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체험 - 건빵의 탄생과 계급의 역전 그리고 허망함
수능을 마치고 나의 기대와는 다른 성적표를 마주한 상태로, 이러 저러한 이유로 교대를 오게 되었다. 부모님의 강력한 권유 혹은 강제로 교대를 입학하게 되었을 때
'내가 무슨 아이들을 가르치나? 그것도 초등학생을!!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하며 반드시 재수를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재수를 위해서 챙겨 온 각종 교재가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한 달만에 버리게 되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교대에는 여자친구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것도 남자들의 세 배나 말이다!
집에 누나가 있었지만 여자라는 존재는 내게 미지의 존재, 그리고 영원한 이상향이었다. 그런 여자친구들(애인 아니고 그냥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나 축복이었다. 아~~! 이것이 대학생활이구나!!! 고등학교 3년 동안 냄새나는 수컷들과의 생활은 의식의 저편으로 아득히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어둠이 깃든단 말인가? 그리고 1학년 1학기 강의들은 대부분 교양과목으로 구성이 되었기에 나는 더욱더 신이 났다. '그래!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라도 뭔가 다르구나!'. 강의시간에 교수님들께 질문도 하고 나름 즐겁게 보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나의 대학생활에 큰 걸림돌 하나가 이내 찾아오고 말았으니 '내리까시(내가 다닌 학교에선 이렇게 불렀다.)'라고 하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교육시키는 일이었다. 상하 위계질서가 조금이라도 형성되어 있는 집단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벌어지는 상당히 상태 안 좋은 그것 말이다. 명분은 이랬다.
'동기들끼리는 서로 잘 뭉쳐야 한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어느 새끼가 만들었는지 그 기원을 알 순 없지만, 선배들의 눈물겨운 배려심에 그리고 선배들이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는 것을 알고도 모른척해주면서, 후배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얼차려를 받으며 서로의 어깨에서 전달되는 온기를 느끼며 동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간다나 어쩐다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대학생이나 되어서 한다는 것에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었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어떡하겠는가? 나는 이런 짓 못하겠다고 선배들에게 말했고, 분위기는 아주 야릇한 희한한 상태가 되었다. 앞장서서 후배들을 지도하던 선배들의 눈빛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걸 보았다.
'내가 이 짓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냐?', '너만 하는 거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거다.' 등등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못하겠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후로 선배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하나 생겼다.
건방진 빵빵학번. 나는 00학번이었기 때문이다. '내리까시 거부사건'도 겪고 '건빵'이라는 별명도 생기고 나의 대학교 1학년은 선배들과 그리 아름다운 관계는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동기들에게 제발 부디 선배랍시고 후배들에게 허세 떨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갈구는 등 불합리한 일체의 어떤 것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부탁했다. 실제로 내 기억에 혹은 내 시야 안에서 00학번 우리과 동기들은 선배든 후배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 그렇게 졸업하는 날까지 지냈었다.
나는 인간의 삶에 위계질서를 만드는 일체의 행동이 너무 싫었다.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리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병역의 의무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 대학생활 중에 찾아왔다. 나는 ROTC를 지원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밥을 서둘러 먹거나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쉽게 체하고 만다. 그렇기에 식사속도가 굉장히 느린데 군대에 관한 소문을 들어보니 병사로 군생활을 할 경우 식사시간도 제한적이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빨리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년 남짓한 시간을 늘 체할 순 없으니 식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간부(장교)가 되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ROTC 면접을 잘 봤고, 형편없는 경쟁률(1.2:1 정도?)을 뚫고 대학교 3, 4학년을 학군단과 같이 병행하여 무사히 임관하게 되었다. 어차피 장기근무가 아니라 의무기간만 하고 나오면 되는 상황이었기에, 이왕 군에 있는 2년 4개월 동안 신나고 재미있게,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오는 윈터스 소령처럼 멋진 지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군생활에 임했다.
처음 1년 4개월은 괜찮았다. 초반 4개월은 육군포병학교에서 각종 교육을 받았고, 교육이 끝나고 강원도 철원 어느 지역 포병대대에서 1년 동안 전포대장(소대장)을 맡으며 정말 군인답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었다. 그러는 동안 소위에서 중위로 계급을 바꿔 달게 되었고 5월쯤 불길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상급부대인 포병단(연대) 인사장교가 전역할 시기가 다 되었는데 조만간 예하 대대에서 새로운 인사장교를 뽑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속한 포병대대에서 마찬가지로 곧 전역하게 될 교육장교(학교로 따지면 연구부장) 후임으로 들어갈 예정이었기에 흘려들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짐 싸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ㅠㅠ
포병단에서의 근무는 육체보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 군생활 넋두리가 핵심이 아니니 이 정도로만 표현하고, 이 곳에서의 근무는 내가 승진에 관심을 아예 두지 않게 되는 결정적인 일들을 겪게 해주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군대는 철저한 계급 중심의 사회이다. 지금은 간부끼리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지만 계급적으로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장교와 부사관이라는 지휘관계, 그리고 장교를 기준으로 소위(다이아몬드 하나)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장(별 4개)이라는 철저한 관등이 나뉘어 있다. 최근 인기 드라마였던 '태양의 후예'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사장교'로 보직을 바꿀 당시 나의 계급은 '중위'였는데 여기서부터 기묘한 일을 겪게 된다.
군대에서 상급자의 지시 혹은 중점사항 등은 매일 아침 상황보고라는 회의시간이 끝나고 난 뒤 예하 대대로 전달된다. 이것을 전달받은 예하 대대는 각자가 관리하는 작은 규모의 부대로 이 사항들을 전달하고, 이것을 기준 삼아 부대관리에 좀 더 신경 쓰게 된다. 자신의 역할이 반드시 관리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그것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속한 포병단의 최고 지휘관인 O대령께서는 확실하게 일처리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주로 사용하던 방법 중 하나가 예하 대대를 불시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정기적으로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점검사항들을 확인받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예고 없이 들이닥치게 되면 느낌이 어떻겠는가? 실제로 예하 대대들은 언제 불시에 들이닥칠지 모르는 감찰 차량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내가 근무한 포병단 인사과는 군인들의 급여업무, 보직, 인사이동, 행사, 기타 등등의 업무를 맡았는데 기타 등등의 업무 중 중요한 것이 예하 대대 감찰업무였다. 예하 대대를 감찰할 때마다 최고 지휘관이 매번 직접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인사과장 혹은 인사장교가 지휘차량을 타고 시간 날 때마다 예하 대대 감찰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인사장교다 보니 직접 예하 대대를 방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군대는 계급사회다. 그 당시 나는 '중위'였고, 예하 대대의 최고 지휘관은 '중령(학교로 치면 교장)'이었다. 이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간극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묘한 일이 발생하는데 그 '중령'분들이 '중위'를 굉장히 어렵게 대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극진히 모시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중위'를 대대장 지휘실로 들라하고 당번병에게 어서 시원한 커피를 가져오라고 명령이 떨어진다. 그리고는 '중위'에게 '중령'은 물어본다.
"요즘 단장님(대령)은 잘 지내시는가?" / "네, 잘 지내시고 계십니다."
"뭐, 특별한 일은 없고?" / "네, 상황보고마다 늘 부대 훈련 일정과 안전관리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 부대는 단장님 지시사항을 잘 지키고 있으니 걱정 말게. 특별히 둘러볼 것도 없어." / "그래도 왔으니 포대(중대)에 들렀다가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어느 포대갈건가? 미리 연락해놓지." / "음... 알파포대에 한 번 가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통일!"
내가 소대장을 하고 있을 때도 중위였지만 대대장(중령)님들로부터 이렇게 부드럽고 존중받는 느낌의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이런 포대로 이동 중에 작전과장(소령, 학교로 치면 교감)이 기다리고 있다. 작전과장을 만나자마자 우리는 잘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자주 감찰하러 나오냐면서 불평 혹은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는 중에 포대에 도착하니 중대장(대위, 학교로 치면 학년부장)과 행정보급관(중사 혹은 상사, 학교로 치면 행정실 직원)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건 뭐 이미 편안하다 못해 친근한 사이처럼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박중위, 여긴 왜 왔어? 우리는 늘 잘하고 있는데 말이야. ㅎㅎㅎ" / "중대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당연히 잘하고 계시겠지만 저도 지시를 받고 나온 거니 한 번 봐야겠습니다. ㅋㅋㅋ"
"아, 그래? 그럼 내가 설명할 테니까 따라와." / "안내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저 혼자 편안하게 보고 가겠습니다."
"헐~~~ 그럼 안되지!!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안 좋은 거 적어가면 지적사항으로 찍히는 거잖아. 그러지 말고 이리와 같이 가자 ㅎㅎ" / "제가 지적사항 많이 적어가서 뭐하겠습니까? 상급부대가 예하부대 갈구러 온 거 아니라 도와드리러 온 거죠. 괜찮습니다^^"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사이도 아니라면 과연 저러한 상황이 가능할까? 군대에 들어온지 이제 2년 차 혹은 3년 차밖에 안된 중위한테 말이다. 학교로 치면 신규 중에서도 아주 싱싱한 신규다. 그리고 저 당시 나의 나이가 24~25세였다. 상하관계를 굉장히 따지는 한국사회에서 24~25살 된 남성이 사회생활에서 저러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사장교로 근무하던 시절, 저러한 예하 대대 감찰활동은 묘한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이게 뭐지? 계급이 한참 위인 사람들이 나에게 왜 이러지?'
'다들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잘 대해주네? ㅎㅎㅎ'
하지만 이런 묘한 쾌감도 이내 불쾌감으로 바뀌었다. 왜냐고? 그들이 자연인으로서의 '나'를 보고 그러한 행동을 보인 게 아니란 걸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그들은 '중위 박영환'을 본 게 아니라 내 뒤에 있는 '포병단장 대령'의 모습을 느끼고 나에게 그러한 행동을 취했을 뿐이다. 여기서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단순하게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나도 언젠가 높은 계급을 달아서 나보다 계급 낮은 이들로부터 부드럽고 달달하며 듣기 좋은 소리를 듣는 거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대접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규정지어 놓은 '계급 혹은 자리'를 향한 것임을 깨닫기. 그 자리가 곧 내가 아니며 나는 그 자리가 아님을 알기. 설령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언젠가 내려오게 되면 그때까지 받았던 모든 대우로 한 순간에 사라진다는 서늘한 감각을 몸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내 인생 2부의 정신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건빵의 탄생과 계급의 역전, 그리고 허망함'을 겪고,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