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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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_2018__★: 4.5/5
한줄평: 폭죽같은, 평온한 아침 같은, 불어나는 강물 같은 사랑
시작 전, 캐릭터들 이름에 담긴 뜻을 알고 시작하면 이해하기 좋다.
아사코 = 새벽(朝子) / 순수함(浅子) / 새로운 시작(旦子)
바쿠 = 폭발(爆) / 보리, 밀(麦) / 동물 타피르(타피르)
료헤이 = 좋고 평화로운(良平) / 극복하여 찾는 평화(凌平)
영화를 총 3부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아사코와 바쿠,
2부는 료헤이와 아사코,
3부는 료헤이와 바쿠 사이에서 갈등하고 선택하는 아사코다.
1부 <폭죽>
첫 시퀀스에선 폭죽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아사코가 아이들을 지나칠 때, 폭죽엔 불이 붙지 않는다.
사진 전시회에 들어선 아사코는 바쿠를 보고 홀린 듯 그의 뒤를 따른다.
바쿠를 따라 다시 바깥으로 나오니 조금 전 지나쳤던 아이들의 폭죽에 불이 붙어 폭발한다.
폭죽 소리에 뒤를 돌아본 바쿠는 폭죽이 아닌 아사코와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짧은 통성명을 나누고 키스한다.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난 사랑을 폭죽의 점화와 폭발로 설득하는 첫 시퀀스만으로도 영화에 깊이 빠져든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에 단둘만 남은 듯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그러던 중 어느 밤, 바쿠는 다음 날 아침에 먹을 빵을 사겠다며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밤을 지새운 아사코는 불안해져 바쿠를 찾는다.
새벽에 돌아온 바쿠는 거짓말 같은 사연을 늘어놓으며 빵을 사 오지 못했다 말한다.
두 사람은 서로 꼭 끌어안는다. 그리고 바쿠는 아사코에게 다시 떠난다 해도 꼭 돌아오겠다 약속한다.
이후 신발을 사러 간다는 바쿠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아사코의 나레이션으로 1부가 끝난다.
빵 소동이 있던 날처럼,
빵(바쿠)은 없이 아침(아사코)만 밝은 날처럼 아사코는 홀로 남는다.
그렇게 너무나도 아름답고 빛났지만, 짧게 스쳐간 뒤 다시 어둠에 잠식되는 폭죽같은 사랑이 끝난다.
2부 <평온한 아침>
1부가 아사코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면, 2부는 료헤이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도쿄로 일터를 옮긴 료헤이는 아사코를 만난다.
아사코는 바쿠와 똑같은 외모의 료헤이를 보고 그를 바쿠라 착각한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아사코는 자리를 피하는데, 이 사건 이후 오히려 료헤이가 아사코에게 관심을 보인다.
료헤이가 아사코와 가까워지려 할수록,
아사코는 그를 밀어낸다.
영화 연출과 배우의 연기는 이때의 아사코 심리를 잘 표현한다.
이때의 아사코는 1부처럼 순수하게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다.
순수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대상 자체에 이질적인 것이 섞이지 않음을 말한다.
과거 아사코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점화하고 폭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바쿠를 사랑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2부의 아사코는 순수하지 않다.
순수의 반대말은 불순이지만, 2부의 아사코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한 반대말로 '복잡'이 옳다.
료헤이에게 설령 마음이 있다 해도, 그 이유가 바쿠와 닮았다는 이유라는 것, 그리고 혹시나 돌아올지 모르는 바쿠.
이런 것들이 아사코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다시 만나지 말자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지기로 한다.
심란해진 료헤이는 아사코를 찾아 나서는데 이때 지진이 발생한다.
분주한 사람들 사이 혼란스럽게 걷던 료헤이는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어쩌면 자신을 기다리는 아사코를 만난다.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하며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그렇게 아사코는 다시 순수한 사랑을 되찾고
료헤이는 평온한 사랑을 만난다.
이를 축하하듯 지진으로 혼란스러운 밤이 지나고, 고요한 아침이 찾아오며 태양이 밝게 빛난다.
그렇게 2부는 끝난다.
3부 <불어나는 강물>
아사코와 료헤이는 5년의 시간을 함께한다.
두 사람은 결혼을 꿈꾸며 오사카로 향하고 집을 구매한다.
집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다. 료헤이는 홍수를 걱정한다.
오사카는 과거 아사코와 바쿠가 서로 사랑했던 곳이다.
그리고 바쿠가 다시 아사코를 찾아온다.
료헤이를 저버리고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나는 아사코를 보며 관객들은 탄식하게 되지만,
아사코가 아직 바쿠를 잊지 못했다는 사실을 3부 첫 시퀀스에서 확인된다.
첫 시퀀스에서 두 사람은 함께 아침밥을 먹는다.
조금 이상하다 느낀 것은, 함께 사는 두 사람이 한 식탁에서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사코는 식빵을 먹는다.
그 빵은 보는 사람에 따라 1부에서 바쿠가 끝내 가져오지 못한 빵처럼 보일 수도 있다.
버림받은 료헤이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에 빠진다.
아사코의 마지막 부탁대로 짐과 고양이를 그녀의 집에 보내려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선언한 아사코는 하루아침에 돌아온다.
어떻게 된 것일까?
바쿠를 따라가던 아사코는 깨닫는다.
바쿠를 사랑했던 이유로 료헤이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료헤이를 사랑했던 이유로 바쿠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아사코는 오랜만에 바쿠를 만나 다시 사랑이 점화하고 폭발하지만,
이윽고 찾아올 어둠과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아침에 더욱 필요한 것은 료헤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바쿠는 료헤이에게 가겠다 말하는 아사코를 태워다 주겠다 한다.
하지만 아사코를 이를 거절한다.
처음 료헤이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바쿠였다면
다시 료헤이를 사랑할 마음엔 바쿠의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루 만에 돌아온 아사코를 보며 료헤이는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짐도 다 보냈고 고양이는 버렸는데 무슨 낯짝으로 찾아오느냐 말한다.
아사코는 고양이를 다시 찾아오겠다 말하며 떠난다.
아무리 찾아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비도 내린다.
강가를 거닐며 고양이를 찾던 아사코는 근처를 지나가던 료헤이를 보고 다시 사과하기 위해 뒤따른다.
료헤이는 달아나고
아사코는 필사적으로 뒤따른다.
영화는 이 추격씬을 아주 멀리서 길게 보여주는데
이 연출은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이전 1, 2부의 사랑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한다.
정말 료헤이는 아사코를 맘속에서 완전히 지운 것일까.
아니다.
버렸다던 고양이와 이미 보냈다던 짐들이 아직 료헤이의 집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영원히 널 믿지 못 할 거야'라는 료헤이의 대사처럼 앙금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비 때문에 강물이 불어나고 거세진다.
료헤이는 더러운 강이라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짧은 침묵 후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답다 말한다.
료헤이의 굳었던 표정이 점점 부드러워진다.
마치며
강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불어나는 강물처럼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사랑은 더 이상 폭발적이고 순수하지도, 평온하고 다정하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난관이 두 사람을 기다린다.
시련은 료헤이의 말처럼 아프고, 무섭고, 더럽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아사코의 말처럼 두 사람이 함께 시련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일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좋은 감독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봉준호는 계급 전쟁 세계를,
박찬욱은 인간 딜레마 세계를,
나홍진은 선보다 강한 악과 믿음의 세계를 구축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세계는 가장 철학적이고 인간 탐구적이다.
때로는 불확실한 삶을 조명하는 방식으로(드라이브 마이 카)
때로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 세계의 순리로(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사코에선 사랑으로
인간을 설명하려 노력한다.
폭죽같은 사랑을 지나 평온한 사랑을 떠나보내고 불어나는 강물 앞에선 아사코의 모든 선택으로
감독은 인간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질문한다.
연출 방식이 다소 은유적이고, 지루하다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의 어떤 영화든 장면과 대사를 곱씹으면 조미료에 가려 그동안 느끼지 못한 생식(生食)의 즐거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