일어서곤 했다.

     



토하고 토하고를 반복하던 어느 새벽, 화장실에 다녀오며 문 앞에 쓰러지셨다.  토한 것이 기도에 막힌 채 아버지는 그 길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침이 돼서야 안방 문을 열어보시고 아버지의 죽음과 맞닥뜨렸고, 일찍 문을 열어봤더라면 하는 자책에 눈물을 흘리셨다.


온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차라리 잘 된 거라며 안도했다. 술에 찌든 지긋지긋한 아버지와 이런 방식으로 작별할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 건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건, 어머니도 오빠도 새언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를 납골당에 모신 날 저녁 우리 가족은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둘러앉았다. 불판에 노릇노릇 삼겹살을 구워 맛있게, 어느 날 보다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 반, 후련한 마음 반이었다. 남편은 그런 우리를 보고 이상하다 했지만 30여 년의 굴레에서 해방된 우리는 평소 좋아하던 삼겹살로 아버지의 죽음을 기뻐하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삼겹살은 맛있었다.


불쌍한 사람. 죽음으로 용서를 구한 사람. 불쌍한 사람.


다음날 아기가 태어났다. 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외손자, 나의 첫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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