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영화 <아티스트>와 관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티스트>_2011__★: 4.5/5
줄거리 요약
할리우드 무성영화 전성기.
조지는 작품마다 흥행하며 대중의 사랑을 얻는 배우다.
무성영화는 그에게 예술적 성취의 장이자 팬들을 만나는 행복한 공간이다.
시간이 흘러 조지는 영상에 소리를 담는 새로운 기술을 목도한다.
영화 관계자들은 유성영화의 가능성에 흥분했지만, 조지는 저딴 것은 예술이 아니라 치부한다.
조지와 영화계는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다.
영화계는 막대한 자본으로 공장처럼 유성영화를 찍어내는 반면, 조지는 사비까지 털어 지조 있게 무성영화를 만든다.
결과는 조지의 완패.
관객들은 새로운 것에 열광했고 조지는 돈과 명예 모두를 잃으며 한물간 배우로 전락한다.
반면 조지의 팬이었던 패피는 유성영화 시대의 새로운 스타로 급부상한다.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자 조지는 생계를 위해 자기 물건을 경매에 내놓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우리 또래는 영화계 황금시대에 자랐다.
나의 경우 처음 영화관에서 관람한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었고,
이어서 <해리포터>와 <캐리비안의 해적> <스파이더맨>이 개봉했다.
초등학교 시절, 기말고사가 끝나면 담임 선생님은 방학 전까지 영화를 틀어주시곤 했는데,
그렇게 봤던 게 무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쥬라기 공원>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개인적 취향도 있겠지만,
눈을 황홀하게 하는 영화가 쏟아져 나온 시대적 배경도 한몫할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유성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이다.
때문에 무성영화 문법을 기초로 제작된 <아티스트>를 보기 전 혹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지루하긴커녕 10분도 채 안 돼 무성영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무성영화의 매력은 '유추'에 있었다.
배우들이 뻐끔뻐끔 입을 움직여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자막을 보여주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상황을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컷이 바뀌면서 화면에 자막이 보일 때 특유의 쾌감이 있었다.
자막 내용이 내가 생각한 것과 일치하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 좋고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나오면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이지? 하며 영화에 더 몰입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무성영화의 매력을 잘 구현했다는 이유로 <아티스트>에 높은 평점을 준 것은 아니다.
진짜 영화는 30분부터 시작된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시대의 전환을 알리며 처음 영화에 '소리'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조지가 테이블 위에 컵을 내려놓으며 울리는 둔탁한 소리는 지금껏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그 어떤 것보다 자극적인 소리로 느껴졌다.
평생 유성영화만 보았던 나도 고작 30분간 무성영화를 보았을 뿐인데 이 짧은 충격음에 자극을 느꼈다면,
평생 무성영화만 보았던 사람들이 처음 유성영화를 보았을 때 흥분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비슷한 시기를 다룬 영화 <바빌론>을 보면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마치 아이돌 콘서트 관객처럼 손뼉 치며 환호한다.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는 무성영화 보다 유성영화에 더욱 집중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성영화의 매력과 무성에서 유성으로 전환될 때의 짜릿함은 <아티스트>의 큰 장점 중 하나였다.
<아티스트>는 단순히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사이 기술적 전환만을 다루지 않는다.
영화 내면엔 시대의 변화 속 예술가가 어떻게 기억되는지, 또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다룬다.
또한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과 나름의 답을 전한다.
앞서 말한 <바빌론>은 세대교체에서 몰락한 사람,
다시 말해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을 다룬다.
많은 배우들이 발음, 억양, 목소리 때문에 영화계에서 퇴출당하듯 은퇴했고 적응하지 못한 스태프들은 도태되었다.
조지의 몰락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조지가 변화에 실패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 그는 무성영화를 대표하는 구시대 유물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조지 본인이 유성영화를 진정한 예술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시대의 흐름을 좇지 않고 자기의 신념과 지조를 따른다.
흐름을 좇는 것을 상업적이다 생각하고 흐름 속 만들어진 산물을 공산품이라 여긴다.
하지만 대중들은 흐름을 타고 새롭게 등장한 예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대중들은 언제나 새로운 예술가를 환영하고 옛 시대의 예술가를 자연스레 기억 속에서 지운다.
예술가로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흐름을 거부하겠다면 결국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법이다.
베토벤, 비틀스, 너바나가 그랬고 고흐, 피카소, 뒤샹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재도약하는 조지를 살펴보자.
조지와 패피는 서로 가까워진 계기였던 춤으로 유성영화판에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비록 구색이 화려하진 않지만, 이들은 현재 뮤지컬 영화의 초석으로 보이는 영화를 만든다.
그제야 우리는 잊힌 무성영화 스타에서 유성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일으킨 진정한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아무도 조지가 시대와 타협했다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시대를 재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