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기적, 혹은 권능
2016 교사성과상여금 지급 계획 목적:
1. 교직사회의 협력과 경쟁 유도를 통해 교육의 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교원의 사기진작 도모
2. 수업과 생활교육을 잘하는 교원을 우대하여 교원의 교육전념 여건 조성
현재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다양한 이념과 신념, 가치관, 문화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운데 간신히 폭발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진짜 배려 아닌 형식적인 배려에 집중하면서 살고 있는 중이다.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산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다양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절대적인 신 하나가 존재하고 있으니 그건 바로 '자본'이라는 신이다.
예전에 오마이스쿨에서 철학자 강신주의 '철학 고전읽기'라는 동영상 강의를 보던 중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었다. 화면 속 강의에서 강신주 선생님이 수강생 한 명을 불러내어 그 사람의 지갑 속에 있는 돈 만원(5만원이었나?)을 꺼내게 한 다음 그것을 바로 그 자리에서 찢어보라고 하였다. 이에 돈의 주인공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재촉을 당하자 돈을 천천히 찢게 되었는데,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다른 수강생들은 "아~~~~" 혹은 "하~~~~~아~~~"하는 탄식에 가까운 비명을 나지막하게 지르고 있었다. 아마 '저 아까운 돈을 찢어선 안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돈을 찢은 그 수강생을 자리로 돌려보낸 뒤 강신주 선생은
"자연물에서 자연물 이상의 것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십자가 혹은 불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이루고 있는 물질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듯이 말이다."
라고 설명했었다.(정확하진 않아도 거의 이런 뜻으로 설명했었다^^;) 어떤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당장 자신의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어 "이건 단지 종이일 뿐이야. 왜 내 지갑에 들어있어서 걸리적거려?"하며 아무렇지 않게 갈가리 찢은 다음 휴지통으로 넣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아니지, 정말 휴지처럼 여긴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버릴 수 있는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자본이라는 신을 떠받들고 있는 종교의 신도 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나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거칠다는 생각이 든다. 통상적인 자본에 대한 비판이랑 다를게 뭐가 있나? 단순히 개념 논쟁이나 말장난으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가 처한 현실적인 기반을 좀 더 고려해서 논의해야 한다. 앞서 신도라는 말을 썼는데 여기에서 하나의 단서를 찾아봐야 한다. 주변인들을 살펴보자. 종교가 없는 사람도 많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신도라고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들을 꺼려하진 않는다. 다만 광신도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주변을 여러모로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그렇다. 우리는 광신도들에 대해서 꺼려하고 그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사랑하는 가족과 주위의 이웃들 혹은 타인들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착한 신도들을 공격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다시 자본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 세상에 돈이 최고야,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어?'라는 광신도들을 경계하고 그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식상해서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X무시하는 말이다. 하나의 상황을 보자.
"자기야, 나 얼마만큼 좋아해?"
"응? 아주 많이 사랑하지."
"그러니까 얼마큼 좋아하냐고?"
"많이 많이 좋아하지^^"
"그럼 날 사랑하는 만큼 네 마음을 보여줘 봐."
"응응? 내가 자기 많이 좋아하지. 그래서 이렇게 평소에 잘해주고 있잖아. 그런데 내 마음을 어떻게 보여줘? 그게 가능해?"
"그래도 날 좋아하는 만큼 마음을 보여줘~~~!"
".......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마음을 몸짓으로 바꿔서 춤이라도 춰볼까? 그러면 되는 거야? "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연인들 간에 저런 일들이 종종 벌어졌을 거다.(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도대체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 그러니까 비가시적인 무형의 것을 어떻게 가시적인 걸로 구체화시키냔 말이다. 마치 선불교의 선문답과 같은 저런 난해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나의 연애시절은 고뇌와 번민의 시간들이었다. 무문관! 문이 없는 관문과 앞의 상황은 어떠한 질적인 차이가 있는가? 사랑하는 타인을 만나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고해(고통의 바다)를 헤엄쳐 건너는 어렵고도 힘든 여정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야기가 딴쪽으로 흘렀다. 흠흠...
어쨌든 생택쥐베리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기기엔 자본을 신으로 모시는 현대사회에서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값어치, 즉 가격을 매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근사하거나 좋아 보이는 물건을 들고 현재 내가 속한 집단에 나타나 봐라. 반드시 누군가가 "그거 좋아 보이네요. 비싸겠네요?" 혹은 "와... 좋다! 그거 얼마예요?"라고 물어볼 것이다. 우리가 주로 다루는 물건만 그러한가? 예술작품도 그러하다. 작품에서 작가의 고뇌에 찬 흔적들이 담겨있는 것을 읽기보다 우리는 그 작품의 경매가가 비싸면 우와! 생각보다 저렴하면 에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예: TV쇼 진품명품). 심지어 지구 생태계의 보전 가치 또한 미래 세대가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계산해버린다. 뭐 이런 것들이 별로 놀랍진 않을 것이다, 요즘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교원들의 성과상여금의 기준을 살펴볼까?
2016 교사성과상여금 교사성과평가기준(예시):
⁍ 단위기관장은 예시된 ‘교사 성과평가 기준’을 참고하여 기관별 실정에 맞는 차등지급 성과 평가기준을 마련하되, 어느 한 평가분야의 반영비율이 40%를 초과할 수 없음
- 평가분야는 수업지도, 생활교육, 담당업무, 전문성개발 등
위 기준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비판은 제쳐두고 평가분야를 살펴보자. 먼저 수업지도는 어떻게 가시화시킬 것인가? 지필평가를 실시하여 학생들의 성적이 높으면 매우 우수, 낮으면 매우 저조 이렇게 할 건가? 생활교육은 학생들끼리 싸움이 일어난 건수를 측정해서 많이 싸우면 매우 저조, 한 번도 없으면 매우 우수? 담당업무는 어떻게? 속된 말로 어떤 일이든 자기가 맡은 업무가 제일로 힘든데 이건 공문 처리건수로 할 건가? 전문성 개발은 연간 연수 이수 시간으로? 대부분 사이버연수 창을 열어놓고 '다음'을 누르기 바쁜 그런 연수 말인가? 참고로 난 학점으로 인정되는 연수는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개설되지 않아서 그렇다. 대신 철학이나 문화, 예술과 관련된 인터넷 강의를 연간 200시간 이상 듣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건 쳐주지도 않는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교사성과평가기준'을 교육부에서 제시했다는 사실이 웃기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오히려 너무 수준이 떨어지고 부끄러워서 안 그래도 빨간 얼굴 내 얼굴 더욱더 붉어질 뿐이다. 이걸 어떻게 가시화시킨다는 말인가? 이걸 어떻게 구체적으로 평가한단 말인가? 짜증 나게도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버리는 종교 '자본'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우격다짐으로 처발라서 '개인별 교사 성과기준표'와 '증빙자료'라는 문서로 가시화시킨 뒤 교사별로 등급을 매기는 권능을 행하신다. 교원 성과급 도입 초기엔 이에 반발하는 이들도 많았는데 이러한 권능이 일상화되니 다들 '자본이시여, 뜻대로 하소서'이러고들 있다. 그리고 내가 왜 'S등급'아닌데 이러면서 다들 서로 할퀴고 X랄하며 난리 치고 있으시다.
그런데 가만 다시 교사성과상여금 지급 목적을 살펴보자.
2016 교사성과상여금 지급 계획 목적:
1. 교직사회의 협력과 경쟁 유도를 통해 교육의 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교원의 사기진작 도모
2. 수업과 생활교육을 잘하는 교원을 우대하여 교원의 교육전념 여건 조성
읭? 목적 1번을 보면 협력과 경쟁 유도를 통해서 교원의 사기진작을 도모한다고 하는데, 벌써 목적 1번부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 지역은 안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 성과급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나누고 있는데? 하는 학교 있으면 제발 반드시 나와서 나의 글이 완전히 오만과 편견에 사로 잡혀서 그렇다고 밝혀주기 바란다.
성과급에 관한 다음 글은
'168만원으로 누려보는 신세계 - 미끼에 낚이지 않는 자유로움'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하는 자,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배려심 따윈 없는 자'
에 관해 써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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