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그 이름은 입시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따른 정책적 대안을 내놓고 다시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면 이를 보완하는 새로운 정책 해결방안을 또다시 발표한다.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되다가 결국 원래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된다. 어떻게 띠를 형성하는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출발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당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인 새로 도입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현장 적용을 출발점으로 해보자. 기존의 주입식 교육이든 교사 중심 교육이든 뭐든 간에 무엇에 대한 반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안으로 자기 주도성을 바탕으로 미래역량을 키우자는 것이 핵심 대안이자 정책이다. 그 미래 역량은 공동체 의식, 자기 관리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 등 좋은 능력들은 다 포함되어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를 함양시키기 위한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이며 특히 인공지능기술의 대두로 디지털 교육이 하나의 축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의 한 면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기존의 주입식 교육(점점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과 수동적 교육과정을 벗어던지고 아울러 객관식 시험 대신 서논술형 평가를 통해 학습자들의 사고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좋다! 좋은 교육과정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정책적 대안에서의 문제점은 이렇게 해봤자 결국 의대 입시 블랙홀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의 끝에는 평가 방식과 더불어 대입이다.
미래인재? 주체적 인간? 인공지능?
그래서 결국 관심은 ‘의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데?'이다.
보완책 중 하나로 이공계 지원 및 산학협동 학과 강화, 자율전공학과(부) 도입 및 확대를 통해 의대 쏠림현상을 완화하는 정책이 있다. 다른 하나는 수시 지역인재 강화, 정시에서 내신 도입(몇 년 전부터 서울대부터 하고 있음)을 통해 재수생 유입을 막고 고등학교 과정에 충실히 해야 한다는 정책적 보완책이 있다. 하지만 이런 보완책 제시가 끝나기가 무섭게 현재 고등학교 내신 구조의 변별력 약화, 생활기록부 기록의 부담과 불공정한 기록 문제, 들썩이는 사교육 시장 등의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 또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사교육시장, 생기부 작성하는 교사 대상으로 엄격한 관리를 하겠다는 공문을 내보냈다. 내신 변별력 문제는 생활기록부와 면접 등으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고...... 이런 식으로 문제점과 보완책이 계속 순환 반복될 것이고 입시 사교육 시장은 어떻게든 그에 대한 재빠른 반응을 할 것이다.
국민들은, 아니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은 새로운 교육과정, 인공지능 교과서, 에듀테크 기반 교실혁신 등에 관심이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능력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르침만 주었기에 교육적 성장은 내팽개치고 교육의 결과, 즉 입시의 결과로 나온 학벌과 직업의 종류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또 배워왔고 나라에서는 암암리에 그렇게 가르쳤던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교육은 산업의 일꾼을 기르는 역할을 했기에 자본주의, 시장주의 관점에 입각해서 교육을 다루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의대’를 외치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욕망을, 그리고 심지어 입시 실적을 높이려는 학교와 교사들의 몸부림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당장 코로나19 시국을 되돌아보아도 학생의 안전, 학교의 안정적 학사 운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입수능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이야기만 나왔음을 기억한다. 수능 답안지 채점 마감시한, 수능성적표 발송, 대학들의 입시 일정 고려, 대학교 신입생 입학일 연기 불가 등이 주요 뉴스 사항들이었지, 온라인 교육의 학습적 효과 여부, 학생들의 정서 위기, 가정 해체 같은 문제들에 대한 대응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교육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은 없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기반 2028 대학 입시 정책을 발표했을 때도 5등급 제냐, 9등급 제냐, 그리고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 심화수학을 도입해야 하는지 여부 등도 모두 입시적 측면의 고려대상이었을 뿐, 미래 핵심 역량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들을 함양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는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었다. 왜일까? 그것은 자녀들을 둔 국민들의 귀에는 그런 허울 좋은 표현들은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그래서 그것들이 입시에 어떻게 영향을 준다는 건데?’가 최대 관심사일 뿐이다.
여러 가지 관점에 따라 다른 의견들이 많지만, educate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밖으로 끌어낸다’ 즉, 학습자의 개인적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 가장 일반적 그리고 사전적인 교육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집어넣는’ 우리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 현실은 정반대의 교육의 본질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본질은 내가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보다 교육학 서적, 교육과정총론, 교육법 등에 상세히 나와 있으니 그것들을 참고해도 좋지만 거기 어느 곳에서도 ‘입시’ 교육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7차 교육과정이든, 2015 교육과정이든, 그리고 2022 교육과정이든, 어떤 교육과정에도 ‘입시’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없는’ 단어- 보이지 않는 손-에 국한돼서 모든 교육적, 정책적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당장 내년에 거창하게 시행될 2022 개정 교육과정이든, 인공지능 교과서 도입이든 결론은 그 어떤 정책 발표에도 들어 있지 않은 ‘입시’라는 괴물에 종속되어 그 괴물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낳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입시 보완책만 되풀이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교육 정책의 의지, 목적, 비전, 취지 등은 사라지게 되기에 교육당국과 학교, 교사들은 다시 그 정책들의 본질을 되새겨 교육의 본질에 입각한 교육활동을 해야 하며 학생 및 학부모 역시 사회 흐름의 변화에 맞추어 20세기 자녀 교육관을 버리고 아이들의 행복한 밝은 미래를 위한 양육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면 이렇게 교육에 온갖 관심과 지원을 쏟아부으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래 핵심 역량을 함양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며 공동체 속에서 남과 협동하며 문제를 해결하면 어떤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까?
모두가 '하하' 웃으면서 살아가는 세상일까? 범죄 하나 없고 모두가 안심하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세상일까?
미래 교육이란 것이 도대체 뭘까?
지금의 교육 환경으로는 어떤 학생들로 키워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교육은 행복을 경험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 과정을 통해 각자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남들이 정해준 진로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만의 행복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교육에서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유토피아를 꿈꿔본 자만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을 경험한 자만이 행복을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