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스틸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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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三峡好人) >_2006__★: 5/5
한줄평: 도대체 저 물엔 내 어떤 일부가 잠식되었길래 붕괴에 통감하면서도 여전히 살아가려는 것일까.
세상 모든 소중한 것 가운데 이 영화가 건드리지 않은 게 무엇이 있을까
三峡好人
삼협(三峡)은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장강(长江) 중상류 지역(충칭, 백제성, 구당협)을 묶어 부르는 지명이다. 초나라 굴원이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에 슬퍼하며 이 협곡에 몸을 던졌고, 촉나라 유비가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백제성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으며, 당나라 이백이 이곳의 경치에 감탄하며 뱃길에 시를 지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집권 61년째 되던 해에, 영화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가 단 2년 만에 수몰되어버린다.
삼협댐 건설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단지 중국 공산당을 대놓고 비판하는 목적을 가진 영화가 아니다. 그랬다면 감독이 사라졌을 테니까.
영화가 다루는 주 감정이 비단 중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도시화를 겪는 모든 국가, 모든 지역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중국 시골 사회가 그 감정을 표현하기에 너무 적합했던 것이다.
好人은 좋은 사람을 말한다. '좋은 사람'이란 단어는 그 해석이 무궁무진하다. 남을 돕는 사람, 가정에 충실한 사람, 의리가 있는 사람,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 등등..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인물도 좋은 사람과 가깝다. 하지만 영화는 이 두 좋은 사람에게 각각 무거운 짐을 그리고 이별을 선사한다. 이들은 저마다의 고뇌를 안고 삼협을 떠난다.
남자 주인공 산밍은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삼협에 왔다. 16년 전, 아내가 남긴 달랑 주소 하나만 적힌 쪽지만 들고 이곳에 왔지만 그 주소는 이미 수몰된 곳이다. 가족의 정보를 얻기 위해 동사무소에 가지만, 수시로 다운되는 컴퓨터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한다. 동사무소엔 산밍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몰로 강제 퇴거를 명령받은 사람들이 보상금 문제로 들이닥쳐 공무원들과 격렬한 논쟁 중이다. 어찌 공산주의 제도에서 서로의 보상금이 다르냐며 말이다. 아내와 딸을 만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하리라 예상한 산밍은 돈을 벌기 위해 철거 업체에서 일을 시작한다.
여자 주인공 셴홍은 남편을 찾아 삼협에 왔다. 그녀의 남편은 삼협에 일을 구하러 가 2년 넘게 돌아오지 않았다. 셴홍은 삼협에서 남편의 친구를 만나 자초지종을 파악하고 외도를 의심한다.
물병
영화는 불확실한 미래지향이 확실한 과거 유산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그 유산엔 집단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모두가 있다. 주인공들은 이런 파괴에 반항하는 인물로 또 역으로 동화하는 인물로도 그려진다. 산밍의 경우 이미 수몰된 집 주소를 쥐고 아내와 딸을 찾는 행위와 삼협에서 일을 구해 댐 건설에 이바지하는 행위가 충돌하고, 셴홍의 경우 그녀가 늘 쥐고 다니는 물병이 주인공의 내면과 그녀가 처한 현실의 모순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셴홍은 첫 등장부터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아 마신다. 더운 여름에도 펄펄 끓는 찻물이나 못해도 미온수를 즐겨마시는 중국 생활 습관에서 이는 상당히 이질적인 장면으로, 셴홍이 물을 마실 때마다 물병에 주목하게 하는 장치가 담긴 장면으로 보였다.
우리는 갈증이라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물을 마신다. 영화 속 셴홍의 갈증, 즉 그녀의 문제는 남편과 2년간 떨어지며 생긴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점점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남편의 외도 때문이다. 삼협의 지역 발전만 없었다면, 남편은 이 먼 곳까지 일을 구하러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외도 또한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모종의 대칭이 이루어진다. 삼협댐과 수몰된 도시, 그리고 외도한 남편과 셴홍이다. 곧 댐 건설로 인해 수몰을 앞둔 삼협이란 공간에서 반복하여 플라스틱 물병으로 물을 마시는 셴홍의 행동은, 마치 커다란 힘에 맞선 초라한 개인의 반항으로 느껴진다.
결국 남편의 외도를 확신한 셴홍은 남편에게 이별을 고한다. 영화 속 셴홍이 남편의 외도를 확신하는 춤과 관련 된 장면 속 표현 방식도 마음에서 전율이 일 정도로 탁월하게 느껴졌지만, 정말 탁월한 것은 셴홍의 이별 방식이다. 셴홍은 남편에게 '네가 외도했으니 이혼하자'가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이혼하자' 말한다. 남편은 당황해하고 화도 내지만 떠나가는 셴홍을 붙잡지도, 쫓아가지도 않고 쉽게 뒤돌아 가버린다.
셴홍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 말은 진심이었을까? 물론 자존심 때문에 또는 남편과의 관계를 단칼에 정리하려 한 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반복해서 마셨던 물 때문에 어쩌면 이 말이 진심이라 생각하게 한다. 센홍에게 물은 반항과 동시에 생존을 향한 동화(同化)다. 댐을 가득 채운 물처럼 그녀가 줄곧 마신 것도 결국 물이기에, 그녀도 생존을 위해 파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동화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마치 그녀의 남편처럼, 다른 대상을 향한 마음이 발화한 것이다.
그 대상은 동밍이다. 동밍은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파괴되는 시대 속 과거 유산을 지키는 고고학자다. 그의 직업과 집에 걸려 있는 과도하게 많은 시계, 그리고 멈춰있는 시계 침이 이를 나타낸다. 동밍은 그녀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밥을 만들어준다. 셴홍은 그의 집에서 선풍기 앞에 서서 몸에 흐르는 물인 땀을 식힌다.
烟酒茶糖과 음악
영화 속 대부분의 공간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전개되기에 디스토피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UFO 같은 비행 물체와 상승하는 로켓 등을 집어넣은 것을 보면 감독이 의도한 시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는 극형태로 진행된다. 각 극은 담배, 술, 차, 사탕으로 이름 붙여졌다. 보자마자 알 수 있는 것은 4가지 모두 중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는 것이다. 술과 차는 말할 것도 없겠고, 중국에서 담배를 권하는 것은 남성 간 우정과 존중의 표시로 여겨진다. 사탕은 앞선 세 가지에 비해 중국인의 생활 습관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4가지 모두 단발적이다. 담배는 태우면 없어지고 술과 차는 마시면 없어지고 사탕도 입에서 녹아 없어진다. 하지만 사탕만 또 특이한 것이, 담배는 태우면 재가 남고, 술은 마시면 빈 병이 남고, 차는 마시면 물에 젖은 찻잎이 남는데 사탕은 유일하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사탕은 영화 속 마지막 구간에 해당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마지막에 모두 삼협을 떠난다.
영화를 구성한 4가지 요소만큼 중요한 것이 음악이다. 시퀀스마다 소년이 나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고, 산밍과 우정을 나누는 마크와 처음같이 밥을 먹을 때도 휴대폰 벨 소리의 음악에 관객을 집중시킨다. 영화 내내 과묵하고 평정을 유지하는 산밍이 유일하게 활짝 웃는 장면도 밴드 공연을 보는 순간이다.
디스토피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스틸라이프>의 경우 <멋진 신세계>가 떠오른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 때문이기도, 소설 속 소마 때문이도 하다.
과거 멋진 신세계를 보며 소마가 꼭 나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회적 안정을 위해 고안된 부작용 없는 합법적 향정신성 약물이라니 이 얼마나 완전한가! 하지만 소마의 고안 목적을 알게 되면 오싹해진다. 멋진 신세계 속 소마는 기본적으로 시민의 통제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영화 속 등장하는 담배, 술, 차, 사탕, 음악은 어떤가? 각 요소는 힘든 삶 속 주인공의 피로를 덜어주고 애환을 씻겨주며, 잠시나마 삶 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게 돕는다. 동시에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주인공들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하지만 단발적 안식이 끝나도 세계가 주는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현실은 그들의 삶 일부를 계속해서 잠식해가고 그 잠식이 피로로, 애환으로 느껴질 때가 되면 다시 단발적 안식을 찾으며 결국 자신은 거대하고 불가피한 수레바퀴 속 하나의 나사로 기능하게 된다.
이 영화는 삶 속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거의 전부를 건드린다. 가족, 친구, 돈, 예술, 자연, 기호, 생명 등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개체가 소중한 것들로 인해 세계에 편입되는 것인지, 또는 소중한 것들 덕에 그나마 이 세계를 버티며 살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게 한다. 마치 영화 초반 마술쇼 시퀀스처럼 유로와 인민폐 중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눈속임인지 알 수 없다. 산밍이 눈속임 꾼들에게 칼을 들이밀듯 감독은 이런 딜레마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이것은 단순히 공산주의, 사회주의 제도를 표방하며 속은 자본주의, 전체주의로 썩어들어가는 중국 사회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화를 경험했던 또는 경험 중인 모든 나라와 모든 문화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다.
산밍은 과거 3,000위안에 부인을 맞이했고 결혼 생활 내내 그녀에게 잘했다. 하지만 철없던 부인은 딸을 데리고 그를 떠났고 이제 와서야 다시 산밍과 함께할 마음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산밍은 강태공처럼 부인에게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 말하지 않는다. 부인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 30,000위안이나 되었지만, 1년 후에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기며 삼협을 떠난다. 1년 만에 3만 위안을 모을 수 있을지, 1년 뒤 삼협은 또 얼마나 더 깊은 물에 잠길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소중한 무언가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나사가 되려 떠나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자 잠식되었던 나의 소중한 것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바뀔 세계가 또 내 어떤 부분을 잠식할지 두렵다. 하지만 그간 그랬듯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태우며 단발적이지만 확실한 안식이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계속해서 살아가려는 마음을 꺾이게 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