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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쓸모 Feb 11. 2023

복직 8개월 만에 휴직한 이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중요성

등원 전쟁이었다. 

세 아이를 모두 다른 기관에 등원시키고 출근해야 했기에 멘털이 탈탈 털린 매일 아침이었다.

큰아이 둘에게 밥을 차려주고, 자고 있는 셋째를(당시 15개월) 들쳐 메고 분유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온다. 그럼 또 둘째를 데리고 단지 내 어린이집에 서둘러 던져놓고는 큰 아이를 차에 태워 유치원에 내려준다.


허겁지겁 차에 오르면 그제야 내 정신으로 돌아왔다. 


매일 오후 3시 반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하원시키기 위해 오셨다. 

아이들 한 명씩 하원시켜 놀이터에서 놀게 한 뒤 집에서 나의 퇴근을 기다리셨다. 

감사하기도 했지만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이들도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첫째는 감성적이고 민감해서 작은 감정에도 흔들리는 아이인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매일 방문은 아이를 점점 지치게 했다. 할아버지는 여동생, 그러니까 '은이'의 할아버지(손녀딸 편애가 심하신 편)였고, 할머니는 부드럽지만 강한 카리스마 자체였다. 


아침엔 엄마의 조급함이, 오후엔 할아버지할머니의 그늘이, 저녁엔 엄마아빠의 피곤함이 큰아이를 시들게 했다. 6개월쯤 지나자 나도 업무에 적응을 했고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 많아져 할아버지할머니도 당분간 오시지 않아도 되었다. 잠시 평화가 오는 듯했다. 






"엄마!!! 엄마!!! 엄마!!!" 

아이가 부르는, 아니 울며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첫째가 잠결에 엉엉 울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안아서 토닥토닥해 주면 아이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에게 악몽을 꿨냐고 물으니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날 밤, 또 아이는 통곡을 하며 나를 찾았다.

그렇게 매일, 2주가 넘게 아이는 잠결에 슬프게 울며 나를 찾았다. 

매일 악몽을 꿔서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바로 아이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다. 


큰아이는 기질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다. 

첫째라는 자리와 타고난 성격이 더해져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는다고 했다. 

그런 경우 스트레스가 몸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한다.

그즈음 아이는 팔을 폈다 접었다 하는 행동을 자주 했는데 그것이 틱증상이었다. 

밤마다 잠결에 울며 엄마를 찾는 행동도 스트레스의 발현이었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니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서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는 게 상담결론이었다. 한 살 차이 남동생은 애증의 경쟁자, 네 살 차이 여동생은 사랑을 모조리 가져간 존재일 터였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한데 기질적으로 잘 드러내지 않기에 속으로 애태우며 쌓여왔던 것이다. 


아이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평소에도 종종 해왔던 둘만의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첫째만 데리고 산책을 가거나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음료를 시켜 먹으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했다. 




" 건아~ 엄마가 이제 회사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원시켜 주실 건데, 집에 왔을 때 엄마 없어도 괜찮겠어?"

 " 엄마도 집에서 우리만 보면 힘드니까 회사 가서 친구랑 얘기도 하고 밥도 편하게 먹어야지~" 


엄마가 힘들다는 걸 알고 엄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아이인데, 속으로는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3월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면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며칠을 남편과 고민 끝에, 휴직하기로 했다. 다시는 휴직하지 않을 생각으로 복직을 했는데 속이 상했다. 업무에 익숙해 질만 하면 다시 휴직이라니. 






휴직을 결정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코로나로 초등입학이 미루어지고,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큰아이는 주 1회 놀이치료와 엄마와의 시간 보내기로 2주 만에 좋아졌고, 점점 안정되어 갔다. 

역시 아이의 문제는 엄마와 양질의 시간 보내기가 답인가 보다. 


출근을 하지 않게 되면서 아이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늘져있던 얼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고, 손잡고 걸으며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했다. 엄마와 둘만의 뽀뽀사인을 만들고 자주 가는 카페에서 '레모네이드'를 시키는 단골 어린이손님이 되기도 하며 엄마와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 아이는 올해 4학년이 되었고, 나는 3년 만에 복직했다. 

다시 아침 전쟁이 시작됐다. 

아이 넷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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