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시간을 건너온 이름들,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남기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지워지지 않게 붙잡는 일이다. 고려인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했기에 무심해지기 쉬운 존재들, 경계에 놓인 삶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에게서 나를 보았다.
2016년, 나는 처음으로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카자흐스탄의 공항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공기의 낯섦, 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든 골목에 들어선 듯한 이상한 친밀감. 그렇게 나는 100여 일간 고려인의 흔적을 따라다녔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와 시베리아, 사할린과 캄차카까지. 지도로 보면 낯선 국경들이지만, 그 안엔 분명히 우리와 연결된 삶들이 있었다.
고려인. 한때 조선인이라 불렸고,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카레이스키’라 불렸던 이들. 1937년, 수십만 명이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보내졌다. 그들은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지만, 버티고 살아남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손으로 집을 지었고, 한국말을 잊지 않기 위해 몰래 말을 배웠으며, 음식 속에 문화의 조각들을 숨겨 놓았다.
사진 속 그들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웃음 뒤에 감춰진 무게를 알았다. 어쩌면 그 무게는 우리의 과거가 짊어진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업은 단순히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와 그들 사이에 놓인 먼 시간과 공간을 되돌아가는, 일종의 귀향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식탁 앞에 앉았다. 김치를 꺼내주는 손, 찹쌀떡을 내미는 웃음, 사진 한 장을 꺼내며 조심스레 말을 잇는 어르신들. 언어는 달랐지만 마음은 하나였다. 그들은 말한다. “우린 조용한 민족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울림을 들었다. 생존을 위한 고요,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이어주려는 목소리 없는 외침을.
그들의 침묵은 무기력함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면, 너무 많이 잃게 되는 시절이었다. 말 대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만들었다. 언어는 사라졌지만, 리듬은 남았다. 말은 잊었지만, 노래는 불렸다. 그렇게 그들은 문화를 지키고, 존재를 지켜냈다.
젊은 세대는 BTS를 말하고, K-드라마를 본다. 한국을 동경하며 한글을 배우고,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강제 이주의 1세대들이 넘어간 경계의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고려인이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였는가? 그들은 단지 과거의 유산인가, 아니면 아직 말하지 못한 미래의 한 조각인가?
경계인으로 살아온 시간은 때론 분열이고, 때론 유산이다. 내가 찍은 얼굴들 속엔 슬픔과 회한만이 아니라, 그 모든 걸 견뎌낸 긍지가 있었다. 고개를 치켜들고 카메라를 응시하던 소녀의 눈빛, 한복을 꺼내 입고 손주를 앉힌 노인의 손짓. 그 모든 장면이 “나는 여기 있었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어 붙이려 했다. 그들은 생존자이자 창조자였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낸 이들. 하지만 그 창조는 언제나 조용했다. 소란스러움 없이 뿌리를 내렸고, 웅변 대신 일상으로 증명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을 오래 들었다. 긴 침묵 뒤에야 조심스레 내뱉는 단어들. 그 안엔 전 세대의 기억이 묻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르포르타주도, 민속학 보고서도 아니다. 하나의 얼굴을, 하나의 표정을, 하나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한 시도다. 나는 이들의 삶에서 나를 보았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 마음. 언젠가의 고향을 떠올리며 애써 웃는 그 얼굴.
기억은 늘 흐릿해지지만, 얼굴만은 또렷이 남는다. 그 얼굴을 지우지 않기 위해,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남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증언이 되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누군가에게 새로운 질문이 되길 바란다.
우리 모두에게 고향은 하나지만, 그 고향으로 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 이 이야기는 그중 하나의 길이다.
돌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