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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호 Jun 29. 2018

헛된 희망의 가치

2018 러시아 월드컵 대독일전에 대한 소회


2018년 6월 27일 11:00 러시아 월드컵 대독일전을 앞고 우리반애들은 종례시간에 독일전 승리를 기원하며 힘찬 화이팅을 외쳤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무조건 독일을 2골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하며, 멕시코는 스웨덴을 잡아주어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

우린 비록 1패를 안았지만 세계랭킹 1위 독일을 이겨야하는 상황이고, 멕시코 역시 우리를 이기긴 했으나 독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스웨덴과의 경기이기에 이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하나의 조건 충족보다는 둘 다 충족하지 못 할 확률이 더 높았다. 아니.. 우리가 독일에게 2:0으로 이기기 보단 7:0로 질 확률이 더 높다고 도박사들은 예측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헛된 희망] 갖지 말고 기말고사 공부라도 열심히 하라’라고 종례사항을 전달하였다. 하지만 우리반 애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내며 ‘그럴리가 없다. 확률은 떨어지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로서, 스포츠 세계는 곧 확률의 스포츠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희망을 갖기 보단 현실적인 고민- 나는 2:1로 지거나 1:1로 비기는 쪽을 생각했었다- 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라고 생각하던 중이어서 속으로 웃음만 나왔다.


‘아직 우리 애들은 순수하구나. 그런 1%의 희망을 갖다니...’


물론 ‘공은 둥글다’라며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 강조하긴 하였다. 우리도 예전에 독일과 브라질을 이긴 적도 있었으니깐..


그런데..


그 불가능을 거의 가능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었다. 비록 멕시코가 스웨덴에 지는 바람에 - 이 또한 확률이 낮았었다 - 그토록 염원했던 16강은 못 갔지만 거함 독일을 격침해버렸던 것이었다.

충전중이어서 아침에야 확인했던 핸드폰에는 우리반 애들의 단톡 매시지가 몇십개나 와 있었다.

‘선생님이 틀렸다.’

‘지금 왜 아무 반응이 없나요?’

‘독일이 이긴다면서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어떤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가야할까 고민하면서, ‘희망’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영화 ‘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서 매트릭스 창시자 ‘아키텍트’는 주인공 ‘네오’가 곤경에 처한 연인인 ‘트리니티’를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


 ‘희망은 인간 본연의 환상이지’라는 말을 읊조린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생물들 중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감정이며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인간만이 가졌다는 것은 원래는 누구에게도 없는, 즉 객관적이지 않은 소유물로서 인간만의 주관적인 단어라고 한정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그래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인 것으로, 결국은 객관적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며 나아가 그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자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결국은 현재의 상황을 더 좋게 만드는 데는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도움을 주지 않고 다만 우리 인간 마음 속에만 자생하는 현실 탈출 도구인 것이다.


가령 빚이 100억인데, 희망만 갖고 해결할 수 있는가? 지금 점수는 형편없는데, 불과 2개월 뒤 수능 시험이라면 서울대 갈 수 있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가? 


가능성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일만 해야할 것인가? 아님 계속 공부만 해야할 것인가? 아마도 이런 희망이야말로 헛된 희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바꿀 확률이 아주.....적을테니까.


하지만.....

와다 이치로라는 일본 작가는 하루 하루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01의 365승은 37.8.

0.99의 365승은 0.026”

무슨 말인가?

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365일 하다보면 분명 긍정의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 공식을 만약 희망이라는 확률에 대한 논의에 대입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즉 확률이 1%만 된다면 매일 365일 노력했을 경우 그것은 무려 37.8이라는 숫자를 만들어내지만, 확률이 1% 미만인 경우는 오히려 더 작아지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제의 경기는 다들 1%의 확률이라고 하였다. 아마 그 보다 적었을 수도 있지만 편의상 1%라고 얘기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팀은 그 1%의 확률을 갖고 365일 매일 연습하는 성실함처럼 100분간(연장 10분 포함) 투혼을 발휘하였기에 가능성을 38%로 높였다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하의 확률은?

0.99랑 1.01의 차이는 무엇인가?


큰 차이처럼 보이지 않지만,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1.0미만이냐 아니냐]는 확률의 세계에서는 무척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1% 미만의 가능성인 경우는 물론 노력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을 경우 밑빠진 독에 물 붇는 것처럼 오히려 현상황을 더욱 약화시킬 따름인 것이다. 이 경우는 정말 헛된 희망일 수도 있다. 이 경우는 그 상황을 벗어나는 한 가지 노력만 할 것이 아니라 그걸 포기하고 재빨리 다른 루트를 모색해봐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빚이 100억인 상황에서는 무조건 희망을 갖고 돈을 갚기 보다 빚 상환을 위한 다른 루트를 찾는 노력을 통해 가능성을 1% 이상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위의 예의 경우, 100억원의 빚이 있는 사람은 무턱대고 갚기보다는 파산 신청을 통한 빚상환 방법이나 국가의 빚상환제도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또는 모의고사 점수가 안 나오는 학생의 경우, 무조건적인 서울대입학을 고집하기 보다는 인생 설계를 재검토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입학을 목표로 한 후 대학원을 서울대 대학원으로 가는 것도 확률을 0.99%에서 1.01%로 만드는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1% 이상의 희망을 갖을 수만 있다면 투철한 정신으로 도전해볼 경우 그것은 헛된 희망의 현실화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능성을 0.99%에서 1.01%로 바꾸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그 1%의 희망을 365일 할 수 있는 근성과 노력이다. 지난 밤의 대표팀은 한 경기에 그 1%의 가능성을 갖고 365일만큼의 노력100분에 쏟아부었기에 세계최강을 격파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은 여전히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다.

때론 쉽게 포기하고, 쉽게 희망을 갖기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도전해보자고....

설령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 같은 주변 사람들도 그 노력을 인정해줄 것이며, 그러한 도전과 노력은 분명 힘든 미래를 살아가는데 큰 도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마치 손흥민의 인터뷰에서 ‘4년간 쏟아부은 월드컵 마지막 경기인만큼 후회는 없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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