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재인증 앞에서 학교의 길을 묻다

일반고 교육과정과 IB 교육과정의 결정적 차이

by 오영호

올해 표선고는 IB world school로 인증을 받은 지 5년째 해로 재인증(evaluation)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가끔은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우리는 재인증을 받아야 할까.
IB DP를 운영하는 학교로 계속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일반고로 전환할 것인가.

관리자로서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고민의 이유는 분명했다.


1. 높아진 관심, 그리고 늘어나는 민원


IB DP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전·편입학 문의와 지원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는 학교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요구와 민원의 증가로 이어졌다.


학교를 둘러싼 민원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느끼는 부담과 심리적 피로 역시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고 싶지만, 때로는 행정과 대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현실과 마주한다.


2. 교사 전입의 어려움


첫 번째 이유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다른 학교에서 표선고로 전입을 희망하는 교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떠나는 교사는 있지만 들어오는 교사는 드물다.(물론 나가고 싶어 하는 교사가 없다는 것도 모순이며 IB 학교 환경의 본질적 특성을 보여준다.)


전입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학부모 민원에 대한 부담이 자주 언급된다. 조용히, 그리고 수업에 집중하며 근무하고 싶지만, 학부모의 높은 관심과 기대가 때로는 과도한 간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IB라는 비교적 생소한 교육과정에 대한 두려움 역시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새로운 철학, 새로운 평가, 새로운 수업 방식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다만 꼭 전하고 싶은 사실도 있다. 2학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민원은 점차 잦아들었고, 학교와 가정 간의 이해와 신뢰가 서서히 회복되는 긍정적인 변화도 분명히 나타났다.


3. 교사의 피로도


IB DP 운영은 교사들에게 상당한 에너지와 헌신을 요구한다. 일반고였다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업무들이 추가되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준비와 기록, 심지어 수학여행 중에도 학생 지도를 마친 뒤 업무를 이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도 있지만, “이 고생이 학교를 떠나 일반고에서 근무하게 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허탈감이 생길 때도 있다. 이는 단순한 업무 과중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 고민이다.


위와 같은 이유만으로도 다시 일반고로 돌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B라는 열차는 이미 오래전에 출발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선생님들은 IB의 비전과 철학을 공유하며 그 방향성에 공감하고 있다.


물론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우리는 이미 이 길 위에 서 있다”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 2월 한 달간 이어진 재인증 협의와 연수를 통해 우리는 그 사실을 더욱 분명히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 대신 다짐에 가까운 선택을 하게 된다.

IB 교육 철학을 학교 교육 전반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하자는 다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고와는 다른 길을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반고와 IB 교육과정은 무엇이 다른가


1. 수능 중심 교육과정의 여부


일반고에서 ‘수능’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교육과정 전반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고교학점제 역시 이상적으로 설계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수능이라는 거대한 평가 체계를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


교육과정과 평가의 불일치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성취기준 중심 수업을 시도하더라도, 고3 교실에서는 수능 대비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 수업이나 탐구 활동이 학생들에게 “입시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과 충돌하는 순간, 교사의 수업 선택권 역시 제약을 받는다.


반면 IB DP에서는 수능 준비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교과 수업 본연의 목표와 탐구 중심 학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탐구보고서 작성, 에세이, 토론과 발표가 고3 교실의 일상이 되는 경험은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변화였다.


2. 평가 방식의 차이


IB DP 2-3학년 과정에서는 절대평가 체제가 실시된다. 이는 학생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교사에게는 성취기준 기반 평가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학생들은 타인과의 비교보다 ‘기준 도달’에 집중하게 되고, 협력 학습이나 모둠 활동에서도 경쟁보다 성취와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졸업생들의 이야기다. 일부 학생들은 대학 진학 후 조별 활동에서 문화적 충돌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협력을 당연하게 여기던 태도가 오히려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상황. 이는 학교 문화와 사회 문화 간의 간극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평가는 IB DP 내부/외부 평가에 초점이 맞춰지기에 수업과 평가 간의 논리성, 응집성, 긴밀성이 있다. 즉, 언어와 문학의 구술시험을 위해 책을 읽고 교사와 문답하는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식이다. 하지만 일반고에서의 수행평가는 생활기록부용에 초점이 맞춰지며 최종 시험인 수능과의 연계성은 거의 없다. 수업과 평가가 각각 다르게 운영된다는 번잡함이 있다.


3. 규정 준수와 주도성(agency)


IB 교육과정에는 엄격한 규정이 존재한다. 이 규정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분명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DP 과목의 HL/SL 수업 분류에 따른 일정 시간 이상의 수업, 언어와 문학인 경우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 학습, 소논문에서의 정해진 형식의 연구보고서 작성 등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 강한 규정은 오히려 자율성과 주도성을 확장시킨다. 규정이라는 공통의 틀 안에서 교사는 수업을 창의적으로 설계할 수 있고, 학생은 학습과 활동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한다.


CAS 활동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소논문에서 어떤 연구 질문을 설정할 것인지. 선택의 권한은 학생에게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학생이 감당한다.


이와 같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중요시하는 ‘학습자 주도성’은 결국 수업과 평가에서의 강한 규정 적용을 제대로 실시하고 있는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규정 이외의 활동에 대해서는 충분히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자율권을 주기 때문에 자율성과 주도성의 크기는 규정 적용 강도에 비례해 증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지난해 약 20여 개 기관과 학교가 표선고를 방문했다. 학교 설명을 할 때마 위의 세 가지 차이를 빠짐없이 공유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IB를 도입하라”는 권유가 아니다.


일반고 안에서도 충분히 IB적인 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취기준 중심 수업, 과정 중심 평가, 학생 주도 탐구는 특정 교육과정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 IB 교육과정은 지향점에서 상당히 닮아 있다. 차이는 제도 운영 방식과 평가 구조, 그리고 학교 문화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역설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굳이 외부의 교육과정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훌륭한 교육과정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IB 열풍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 교육을 근본에서 바꾸기보다, 새로운 틀을 가져오는 일이 더 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슬프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 글은 특정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결론이 아니다.

학교의 방향을 고민하는 한 교육자의 솔직한 기록이며,

학생·학부모·교사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은 성찰이다.


우리는 어떤 교육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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