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인디애나 존스 최신 영화 시리즈가 나온다고 연일 광고를 한다. 특히 그 영화의 OST인 ‘Raiders March‘가 나오는 장면은 뭔가 뭉클하게 만들면서도 나를 8-90년대의 추억 속으로 다시 스며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그 음악을 계속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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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어때? 좋지?’
‘……’.
별 반응이 없다.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억지로 오리지널 영화 ‘Raiders(인디애나 존스 1편)’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그 음악을 들려주었다.
‘어때? 이 음악!!’
‘좋은 것 같아!
(아들들의 반응은 딸들의 반응과는 다르다. 이 정도 대답이면 엄청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결국 스토리(영화)가 있어야, 그리고 그 음악이 사용되는 맥락(또는 환경)이 존재했을 때서야 그 음악은 비로소 빛을 내기 시작하고 그만의 가치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당시 추억이 떠오르고, 그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도 같은 직장이라는 맥락 속에서 공통의 경험이라는 기반이 있기에 더욱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시간이 흐른 후 그 환경을 벗어나서 만나게 되면 어느 정도의 반가움과 그리움은 있겠지만 조금은 어색해지며 예전 같은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오래간만에 동창들을 만나거나 옛 친구들을 만나면 추억만을 되풀이하며 여러 번 반복된 에피소드라도 서로 웃어대는 이유가 바로 추억이라는 공통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제는 추억 팔이는 그만하고 골프나 주식 얘기를 할까?’하면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대화가 유지되겠지만 그 맥락에 녹아들지 못하는 다수의 친구들로 인해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첫사랑의 대상도 (초등) 학교가 아닌 다른 시간대, 다른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 애틋함보다는 이상한 어색함만 감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 - 지금은 대학입학에서는 자기소개서 작성이 폐지되었다 - 자기소개서 작성 지도를 할 때 제일 애를 먹었던 것이 바로 ‘스토리 구성’이었다. 학생들은 뭔가 스토리를 위해 학교 생활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들은 자기소개서에 스토리가 있기를 바란다. 뭔가 힘들었던 역경을 극복한 사례, 자그마한 활동 하나로 특별한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보다 심화해서 학습하기 위해 대학을 지원했다는 동기 등, 말도 안 되는 스토리 구상을 요구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난 그저 주어진 학교 활동을 했을 뿐인데…… 딱히 그 대학을 위해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이런 고민을 가진 학생들이 태반이라 그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옆에 놓고 같이 상담을 하며 자기소개서를 위한 스토리 구상 작업을 같이 해야 했다. 서로 답이 없는 여정이란 걸 알지만 결국 이내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내 고등학교 생활이, 어쩌면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점’으로 점철된 내 생활이 결국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난 그저 더 나은 미래를 꿈꿨을 뿐이다.’
이 문장 하나로 아무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았던 활동들이 그 생명력을 뿜어내며 선으로 연결되기 시작하고 하나의 스토리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학생도, 나도 신기한 듯 웃으며 스토리를 만들어간다.(없는 이야기를 주작한다는 말로 듣지는 않았으면 한다. 실제 활동을 한 것들을 엮는 과정일 뿐이니깐.)
그것은 의미 없는 사건의 나열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주제를 정해서 써 내려가면 나름의 스토리와 맥락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 사건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이 순간순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결지음으로써 다시 힘을 얻고 살아갈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즉, 맥락(스토리)을 설정함으로써 그 속에서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삶들도 비로소 생명력을 띠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맥락은 곧 환경이고, 스토리이다. 이것은 유전적 요소와는 다르게 우리의 의지로 얼마든지 엮어내고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들이다.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인생들, 그 속의 사건들과 경험들처럼 보이는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로 인해 생기는 우울함과 막연함, 절망감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그 경험들 사이의 틈을 메꾸고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도전적 자세 또한 우리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을 맡고 있다. 11년째 3학년 수업이지만 항상 공통적인 질문이 있다.
‘선생님! 공부 안 해도 살 수 있죠? 공부가 의미 없는 것 같아서요, 저한테는……‘
그럴 때마다 하는 답변은 항상 같다.
당연하지!
나도 그리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여기 서서 너희들과 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잖아.
부모님들도 그리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을 거야.(웃음) 하지만 너희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잖아.
난 우리 아들들이 너희들 정도의 절반만 돼도 좋겠는데!!
하지만 지금의 공부 결과에 상관없이 공부하려는 태도와 자세 등의 과정은 중요할 거야.
그 속에서 너희들의 생각, 가치관, 신념, 의지 등은 나중의 성인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거야.
그것은 바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야.
그렇기에 꼭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지 말자.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사회생활… 이 모든 것에는 정해진 룰이 없다. 훌륭한 삶,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이라고 규정된 것은 없다. 다만, 주어진 삶의 기회가 오면 마주쳤을 때 눈을 돌리지 말고 직면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 ‘기회’라는 것에 손을 내밀자. 그 손 내미는 경험만으로도 나중의 내 인생에 멋진 ’점‘으로 찍혀있을 것이다. 비록 그 ’ 기회‘와의 만남 속에서 슬픔과 좌절, 고통을 경험했을지라도 그 시도만으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인생의 변환점이라는 것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상처가 될까 봐 외면하지 말고, 무언가의 업적을 남기려고 숨죽여서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인생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