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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영 재 Sep 15. 2018

과학, 기술, 공학:
대한민국의 과학혁명을 위하여

패스트 팔로워 전략의 극복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인류의 진보를 이끈 3가지 혁명을 다루는데, 그중 16세기에 시작된 과학혁명을 통해 서양의 국가들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서양의 과학혁명이 실증적 관점에서는 지식혁명이 아니라 ‘우리는 모른다’에서 출발한 무지(無知)의 혁명이었고, 실용적 관점에서는 단순히 과학적 지식의 축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기반한 공학과 기술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압축 성장에 성공한 우리나라 경제가 최근 성장 동력의 부재와 일자리 창출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더 이상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유용하지 않은 현 상황의 원인을 파악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모색하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역사에서 서양의 과학혁명에 상응하는 변혁의 시기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양상과 후세대에 대한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또 하나의 유용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면 먼저 과학, 공학 및 기술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세 단어가 모두 일본식 번역어이기 때문에 현대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개념 정의로는 본래 science, engineering 및 technology가 가진 의미와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어권 문헌을 통해 나름대로 용어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Science (과학): 우리가 사는 세계(자연 및 사회)에 대한 보편적 진리 또는 법칙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인 지식으로, 관찰되는 자연과 사회 현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Engineering (공학): 우리 삶의 현장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현재보다 더 나은 문제 해결 솔루션을 설계/제작하여 창조하는 인간의 활동으로서, 과학적 지식을 활용할 수 도  있지만 개인적인 또는 집단적인 경험 또는 개인의 직관이나 상상력에 기반하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완성되기도 한다. 한편, 학문으로서 공학(工學)이란 이렇게 더 나은 솔루션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그러한 방법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분야이다.

Technology (기술): 반복적으로 재현 가능한 문제 해결의 결과물로 얻어진 도구/기기 및 제작 프로세스와 습득된 지식의 총합으로.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문제 해결에 쓰인 도구와 프로세스에서 구현된 지식을 의미한다.

과학적 지식에 기반하여 개발된 공학이 다시 과학적 탐구에 활용되면, 과학과 공학은 서로 선순환적으로 기여를 하면서 획기적인 발전, 즉 과학혁명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Mathematics(수학)는 이러한 science, engineering 및 technology의 지식을 발견하고 분석해서 정리하는 공통의 일관된 언어로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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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위와 같이 정의한 개념을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기관에 적용하여 설명해 보자.

어떤 연료를 태우면 열이 발생하고, 그 열로 물을 끓이면 증기가 발생하면서 팽창한다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다. 이 원리를 활용하여 피스톤을 만들고, 피스톤을 활용하여 기계장치를 돌리거나 증기기관차를 만드는 것이 엔지니어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료를 써서 물을 가열하고, 어떻게 피스톤을 만들어 펌프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아는 것이 기술이다. 16세기에 시작한 서양의 과학 혁명은, 과학적 발견과 지식에 기반한 엔지니어링과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활용하여 가능해진 과학적 진보에 따라 더 나은 엔지니어링 솔루션과 기술로 발전하는 선순환 과정의 연속이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에서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 Mathematics) 교육의 중요성과 비중이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다.


이제 우리 역사를 살펴 보자. 서양의 과학혁명이 진행되었던 비슷한 시기의 우리 역사에서 세종대왕 또는 실학파에 의해 과학에 기반한 엔지니어링 솔루션이 개발된 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전체에 대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보고서 “과학기술과 역사의 만남: 회고와 미래전망”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조선 초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 세종대 눈부신 성취를 이룩했던 조선의 과학은 그 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외침에 의하여 큰 발전은 없었으나, 꾸준히 이어져왔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자연에 대한 체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자연 이해는 성리학의 성숙과 함께 성장 ... 실제로 조선 유학자들 대부분은 19세기 말까지도 조선과학의 패러다임 하에서, 즉 ‘그들의 방식’인 성리학적 자연 인식 체계로 서구 과학을 읽었던 것이다.

     과학의 발전을 ‘현대과학과 유사한 형태’의 발전으로 본다면 조선시대의 과학의 발전은 별로 크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전문적 자연지식(scientific techniques)만이 과학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의 문화와 사상은 자연 지식과 함께 융합하는 과학 네트워크를 과학으로 본다면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자연 인식의 고도화는 그 가치가 있다고 보겠다.”


조선시대의 과학은 실증적 관점에서의 자연의 법칙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성리학의 관점에서 관념적 이해에 집중했다. 따라서 현실의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엔지니어링과 기술 개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외침을 겪는 과정에서 국력의 쇠퇴로 인하여 실생활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못했다. 결국 조선 사회는 영∙정조 시대의 부흥 노력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들어 급격히 쇠퇴하여, “조선의 과학기술은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1876년)에 의한 개항기를 맞이할 즈음에는 거의 백지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중양, 2016) 즉, 우리 역사에서는 과학-엔지니어링-기술(S-E-T)의 선순환 구조를 활용한 문제 해결 경험이 극히 제한적이었고 사회 전체의 전통으로 자리 잡지 못했던 것이다.


조선의 과학기술은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에 의한 개항기를 맞이할 즈음에는
거의 백지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에서 들여온 과학, 엔지니어링 및 기술에 의지하는 패스트 팔로워 성장 전략의 유효 기간이 만료된 현시점에서,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에 큰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우리 스스로의 과학-공학-기술(S-E-T)의 선순환 구조에 기반한 문제 해결 경험과 전통의 부재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와 계열화 체계 하에서, 글로벌 시장 경쟁에 노출된 대기업 및 일부 중견기업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대부분 중소기업은 S-E-T 선순환 구조의 기술 개발과 축적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력 활용을 통한 점진적 효율 개선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제 우리 경제는 제조업 원가 경쟁에서는 중국 및 동남아 국가에 뒤지고 혁신적인 기술 및 제품 개발 역량은 충분히 갖추지 못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몇몇 산업의 선도 대기업은 여전히 성장하면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는 반면, 경제의 다른 부문의 경쟁력은 제자리에 머물면서 활력을 잃어가는 형국이라 하겠다.


현재 우리 경제에서 S-E-T 선순환 구조에 기반한 문제 해결과 혁신의 노력이 가장 활발하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분야가 스타트업 섹터다. 스타트업은 고객의 문제를 발굴하여 고객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는 탁월한 솔루션을 제공해야 생존할 수 있기에, 누구보다도 과학에 기반한 엔지니어링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엔지니어링과 기술의 개선에 매진하여 제품과 고객 경험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은 기존 시장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전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뿐 아니라 기존 사업자와의 경쟁도 이겨낼 수 있다. 이제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S-E-T 선순환 구조에 기반한 문제 해결의 경험이 경제 전반에 걸쳐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으로 확산되어 우리 사회 전체의 과학혁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다. 그래야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과 활력을 창출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우리의 어린 세대가 앞으로 우리 자체의 S-E-T 선순환 구조에 기반한 과학혁명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코딩 교육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코딩은 기계장치나 다른 고가의 하드웨어 장비 없이 엔지니어링과 과학기술을 활용한 문제 해결 과정을 빠른 시간에 경험하면서 문제 해결 스킬을 개발할 수 있는 비용 효율적인 수단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STEM 교육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어쩌면 대학 입시에서 STEM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긴급처방이 필요할 정도로 사정이 심각할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생산성 정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 우리 역사상 최초의 SET(Science-Engineering-Technology)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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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과 역사의 만남: 회고와 미래전망", 한림연구보고서 116, 2017

문중양,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서구 우주론과 조선 천지관의 만남", 들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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