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평등을 강요하는 것이 진짜 맞는 방법일까?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명의 친구는 같은 교직에 있는 친구이고, 다른 친구는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친구이다.
아무래도 교직에 있는 사람이 2명이고 아닌 친구가 1명이라서 그런지 종종 교육 쪽의 이야기가 오간다.
모두 교육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교사의 삶과 관련한 이슈가 많았던 한 해였다.
내가 교직에 있어서 그러한 뉴스에 더 민감했을 수도 있으나, 아무튼 그렇게 평가한다.
그 내용은 차치하고, 우리 대화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았다.
우리 사회는 과연 평등한가?
어른들의 사회는 평등한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다.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평등하다고 말하고 있다.
돈이 많고, 명예가 있고, 엘리트 층이 분명 유리하게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에 동의했다.
목소리가 크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등 기존의 규칙에서 벗어나 많은 이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가?
교실에서는 더 평등을 강조한다.
학생 시절에 평등한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나중을 위한 준비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어른들보다 순수하다.
가면을 쓸 줄 모른다.
또한 학생들은 아직 미성숙했기에 굉장히 본능적인 모습을 보인다. 본인들이 생활하며 그들만의 위계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위계는 힘이 세든지, 공부를 잘하든지, 친구를 잘 설득하든지, 운동을 잘하든지 나름의 자생적인 방법으로 저절로 생겨난다.
교사는 교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이다.
요즘은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권위를 행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교사는 교실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교사는 평등을 강조하도록 배웠고, 이를 교실에서 실천하려고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위계를 다시금 재정비하는 것이다.
서열(?)상 아래에 있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피라미드의 위에 위치한 학생들에게 제약을 가하는 방법이다.
교사의 개입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시선을 인정한다.
가장 좋은 것은 학급의 그 서열을 인정하고 운영하는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흘러갔다.
“서열의 낮은 위치에 있지만 그 자체로 만족을 하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학급에서의 위치가 다른 친구들의 기대를 받는 위치인데, 교사의 개입으로 그 적극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더 든다.
교사는 평등을 강조하고자 본인의 교육철학을 교실에서 적용하지만, 그 효과가 항상 긍정적이진 않을 수도 있겠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육을 할 수는 없다.
학생들도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꿈을 꾸며 생활을 배워나가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다.
학급에서 학생들이 다투며 서로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요즘 빈번하다.
그 이유도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위계가 존중되고, 적당한 범위에서 학급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이러한 학교폭력의 문제도 그 빈도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필자의 생각에 학교폭력의 문제는
해당 학생의 다른 어떤 문제(가정이나 학교나 그 학생 주변의 모든 문제)가 폭력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 문제에서 늘 가해학생이 되는 학생은 학급 서열의 상위계층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학급에서 모나지 않도록 지도하는 교사의 실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필자의 의견은 이러하다.
학급의 위계와 서열을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 학급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학생이 되길 바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나아가서 자연스럽게 교사가 교실의 위계의 가장 위를 차지하고 학급을 순항하도록 운영하는 것이 요구될지도 모르겠다.
또한 학생들이 마주칠 평등하지 않은 사회를 그저 눈가리개로 가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평등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가르치고 이에 대처하는 학생들이 될 수 있게 지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