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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환 Aug 25. 2016

한 팔 거리 안에서

실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군에서 전역 후 약 11년째 포항에 있는 초등학교들을 다니며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 11년이라는 꽤나 긴 시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대한민국 교사라면 누구나 들었을 '승진'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어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듣고 있다. 굳이 교사가 아니더라도 어느 조직에 속하여 일하는 자들은 '승진'이라는 것과 따로 떨어져 지낼 수 없는 존재론적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것일까? 과장된 얘기지만 '승진'과 관련된 얘기를 직접 논하진 않더라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테니, 한국 사회에서 '승진'은 피할수 없는 숙명 혹은 저주 정도의 압박감이 있다고 본다. 그럼 '승진'에 대해서 지금까지 깨달은 내 나름대로의 대답을 하고자 한다.



한 팔 거리 안에서


"박선생도 승진 준비해야지? 젊은 사람이 능력도 있는데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그 교육관, 교육철학을 너 만의 것으로 가지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혹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더 많은 학생들을 위해서 펼칠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건 어떤가? 담임으로만 있기에는 아깝다."


  어떤가? 선배교사 또는 교감, 교장으로부터 이런 얘기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내가 뭣이 특별해서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게 아니라, 이건 이미 '승진'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교사들이 아직도 '승진'에 관심 없어 보이는 후배 교사들에게 던지는 관용적인 어구다. 뭐 가끔씩 승진을 못해서 나 이렇게 후회하며 살고 있다는 식으로 자조적인 읖조림을 하시는 분들도 위와 같은 얘기를 하더라. 어쨋든 이런 얘기들을 듣고 '그래, 난 한낱 평교사 자리에 머물러 있을 그런 인물이 아니었어!! 지금부터 시작하면 늦지 않았을테야!'라는 다짐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쉽사리 낚이지 말자. 대신 나를 위해서(?) 저런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께 내가 답을 할 차례다.


"네, 저는 한 팔 거리 안에서 실천하겠습니다. 제겐 물리적인 육체의 한계 및 절대 시간이 주어져 있네요. 제가 가진 정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서로 반응을 살피고 주고 받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용하겠습니다. 제 한 팔 거리 안에서 말입니다. 한 팔 거리는 제가 맡고 있는 반과 학생들입니다."


  나의 대답을 듣거나 본 사람들의 '저 철없는 녀석! 나도 젊은 시절엔 그랬었다! 너도 나이들어봐라. 별다를게 있을 것 같으냐?'라는 속마음들이 보이는 듯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그들이 기대(?)한 것처럼 "내가 왜 승진점수를 모으지 않았을까요? 나이가 한참 들어버리고 아무런 점수도 없는 나는 지금 무척이나 후회됩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미래가 있지만, 앞날이 반드시 그렇게 되라는 법도 없다. 나는 당장 내게 닥치지도 않은 먼 훗날의 초라한 내모습(수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볼품없는 모습은 주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채 자신감도 능력도 없는 늙은 자신'이라고 본다.)이 되지않도록, 현재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가능성과 흥미로운 일들을 포기해야한다는 말인가? 당장 내 아이들(친자식이든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이든)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나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식상한 말투와 속마음과 다르게 나오는 가식적인 표현들이 넘쳐 흐르는 공간속에서 점수만을 바라보고 사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앞의 것을 선택했으면 했지 뒤의 것을 선택할 용기가 없다. 앞의 삶은 내 기본적인 감정에도 충실하고 매순간 삶의 희노애락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모습의 나일 것인데, 뒤의 삶은 느낀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남의 시선과 평가에 내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는 좀비같은 삶 아닌가?   항상 살아있음을 느끼고 나와 인접한 것들과 매순간 반응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정한 삶의 활동범위는 '한 팔 거리 안에서'이다.



합리적 이성? 합리화?


  우리가 늘 듣는 얘기가 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나도 글을 쓰거나 다른 활동을 하다가도 문득 '내일 학교에 가면 학생들하고 어떤 걸 해볼까?'를 고민하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온전히 나를 사로잡는게 아니라, 문득문득 떠오르는 정도라서 현재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럼 현재 승진을 하기 위한 절차를 생각해보자. 내가 근무하는 경북에선 승진점수 208점 정도 되어야 교감자격 연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점수도 안정권은 아니다. 언제 이 점수가 상승할지 모르니 한눈팔지 않고 승진을 위하여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온갖 영역의 평가에서 소수점 단위로 부여되는 점수들을 부지런히 열심히 모아야 한다. 그런데 승진점수는 나만 모으는 게 아니라서 한가롭게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여유 따위가 있을까? 남들에게 뒤질세라 한시라도 교감자격연수를 받아낼 수 있는 점수를 모으기 위해서 인생의 꽃같은 수많은 시간들을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로 채워갈 것이다.

  승진점수 중에 연구점수 분야는 교육역량강화의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논외로 하자. 하지만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평가자의 주관에 의해 결정되는 근평과 같은 점수는 어찌할 것인가? 막말로 교장, 교감의 눈밖에 난 교사가 근평에서 최고로 우수한 점수를 받을 수 있는가? 간혹이긴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정말로 형편없는 수준을 가진, 왜 이런 인간이 어쩌다가 교장, 교감이 되었는지 합리적 이성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평가권이 주어져 있기에 그들이 상식 이하의 저열한 짓을 저질렀을 때,  점수가 필요한 부장교사들이 직접적이면서 합리적인 비판을 가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이러한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면 점수가 필요한 부장 교사들에게 가서 직접 물어보라. 


"선생님,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아무리 교장(교감)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죠. 교사들 의견도 저랑 거의 비슷해요. 뭐라고 건의 좀 해주세요."


학교에서 조금만 근무해보면 다음 대답은 뭐라고 나올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적진 않겠다.

  어떤가? 위의 교장, 교감은 상식 이하라고 치부하더라도 점수가 필요한 부장교사들은 상식적이며 합리적인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당신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항변하며 '합리화' 시키고 있을 것이다. 교사가 부장교사가 되고, 부장교사가 교감이 되고, 교감이 교장이 되면 그의 승진 여정은 마무리되는가? 아니지, 교장은 교육장의 눈치를 보고, 교육장은 교육감의 눈치를 보고,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의 눈치를 볼 것이다. 

  다 그런 건 아닌데 너무 극단적인 일반화가 아니냐고 따지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통계학에서 표본오차 ±5%에 해당되는 대상은 정상 범주가 아니라 예외로 둔다. 냉정하게 주변을 살펴보길 바란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100명의 부장교사 중에 정말로 몇 명이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지 말이다. 아마 5명도 안될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95명 이상 적극적인 합리화(혹은 변명)를하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합리적인 5명은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혹은 정상범주가 아닌 것이다.

  물론 정말로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해왔고 상식적인 교장, 교감들을 만나서 위와 같은 말도 안되는 상황을 겪지 않고 승진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경우에서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들이 대다수로 근무하는 학교에선 언제나 합리적인 상황은 지금 이순간의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것으로 미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 사람아 그걸 왜 나도 모르겠나? 물론 알고 있지.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게 아니지 않은가?" 


이런 말들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누구나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늘 "알고는 있지만,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현재 마주한 상황에서 옳은 판단을 늘 미래로 미루어버린다. 눈 앞의 과제가 언제나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다음 다음으로 미뤄진다. 언제나 현재를 미래로 연기하고,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찾아온 오늘(그러니까 어제의 내일)을 내일로 미뤄버리는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내가 좀 더 높은 자리로 이동했을 때 나의 교육철학을 펼쳐보이겠다? 이제 이런 식상한 구라에 속아넘어가면 안된다. 앞의 글에서처럼 교육철학을 펼쳐보이고, 옳은 것은 옳다고 여기고 실천하는 삶은 나중에 어쩌다 하게될 승진과 무관한 현재진행형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어른이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동등한 어른이다.


  학교에서 한국사회까지 확장해보자. 우리가 주로 듣고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어른 말씀을 들어야지."


라는 거다. 학교에서 '어른'하니까 지금 여러분 머릿속에 교감, 교장이 떠오르는가? 이건 거의 세뇌 수준인가 보다. 나도 이 말이 어떤 용례로 쓰이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어른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 학교의 어른은 교장선생님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삼단논법을 이딴 거에 쓰라고 배웠나? 뭔 소리들 하고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어른 아닌가요? 우리는 만 19세를 넘어서는 순간 이미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공인된 어른이 되어있었고,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지나온 상태다. 일단 이것만 기억하자. 우리는 다 동등한 어른이다.

 그런데 다 똑같은 어른인데 여기서 뭔 별개의 어른이 등장한단 말인가? 나이가 많으면 더 어른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 것 같은가? 아니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어른이 될 것 같은가? 직위가 높아지면 더 어른이 될 것이라고 믿는가? 그런데 어쩌지? 실제로 자신보다 연장자이거나 직위가 높아도 유치하다 못해 수준 낮은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동안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아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승진이 곧 더 나은 어른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도 큰 착각중의 하나이다. 승진은 단지 같은 업종에서 맡은 역할과 할 일이 바뀌는 정도의 수준이지 내가 너보다 더 낫다는 비교급의 수식어로 쓰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현실적을 들여다 봐도 교감 혹은 교장이 되면 학교에서 요구되는 수업능력, 업무능력 기타 등등의 능력이 일반교사들에 비해서 월등한 모습을 보이던가? 다들 알면서 왜 그러나?

  어른은 나이만 먹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성취했을 때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한 말, 행동에 대해 책임지고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비로소 되는 것이다. 좀 더 설명을 덧붙여보면, 우리는 언제나 어른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불교에서 "중생도 깨달음을 얻으면 그 순간 부처가 되고, 부처도 미혹의 나락으로 떨어지면 그 순간 중생이 되고 만다."라는 말이 있다. 어른은 어떤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늘 현재 진행형이다. 



교환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승진


  나의 개인적인 서사로부터의 깨달음(승진을 위해 애써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겠다)을 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승진을 권유하는 분들이 상당수 계신다. 특히 교장, 교감선생님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이분들께 거의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이 있다. 


"승진점수를 모으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제가 하는 것처럼 제 나름대로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에 승진이 선물처럼 다가온다면 그 때는 고려해보겠습니다. "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의 눈빛이 흔들린다. 놀래서? 그래 너무 어이가 없어서 놀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들은 상당한 기간동안 여러 방면으로 꾸준히 노력해서 점수를 쌓아서 승진을 하는데, 갑자기 왠 선물타령인가 싶을 것이다. 현 제도 아래에서 승진은 승진점수와 교환하는 시스템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탐이나는 비싼 물건을 사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포기해가며 돈을 아끼고 아껴모아야 겨우 구매할 수 있는건데, 그게 돈이 있다고 무조건 살 수 있는게 아닌 한정판이라건 함정이지만 말이다. 나는 이런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내 수많은 가능성과 의미있는 것들을 희생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난 나의 가능성과 자유를 만끽(교육하는 삶)하다가 정말로 기대도 안했는데, "너 승진(전직) 해볼래?"라고 선물처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가 되어서 고려는 해보겠다. 승진(전직)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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