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것으로 충족되는 단단한 세계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읽고 정리되어 나오는 정제된 글, 또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풀어쓴 글. 그런 글 다운 글을 쓰고 싶었다. 평소 쓰지 않던 사람이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단번에 글을 잘 쓸리 없었다. 그럼에도 잘 쓰고 싶었고, 쓰기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던 중이었다. 그때 마침 마음산책 북클럽에서 신간을 보내줬다.
<쓰는 직업>. 제목부터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를 읽으라고. 작가도 심지어 20년 차 신문기자라니!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 20년 동안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문득 기억 속 저편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여고생 신문기자, 내가 떠올랐다.
학교 신문반에 들어가 신문기자로 3년을 보냈다. 20년도 지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때마다 무척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바로 '마감'이라는 것과 내가 과연 기사를 잘 쓴 걸까 하는 초조함. 마감을 거쳐 편집장 국어 선생님의 컨펌 사인이 떨어지면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호호깔깔 여고생으로 돌아갔던 시절.
이 책은 일이 싫어 울고, 힘들어서 비명 지르고, 버거워 도망가면서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보람과 성장의 기쁨에 중독돼 20년을 버틴 나의 이야기다.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결국은 쓰는 일로 귀결되는 나의 일.
기자, 즉 '쓰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이 직업과 눈물과 웃음을 섞어가며 지지고 볶은 이야기. 그러므로 결국, 이 이야기는 러브스토리다.
- 책머리에
3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학생의 신분으로 보낸 신문반 시절도 참 힘들다 느꼈는데(물론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친구들과 깔깔거리던 즐겁기도 한 시절이었지만), 작가는 쓰는 일로 20년을 보냈다니.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애증의 시간인 듯했다.
서럽고 지친 날에는 글을 썼다. 아니, 글이라고 차마 명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회사 블로그에 끄적였다. 슬픈 날에도 썼고, 재미있는 일이 있는 날에도 썼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날에도 썼다.
- 215p
주중엔 신문기자로 글을 써대느라 힘든데, 주말엔 글 써대느라 힘들었던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또 썼단다. 모순인 것 같지만, 저 말이 훅 하고 마음을 쳤다. 나 또한 네 아이를 키워내느라, 복직해서 일을 하느라, 지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건, 고요한 이른 아침 시간이다. 조용히 일어나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요즘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내겐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쓰는 사람이었지만, 주말엔 주중과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나'인 것만으로 충족되는 단단한 세계가 있었다.
-218p
곽아람 기자처럼 잘 쓰는 사람은 아니어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나'인 것으로 충족되는 단단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 엄마, 딸, 며느리, 아내, 주무관 등의 역할을 내려놓고 그냥 '나'는 글 쓰는 세계에서 '나'이고 싶다.
곽아람 기자님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도 읽어보려고 한다. 읽고 쓰는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때맞춰 찾아온 그녀. 그리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