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낙원

<사운드 오브 메탈>

by Moon And Collins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과 관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운드 오브 메탈>_2019__: 4.5/5


한줄평: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낙원'


줄거리 요약


루빈은 2인 밴드의 드러머이고,

그의 여자 친구 는 보컬 겸 기타리스트이다.

어느 날 청각 장애 판정을 받은 루빈은 모든 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맞이한다.

루는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루빈과 그곳을 방문한다.

공동체 원장 는 루빈의 회복을 진심으로 바라지만 루빈은 조의 기대를 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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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메탈>은 93회 아카데미에서 음향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의 음향적 성취는 화려한 소리로 만든 연출이 아닌,

적절한 순간에 배치된 '고요함'에 있다.


그 고요함은 영화 시점에 따라 두 개의 의미로 나뉜다.


영화 초반,

이때의 고요함은 청력 상실로 인한 공포이다.

밴드 공연 중이던 루빈은 이명과 함께 귀가 먹먹해진다.

적막은 관객에게 루빈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고요함은 불안하지도 공포스럽지도 않다.

루빈이 인공 청각 장치를 스스로 제거하며 자의적으로 찾은 고요함은,

영화 초반의 고요함과는 반대로 관객에게 청각적 편안함과 루빈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한 축이 '고요함'이라면 다른 한 축은 '중독'이다.

고요함은 ‘수용’ 해야 할 대상이고 중독은 곧 ‘의존’하고 싶은 대상이다.


루빈은 과거 마약 중독자였다.

그는 루를 만나며 마약을 끊을 수 있게 되었지만,

삶을 루에게 의존해야만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마약 중독을 이겨낸 것이 아닌,

기존의 중독을 새로운 중독으로 대체함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루빈의 태도는 청력을 상실한 후에도 지속된다.

청각 장애 커뮤니티 대표자인 조는 루빈이 세상과 단절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렵게 여자 친구와 떨어져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루빈은,

말 대신 손으로 대화하는 법,

소리를 듣지 않고 느끼는 법을 배우며 고요함에 적응해 보려 한다.


하지만 처지를 인지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루빈은 장애를 인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는 그런 루빈에게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보라는 취지로 빈 방을 제공한다.

하지만 루빈이 빈 방에서 발견한 것은 그저 분노와 답답함이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루빈은 연인과의 보금자리였던 캠핑카와 음악 장비를 모두 팔아 수술 비용을 마련한다.

결국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술을 결심한 사실도 조의 마음을 후벼 팠겠지만,

조에게까지 돈을 빌리고자 하는 루빈의 태도에 조는 크게 실망한다.

스스로의 힘이 아닌 외부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과거 중독자 상태의 루빈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수술을 마친 루빈은 루를 찾아간다.

하지만 인공 청각 장치를 통해 루빈이 듣게 된 소리는 과거 기억하던 자연스러운 소리와 너무나 달랐다.

루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 곁을 떠나 아버지의 온기를 누리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루에게서 루빈은 또 이질감을 발견한다.

그날 밤 루빈은 ‘다 괜찮다. 난 네 덕에 산다.’라는 말을 전하고 다음 날 아침 루의 곁을 떠난다.

이 인사는 오랜만에 재회한 커플 간 사랑 고백이 아닌 감사와 작별의 인사처럼 들린다.

더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루빈은 인정한 것이다.


루의 집을 떠나 공원에 앉아있던 루빈은 스스로 인공 장치를 제거한다.

공원에 침묵만이 감돌자 루빈은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처지를 끌어안는다.

비로소 루빈은 빈 방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조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를 느낀다.


'왜'라는 질문은 때로 자물쇠를 푸는 열쇠이기도, 조여지는 올가미이기도 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는 이거밖에', '왜 그때 그랬는지' 같은 질문은 숨통을 조인다.

살다 보면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만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해결되지 않는 상태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일지 모른다.

루빈이 찾은 공원의 고요함도 그렇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중단이요, 성취가 아닌 내려놓음이다.


루빈의 고요함이 언젠가는 평화로 변할 수 있기를,

그런 마음이 조용히 피어날 때

엔딩크레딧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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