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이스크라의 침묵,
눈빛으로 남은 작별

경계에 선 사람들, <고려인> 그 두번째 이야기

by 김진석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오래된 골목길, 햇빛 한 줄기 닿지 않는 서늘한 끝자락에서 화가 신 이스크라를 만났다. 대문 앞 평상에 조용히 앉아 있던 그녀는 고려인 2세로 독립운동가 전일 선생의 외손녀이자 평생을 붓과 함께 살아온 화가였다.


느릿느릿한 몸짓과 어눌한 말투 때문인지, 처음 인사를 나눈 후에는 많은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녀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몸이 많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말수는 적었고 목소리는 낮고 단정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녀의 존재는 고요한 물결처럼 내게 스며들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외할아버지의 훈장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던 그녀. 그 훈장에는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그리고 평생을 그림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모습에는 디아스포라의 고요한 역사가 겹쳐 보였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했다. 많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던 순간, 그녀는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는 사람처럼 느릿하게 문밖으로 따라 나왔다.


나는 골목을 빠져나와 큰 길로 향했다. 그녀는 말없이 내 옆에 서서, 그저 내 걸음을 천천히 따라 걸었다. 뒤돌아보면 그녀가 있었고, 멀어질수록 그녀의 존재는 점점 더 또렷해졌다.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자식을 배웅하는 어머니처럼, 손을 뻗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닿아오는 듯한 배웅이었다.


큰 길을 건너기 전,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뿌리내린 나무처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고요했다. 손을 흔드는 대신, 침묵이 메시지가 되어 흘러나왔다. "나는 여기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서서 자신의 존재를 오롯이 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사진은 찰나를 기록하지만, 그 장면은 백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깊은 감정 그 자체였다.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훔치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카메라를 내리고, 가슴으로 그 장면을 담았다.


강제 이주로부터 백 년, 침묵 속에서 이어진 디아스포라의 서사, 그리고 사라지지 않은 언어와 뿌리가 그녀에게 있었다. 신 이스크라는 그 모든 것을 그림도, 언어도 아닌 그저 '존재'만으로 보여주었다.


그녀의 작별은 말이 아니라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나에게 오래도록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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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1) 신 화백의 작업실, 2) 신 화백과 손자, 3) 외할아버지 전일 선생의 독립유공 훈장. 2019.4.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photo by 김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