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대책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이른바 '학교에서 배운 것에서만 수능출제하라'는 지시로 나라가 시끄럽다. (관련기사: 윤대통령 "사교육 내모는 건 불공정"…'카르텔 경고장'으로 교육개혁 의지 | 연합뉴스 TV (yonhapnewstv.co.kr) 교사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선에서만 발언한다면 위의 내용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당연히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시험출제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다음의 문제들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1. 학교에서 배운 내용의 범위
2. 공정한 변별력의 기준 제시가 현재 고등학생들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
3. 사교육 킬러 문항의 효과에 따른 사교육 근절 방안 가능성
우선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2300여 개의 고등학교 교육과정 및 배운 범위가 다 다르다는 것, 이 사실만으로 대 통령의 발언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교과서도 교육과정도 저마다 각각인 상황에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라는 말의 범위는 의미가 없는 말이 된다. 특정 교과서에서만 출제할 수도 없고, 설령 거기서 출제되었다 할지라도 다른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범위가 될 수도 있어서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EBS 연계를 100%까지 증가할 경우 교과서 및 수업 등이 필요 없어지거나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하게 되며, 교과의 다양성과 학생들의 교과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고교학점제에 따라 수능 과목 이외의 과목들은 등한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공정한 변별력의 기준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는 사교육 문제와도 직결된다. 물론, 문제를 위한 문제 같은 킬러 문항은 당연히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대처럼 1점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자칫 '쉬운 수능'이라는 메시지를 줄 경우 현재 고등학교 3학년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물수능으로 인해 수능 최저 충족률이 높아지게 되고 결국 내신싸움으로 판가름 나게 될 것이며 이는 다시 학교 내신에 대한 차별 및 불공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결국 내신 경쟁하라는 거냐고 불만을 가지게 된다.) 또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지면 수능 준비에 대한 자신감으로 인해 재수 삼수로의 선택이 훨씬 쉬워질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불수능으로 출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본질은 물수능/불수능을 마음대로 결정하기도, 출제하기도 쉽지 않으며 물수능/불수능을 느끼는 당사자들의 기준도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강남의 학생들이 쉬우면 물수능인가? 아니면 농어촌 학교의 학생들이 쉬우면 물수능인가?) 결론적으로 변별력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위의 발언은 출제자에는 부담감을, 학생들에게는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이어서 이 기회에 킬러문항 등을 배제함으로써 사교육과의 카르텔을 끊자는 대통령의 의지를 살펴보자. 당연히 사교육이 가져오는 폐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다만, 지난 3-40년간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사교육이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가했음을 우리는 통계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즉, 사교육 영역은 제도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영역이다. 아무리 쉽게 출제해도 더 나은 점수를 받고 더 나은 대학을 가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은 근절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칼에 사교육시장을 폐쇄했을 경우 고용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도 있겠지만 사교육 시장의 순기능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즉, 성인교육 및 취미 계발 위주(외국어, IT, 요리, 독서 등)의 사교육 시장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수능과 같은 일제식 수업인 경우는 난이도에 상관없이 사교육이 학교교육보다 훨씬 준비를 잘할 수 있고 효율성도 높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학교마다, 수업마다, 교사마다 저마다의 개별적인, 개성적인 수업을 통해-발표, 토론, 보고서 제출 등- 교육과정이 이루어질 경우 지금과 같은 내신대비, 수능 대비 사교육 시장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물론 발표, 토론, 보고서 제출 대비 학원들이 발 빠르게 성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즉, 쉬운 수능은 쉬운 수능대로, 어려운 수능은 어려운 수능대로 사교육 시장은 욕망의 기제로 움직이는 생물이기에 근절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처음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었을 때에도 강남 사교육 시장은 첫 1년을 준비기간으로 놓고 이듬해부터 성공가도를 달렸었다.)
아울러, 정부의 이와 같은 지침으로 인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가 시행될 계획을 보며 앞으로 누가 감히 출제위원으로 들어갈까 고민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수능 자체에 대한 대책은 더 이상 없다고 봐야 한다.(미세한 조정은 할 수 있겠지만) 결국 교육의 영역을 넘어서서 욕망의 사다리가 하나가 아닌 여러 개로 분산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서울대 하나, 인서울 하나, 의대 하나만의 욕망이 아니라 유튜버를 꿈꿔도 되고, 요리사가 돼도 좋고, 프로게이머가 되어도, 식당 종업원이 되어도 기죽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결국 모든 대책은 사교육 증가와 더불어 수험생의 고통 심화, 학교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지게 될 뿐이다.
왜 꼭 개천에서 용이 나와야만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렁이가 되어도 살맛 나는 세상이 되어야 지금의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