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소리를 응시하게 되었다.

작은 불안이 반복될 때.

by 연하일휘

손끝에 닿는 열기를 온몸으로 품는다. 작은 몸뚱이가 뜨겁다. 힘에 겨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칭얼대는 이 작은 것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는 말만을 읊조린다.


쵸파를 떠나보낸 직후다. 작은 것의 빈자리를 알아 채기도 전에, 조카가 앓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품에는 아직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둘째가 안겨있다. 제 엄마의 품을 대신해, 첫째 조카를 안아 들었다. 쵸파를 떠나보냈다는 슬픔에 잠식될 여유는 없었다. 그저 품 안의 작은 열기가 사그라들기만을 바라는 시간뿐이었다.


발그레한 뺨을 부비는 조카를 안아 든 채, 집안을 서성인다. 열기가 따스함으로 바뀔 무렵, 이 두 작은 녀석들은 뒤늦은 독감 판정을 받았다. 등 위를 쓸어내리던 손길에 얹히던 짐작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었다. 조카의 열기가 전해진 듯, 내가 내뱉는 숨의 온도가 점차 올라갔다. 그 후 나는 생애 첫 독감을 앓았다.


새하얀 공간은 고요하다. 병원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본다. 방울지며 떨어지는 액체가 긴 관을 지나 바늘을 통해 몸으로 스며든다. 내쉬는 숨이 입술을 달구던 감각이 점차 가라앉는다. 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아이들의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다. 링거를 다 맞은 후, 바닥으로 끌어당겨지는 몸을 이끌고 문이 닫힌 학원으로 향했다. 빈 수업 시간 동안 아이들이 풀어야 하는 문제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학년별로, 반별로 문제들을 정리한 뒤에야 비로소 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두꺼운 이불속을 파고들자, 조로가 다가와선 코 끝을 핥는다. 누나 아파- 들리지 않을 목소리를 웅얼거리다, 작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분명 아픔은 호전되었다. 하지만 주책없는 눈물이 괜스레 눈가에 고인다. 이건 몸이 아픈 탓이다. 지쳐버린 몸에 찾아온 통증이 잠시 감정을 짓누른 탓일 테다. 고요한 집에서 두 숨소리만 들려온다. 며칠간 고립된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빠진 수업 시수만큼 추가된 보충 수업과 시험대비를 위한 보충 수업들이 복잡하게 얽혀 버렸다. 충분히 회복되었다는 생각과 달리, 소진되어 버린 기력이 쉽게 보충되지 않는다. 평소보다 늦어지는 퇴근 시간 덕분일까. 집에 들어설 때마다 들리던 바닥을 차올리는 작은 발바닥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귀가 들리지 않는 강아지는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잠에서 깨어나곤 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늦은 퇴근 덕분에 나를 반겨주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방으로 들어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잠든 강아지의 모습을 응시한다. 네 개의 다리를 길게 늘인 채, 미동도 없이 잠이 들어 있다. 그 위로 쵸파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진다. 쓰다듬는 손길에도 딱딱하게 굳은 채, 천천히 온기를 잃어가던, 그 감촉이 여전히 손에 남아있다. 짧게 숨을 삼키고 손을 뻗는다. 부드러운 감촉 위로 따스한 열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천천히 고개를 들며 반가움을 표하는 녀석을 끌어안는다.


네가 가장 먼저 떠날 줄 알았었는데.


지병과 나이, 이 둘로 인해 가장 먼저 이별을 고하리라 생각했던 녀석이 늦게까지 내 곁을 지켜준다. 그저 누나가 안아준다는 사실 하나가 기쁜 녀석이 품 안에서 애교를 부린다. 그 뒤로도 잠든 강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게 작은 변화가 생겨버렸다. 가슴팍의 오르내림을 응시하게 되었다. 작은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불현듯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할 때마다, 눈가를 짓누르는 통증을 견디는 순간이 늘어났다.


바쁜 시간이 지나고, 아픈 몸이 회복되었다. 여유가 생겨났지만, 무언가가 어긋났다. 스스로 내뱉은 한숨이 균열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일까. 중심을 잡지 못한 일상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던, 악성으로 판정받았던 강아지의 종양이 더 커진 것을 발견한 후, 나는 다시 새하얀 공간에서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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