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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호 Jun 15. 2018

나의 꿈은 뭐였을까?

나는 어떻게 영어교사가 되었나?

학생들이 묻는다.


“선생님은 어떻게 선생님이 되셨어요?”

“언제부터 그 꿈을 가지셨나요?”

“공부는 어떻게 해야 선생님이 될 수 있나요?”


음... 솔직히 이런 질문에 답하자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왜냐면 시대나 처한 상황이 다르고 공부실력도 차이가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그 당시에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던 중 나에게 ‘넌 꼭 샌님같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무슨 의미로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분이 불쾌했다는 기억만 남았다. 친구들에게도 이 상황을 말했더니 '선생님이 지금 너 무시하신 것 같은데?'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그리곤 하교를 위해 계단을 내려가며 다짐했다.

'절대 교사는 안 할거야!'


'철없는 애들한테 단순한 말 한마디로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냐! 난, 그런 책임을 가진 사람이 되기엔 너무 약하고 여려.'


아직도 이렇게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영어교육과] 대신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했다. 교사보다는 단순히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뭔가 되어 있겠지라는 수동적인 생각만 간직한채......


그런데, 입학한 후 시간이 지나 대학교 1학년 말에 한 선배가 말씀하셨다.

나중에 회사를 지원하려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써야 하는데, 교원자격증이라도 따는 게 어떤가라며 '교직이수'를 권하셨다. 한편, 다른 선배는 원하지도 않는 교사를 위해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어'를 더욱 공부하는 것은 어떠냐며 전공공부에 더 매진하라는 충고를 하셨다.

대학교 와서 처음으로 스스로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한참 고민 끝에 ‘두 가지 다 하자’라는 생각에 교직과정을 이수하며 영어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쉽지 않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당시 90년대 중반에는 회사 일자리보다는 재택근무를 하며 고소득을 보장하는 여러 일자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번역사’라는 직업이었다. ‘나도 준비해볼까’하는 사이에 주변에서는 이미 수험서들을 사들고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막연하게 영어로 뭔가 해야지 하는 상황이었는데 처음으로 ‘도전’해 볼 것이 생긴 것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우선 서점에 가서 번역 관련 도서와 함께 번역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97년 초에는 서울에 바람도 쐴겸 올라가서 ‘번역사 사무실’에도 들려 관련 정보를 얻을 정도로 열정적이 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준비하길 5개월.....

난 포기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이 직종은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글 번역기도 없는 시절이었지만, 이미 ‘빌 게이츠’는 하버드 재학 시절에 재미로 ‘번역기’를 만들었으며, 앞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면 인간이 번역에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5%라는 통계도 알 수 있었다. 난 먼저 그만두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2년 뒤에 그만두었다. 결국 내 예상대로 ‘번역사’라는 직업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번역사라는 직업이 있긴하지만 그렇게 난리치며 아무나 준비할 수 있는 그때의 상황과는 다르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교직에 대한 생각은 구체적이지 못했고 더군다나 그리 내키지도 않았다.

4학년 때 갔었던 교생실습에서는 신문 등의 매체에서 오르내리던 '교실붕괴'만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이 간 교생선생님들 중 절반 이상이 교사의 꿈을 접겠다고 하였다.

나 역시 아무 생각없이 동참하였다.


그러던 중 한 선배로부터 '학원강사' 파트타임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 하루 3시간에서 5시간 정도 였다. 용돈벌이도 할 겸 흔쾌히 승낙했다. 이 무렵 나는 ‘영문학’ 공부에 뒤늦게 재미를 붙인 터라, 또 막연하게나마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기도 해서 낮에는 틈틈이 영어공부도 하고 영문학 독서도 하며 나름 고상한 척 시간을 보내는 시기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공부만 하겠다는 아들을 보며 속상해 하셨던 상황이기도 하였다. 또한 여전히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정보는 막막했고 그냥 00 대학교 대학원 준비나 하며 졸업을 기다리는 입장이었으니 선배의 학원강사 제의는 그야말로 시기적절하였다.


그런데, 왜 인지 모르게 ‘교생’때도 못 느꼈던 ‘가르침’의 재미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한 학생이 찾아 와서는

‘선생님, 덕분에 좋은 고등학교에 겨우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처음으로 학생에게 감사의 표현을 들은 것이었다. 난 그저 시간이나 때우자는 생각에 재미있게 가르치면서 내 스트레스나 풀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곤 한 달 뒤, 경기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이모와 이모부가 나에게 제안을 하셨다.

교사가 되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대학원에 다니며 할 수 있으니 교사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난 그저 교사는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직업이고, 꾸준히 대학원이나 유학의 길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끌려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좋아~ 한 번 해보자.

내가 돈 벌어서 대학원도 다니고, 외국에서 공부도 해 보자.


하지만, 학과 선배들 중 교직을 이수하고 교사가 될 준비를 하는 분들이 없었다. 당연히,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서점부터 가서 교육학 서적 등을 뒤지며 여유롭게 공부하시 시작하였다. 교육학 책은 상당히 두꺼웠지만 그냥 소설책 읽듯이 공부했다. 그런데 학창시절에도 교육학을 배웠지만 지금 나이가 조금 먹은 시점에서 다시 보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육학이란 것이 결국 공부잘하는 법이란 것을 알게 되니 이를 나한테 적용해보기 시작하였다.

즉, 공부를 능동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나의 소양을 넓히고 내 지적수준을 깊게 만들기 위해, 나아가 이런 기분을 미래의 제자들에게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공부가 아니라 삶의 교양수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과거급제는 팽개치고 유유자적하게 독서만 즐기는 선비처럼 혼자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임용고시'는 서울 노량진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주변의 충고를 듣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연 학원까지 다니며 사교육에 의존해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가?


고민도 잠시 결국 서울 공기도 마실 겸 친구들도 볼 겸 해서 영등포의 한 고시원에 친구랑 자리를 잡고 5개월간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파를 뚫고 자리를 잡게 되면 강의실에는 이미 수많은 수험생들이 책을 펴고 공부하고 있었던 모습이 무척 충격적인 인상으로 다가왔다. 다들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있구나...... 난 정말 편하게 공부하고 있었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 한 명당 약 1000여명의 학생이 TV를 보며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솔직히 교사가 될 사람이 이런 식의 시스템에 길들여야 진다는 것이 나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부계획 및 추진 만큼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공부해야 겠다고 다짐하였다.

즉, 영어는 그것이 토플이든, 토익이든, 고급영문독해든, 학원자료든 간에 스스로 해석하고 요약하고 주제를 찾고 근거를 쓰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중에 어떤 어려운 글이 나와도 중심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교육학은 단순히 문제를 풀고 답을 이해하기 보다는 처음에 했던 대로 큰 흐름 속에서 내 학생들에게 이런 이론을 가지고 상담을 한다면, 그리고 이런 예들을 가지고 훈화를 한다면 참교사가 될 수 있겠다는 교사마인드로 크게 크게 이해 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였다.


다시 말해,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 환경을 충분히 이용하되, 자신만의 [목표]에 타당한 공부[내용]과 공부[방법]을 적용한다면 좋은 [평가]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즉, 교육학의 '교육과정' 부분에서 학습한 목표-내용-방법-평가의 일치화를 나에게 적용한 것이었다.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교육학을 공부하며 교육학은 결국 공부잘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문이기에 이를 나에세 스스럼 없이 적용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남들보다 준비기간면에서 상대적으로 짧게 준비하였지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다음과 같다고 스스로 분석해보았다.


첫째, 공부에 대한 동기가 뚜렷했다. 교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나중에 찾아왔지만 일단 마음 먹은 다음에는 학생들을 위해 공부하자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공 영어에서 어느 전공책의 한 쪽 구석에나 나옴직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이 출제되었는데, 나는 이를 교사가 된 후 학생들에게 적용해보아야겠다라는 마음에 학습했던 부분이라 어렵지 않게 -외우지도 않고- 이해하여 정답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나에게는 합격의 당락을 가르는 분수령이었다고 자평한다. 후배들이 자꾸 물어 보았다. 합격 비결이 뭐냐고...... 그때마다 나는 외재적인(extrinsic) 동기가 아닌 내재적인(intrinsic) 동기가 제일 중요한 비결이라고 답한다. 교육학 역시 위에서 서술한 대로 교사마인드로 - 교사가 되었을 거라고 가정하고- 공부를 하니 즐겁게 그리고 나름 진지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둘째, 학원을 이용하기는 하였으나, 공부에 있어서는 주도권을 학원에 뺏기지 않았다. 내가 잡은 큰 계획에 학원이 있고  내가 공부하는 부분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나오면 나는 학원 등에서 배운 내용을 이용해 해결하려고 하였다. 즉, 스스로 공부하다가 힘들때에만 학원 교재 및 강의 내용을 참조하며 능동적으로 공부를 주도하였던 것이 합격의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공부 계획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평가(시험)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에 알맞는 목표 - 내용(교재, 강의)- 방법을 선정했던 것이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어라면 어떤 어려운 내용이 나오고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그 속에서 주제를 찾고 그 근거를 찾는 것이 바로 타당성 있는 공부방법이라고 판단하여 괴로워도 꾸준히 다양한 종류의 독해를 실천하였다. 교육학은 자잘한 문제를 암기하기 보다는 각 이론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연관성 등을 분석하였다. 왜냐하면,  각각의 이론이라는 달걀들이 서로 다른 듯해도 결국은 분명 교육학이라는 큰 바구니 안에 담길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 및 통찰은 혼자서 그 공부내용에 대해 곱씹어 보고 되새기는 성찰 과정이 없으면 안 된다. 즉, 그 공부에 대해서 내가 주도권을 갖고 즐기며 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과 실천 방법이 나온 것이라고 본다.


셋째, 정보였다. 즉, 정보를 스스로 찾고 절대 내 눈으로 보고 듣고 경험하지 않은 정보들은 버렸다. 수험생일 수록 각종 정보에 현혹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번역사를 준비하면서 최대한 정보를 발품삼아서 수집했고, 그 결과 번역사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대학원 준비를 하며 무슨 과목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으나, 대학원 이후의 삶이 내가 처한 환경에서 준비하기에는 그리 순탄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임용고시 공부를 위해 학원가를 돌아다니며 직접 자료를 구하고 나의 자료와 비교하며 어떤 자료가 가치 있고 어떤 자료가 필요 없는 자료인 지를 끊임없이 비교하였다.


넷째는 바로 도전이자 기회를 잡는 것이었다. 위기라는 것이 결국 위험과 기회라는 뜻인 거처럼, 4학년 때 대학원 공부를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위기 상황에서 학원강사 제안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교사를 권유하는 이모님의 의견을 무시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방 한구석에서는 아무런 위기도 없다. 스마트폰 속의 게임에는 아무런 위기가 없다. 당연히 기회도 없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독서를 하든, 영화를 보든, 어떤 대회에 참여하든, 동아리 활동을 하든간에 손을 내밀어야만 기회라는 상대방도 당신의 손을 붙잡게 된다. 꿈은 결국 여러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지, 머릿 속에 처음부터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적다보니 지금의 학생부종합전형 입시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 여기에 다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기

자기주도성

정보(도구)활용능력

그리고

도전정신!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기주도적인 삶이라는 것은 이처럼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나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찾는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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