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하지 못할 글
벨소리 아래로 이름 하나가 떠오른다. 여동생의 전화다. 스쳐 지나가는 예감 하나를 붙잡았다. 며칠 전, 가슴 위로 묵직하게 내려앉은 그 감각이 현실 위로 덧씌워지는 순간이다. 마지막 만남임을 예상하던, 그날부터 원치 않았던 전화 한 통이다.
아버지가 쵸파를 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었다. 우연히 여동생네 집을 들렀던 어머니가 쵸파의 상태를 아버지에게 전한 덕분이다. 시간에 맞춰 여동생네 집으로 들어섰다. 거친 쇳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집안이 조용하다. 여느 때라면 짜증과 반가움을 섞어 맹렬하게 짖어댔을 터인데. 제 담요 위에 늘어지듯 누워있는 쵸파는 헥헥거리는 숨소리만 낼뿐,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이틀 전, 장판을 밀어내는 타박거리는 발소리로 집안을 메웠던 녀석이다. 품에 안겨있던 조카가 일어날 때면, 저도 안아달라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던 작은 녀석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힘이 없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상태가 악화되었다.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지는 일은 잦았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마지노선을 목전에 두고 간신히 뒷걸음질하듯 생을 이어 나가주던 쵸파다. 힘겹게 눈을 뜨고 시선을 맞추는 녀석을 품에 안아 들며, 떨리는 손끝을 간신히 부여잡는다. 익숙하게 안아 들던 그 작은 몸이, 혹여라도 부서질까. 혹여 깨지기라도 할까. 두려움이 담겨 떨림이 쉬이 멎지 않는다.
15년의 인연이다. 아침까지 공부를 하다 한낮에 눈을 떴을 때, 아버지의 몸 위에 작고 하얀 털뭉치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첫 만남 이후로, 여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는 시간까지 총 8년을 함께 살았었다. 여동생이 결혼을 하며 쵸파를 데려갔지만,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집으로 데려와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었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그 집에 내가 들어가 살기 시작하며 다시 쵸파와 함께하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위아랫집이라는 가까운 거리 덕분이다. 그렇게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익숙하게 안아 들었던 작은 몸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다르다. 작은 힘 하나에도 통증이 생겨날까, 앞서는 두려움이 낯설음마저 만들어내 버린다.
여동생이 후회를 담은 한숨을 내뱉었던 날이 있었다. 심장병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작년 10월, 둘째를 품에 안고 있던 여동생은 남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현재의 상태로는 반년, 길면 일 년이라던 잔인한 선고. 미리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걸- 차마 다른 가족들에게 내뱉지 못한 말을 내 앞에서 조용히 토해냈었다. 선고받았던 일 년의 시간은 이미 지났다. 그리고 2개월이라는 시간을 더 버텨주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더라도, 악화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심장박동 사이마다 덜컥거리는 불협화음이 새겨졌다. 한 손으로 가려지는 작은 얼굴을 조심스레 받쳐주며, 조금이나마 호흡이 편해지기를 바란다. 서로 번갈아 한숨을 주고받을 뿐, 나와 여동생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자동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던 녀석이 힘없이 늘어트렸던 고개를 든다. 열린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이닥치지만, 창 턱에 고개를 올린 채 풍경을 즐긴다. 거칠던 숨이 바람 소리에 묻힌다. 즐거움인지, 편치 않은 호흡인지, 아마 그 둘이 섞인 듯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쵸파를 단단히 부여잡는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고, 어머니 품에 쵸파를 조심스레 안겨준다.
"오늘 기운이 없어서, 아예 못 일어나."
미동 없이 품에 안기는 그 모습에 어머니의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잔뜩 짜증을 섞어 으르렁댔을 녀석이다. 그럴 기운조차 없이 축 늘어진 모습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녀석을 한 두 차례 쓰다듬을 뿐이다. 거친 숨소리에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안는 자세를 바꿔본다. 한쪽 팔로 미묘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자, 거칠던 호흡이 조금이나마 안정된다.
"심장이 너무 커져버려서, 폐를 짓눌러서 그래."
호흡기 치료를 위한 약을 이젠 아무리 많이 써도 효과가 없다. 그저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마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조금이나마 완화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뒤를 잇지 못하는 어머니의 말에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는다. 불과 9개월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어머니다. 힘겨워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이별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그 마음만은 서로에게 전해진다.
"강아지들은 기억력이 좋다더니, 얘도 그렇네."
쵸파를 보며 여동생이 말을 꺼낸다. 어느새 제 집인 양 편안해진 모습 덕분이다. 그렇지, 여기도 네 집이지-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물이 점점 짙게 묻어나기 시작한다. 그 눈물을 닦아주기라도 하고 싶은 것인지, 쵸파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어머니와 눈을 마주친다. 여동생이 어머니에게 간식 몇 개를 건넨다. 기운 없이 늘어져있던 녀석이 그제야 꼬리를 흔들며 간식을 받아먹기 시작한다.
"밥은 잘 먹엄시냐."
"너무 잘 먹고 있지."
"밥이라도 잘 먹으난 다행이네, 다행이야."
간식을 먹고 방긋 웃는 쵸파를 어머니가 연신 쓰다듬는다. 다시 품에 안아 조심스러운 손길로 작은 몸을 스친다. 쵸파와 함께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눈에 박힌다. 예감을 넘어선, 하나의 확신과도 같은 생각이 떠올라,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겠구나. 이제 더 이상 이 장면을 마주할 수 없겠구나. 어머니의 울먹임에도 꾹 눌러 담던 눈물이 그제야 새어 나오려는 듯, 눈가가 뜨거워진다. 너무 예뻐서, 그래서 더 아픈 장면은 아마 지워지지 않을 테다.
아버지는 그저 팔을 뻗어 쵸파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는다.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마지막 애정을 담는다. 처음 왔던 그날처럼, 아버지의 몸 위에 올라앉은 녀석은 여전히 작고 하얀 털 뭉치다. 다시 쵸파를 안아 들고 집으로 향한다.
"그래도 애기들 올해 첫 크리스마스 챙길 건데, 그건 보고 가야지."
조심스럽게 쵸파를 안아 들며, 말을 건네지만 장면이 그려지질 않는다. 자주 싸우면서도, 종종 때리거나 물기도 하면서도, 서로를 가장 좋아하는 조카와 쵸파가 함께하는 그 모습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그 날은, 작은 트리 앞에서 탄성을 자아낼 조카의 곁이 허전하다.
그리고 며칠 뒤, 울려온 여동생의 전화다. 전화를 받고 짧은 대답으로 전화를 끊는다. 이제 내려갈게-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 길게 내뱉은 숨이 떨린다. 담담한 여동생의 목소리가 더 아프다. 가장 마음이 아플 아이인데, 가족들 걱정에 슬픔을 억누르는 그 목소리가 길게 여운으로 남는다.
"언니, 쵸파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