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11명의 저자(여성)가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
직업을 가진다는 것.
그런 것쯤이 아닐까.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던 3년 차 전업맘이었던 나는 아침에 일어날 수조차 없는 무기력과 체력의 한계로 매일을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아이 넷을 키워내고 있었기에 의미 없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느꼈다.)
나는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
내 삶이 행복한가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우울감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자아성찰
나를 찾고 싶다는 의지
최근 복직을 하고 내 삶이 180도 바뀌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활력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날 힘조차 없었는데, 지금은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다.
아마 "나"를 찾아가고 있다는 그 무언가가 내 몸을 일으키는 것 같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지만, 나를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경계에서 혼란을 겪고 고군분투하는 삶, 나아가서 자신을 찾고 워킹맘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돌봄과 작업>의 11명의 저자들에게 들을 수 있다.
정서경(시나리오작가)
- 진짜가 아닌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서유미(소설가)
-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
홍한별(번역가)
-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임소연(과학기술학 연구자)
-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과 살아가기
장하원(과학기술학 연구자)
- 지식에 대한 생각을 바꾼 양육
전유진(아티스트)
- 사라지는 마법으로 사라지지 않기
박재연(미술사 연구사)
- 여러 세계를 연결하며 살아가기
엄지혜(인터뷰어)
- 돌봄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 것
이설아(입양 지원 실천가)
-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김희진(편집자)
- 양육 간증 : 나를 잃었다 찾은 이야기
" 창조적인 작업은 정지되고 고독한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흘러가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진짜 나다운 것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침범당하며 너와 뒤섞이는 와중에 만들어진다. 진짜 창조물은 머리만이 아니라 손발과 팔다리로, 마음과 오장육부를 거쳐 만들어진다. " - 에디터의 노트(p.18)
" 그런데 이제는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 일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하늘에 떠가는 구름의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고 가로수의 색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살필 수도 있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란히 걷는다는 말에 걸맞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나를 감격스럽게 만들었다. " - 서유미(p.48)
" 시간이 많았다면 소설을 더 잘 쓰지 않았을까, 돌아보는 게 대표적이었는데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던 건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내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나는 게으르고 집중력이 부족했다. 그때 인생은 다른 방식으로 버겁고 복잡했고 나는 얄팍했다. 삶의 이력이 길어질수록 인생의 고통은 다양하고 인간의 삶은 복잡한 방식으로 불행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손톱 끝을 물어뜯게 만들던 문제가 해결되어도 인생은 꽃밭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 싶은 것이었다. " - 서유미(p.55)
" 어떤 일이든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어쩐지 더 지치고 거부감이 든다. 힘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커뮤니티와 창작활동을 지속하게 된 나름의 비결이라고 어디 가서든 자주 실토한다. .... 영원하지 못해도 비극이 되는 건 아니다. 영원해서 비극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 - 전유진(p.112~113)
" 물론 불안하고 조급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길게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책임이 사라지거나 가벼워진 것은 아니지만 징징대지 않고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다. 어차피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나에게 가장 혹독한 평가를 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 김희진(p.202)
요즘 남편과 나는 일과 양육 사이에서 커다란 고민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힘이 빠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지만 아이넷을 키워야 하므로 돈벌이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다.
마흔의 경계에서 불안하고 조급하고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되는 순간이 많았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사치는 아닐지, 많은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건 아닐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이야기가 나온다. 아, 다 똑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구나 하고 안심이 되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진짜 그렇다. 그러려면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본래의 존재 가치로 우뚝 서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