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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ug 12. 2020

느낌이 중요해

셀프 툇마루 만들기

오~! 얼마만의 해님이신가. 이불을 널고 수북이 쌓인 빨래부터 돌렸다. 새집이라 습한 정도가 덜하긴 했지만 긴 장마에 장사 없나 보다. 결국 보일러를 돌려서 습기를 날려야만 했다.


길고 긴 장마에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우리 집 툇마루다. 말이 툇마루지 원목 탁자 세 개를 얼기설기 붙여 놓은 것이다. 하나는 우리가 쓰던 것이고, 하나는 친구네 집에 쓰지 않던 것을 가져온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당근 마켓에서 돈 만원 주고 사 온 것이다. 크기는 엇비슷하지만 무늬와 색깔이 각양각색이라 이 구역에서 가장 유니크한 툇마루가 탄생했다.


삼색 퀼트형? 툇마루


원래 이 자리에는 데크를 놓을 계획이었다. 같이 입주한 옆집은 일찌감치 튼튼하고 훌륭한 데크를 놓았다. 마무리가 안 된 듯 어수선한 우리 집과 달리 번듯하고 깔끔한 옆집 데크가 마냥 부러웠다. 집 지으면서 수도 없이 많이 들었던 말-집 지을 때 싹 새로 하는 게 좋다, 나중에 따로 하려면 비싸다는 말이 맴돌았지만 우리는 데크 설치를 유보했다. 당장 예산도 빠듯했지만, 데크의 쓰임과 크기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옆집처럼 널따란 데크를 놓을지, 남편의 로망인 툇마루를 짜넣을지, 크기는 어떻게 할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간에 쫓겨서 엉겁결에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좀 어수선하더라도 살면서 쓰임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고 재정적인 여유가 생기면 하기로 했다.


다만 마당에서 거실로 오르내리려면 댓돌이 필요해서 버리려고 했던 탁자를 임시로 가져다 놓았다. 어! 이 느낌 뭐지?


이거 툇마루 느낌이 나."


살짝 툇마루 느낌이 났고 무엇보다 마당에서 거실로  드나들기가 매우 편했다. 비슷한 걸 주워다가 붙여보기로 했다. 마침 친구 집에 안 쓰는 원목 탁자를 우리가 공짜로 업어왔고, 당근에서 노부부가 쓰시던 시베리아 홍송 원목 탁자를 돈 만원에 모셔왔다. 오~~~!!! 이 느낌! 어설펐지만 그럴듯했다. 고급스럽진 않아도 퀼트 이불처럼 따뜻하고 빈티지스러운 멋이 느껴졌다(고 믿는다). 남이 어찌 보던 뭔 상관인가. 적어도 우리 눈에 훌륭한 툇마루가 탄생했다. 남편과 나는 단돈 만원으로 툇마루를 해결하고 툇마루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이거 좋다며.... 200% 만족감에 시시덕거렸다.


원목탁자로 툇마루를 만들고 댓돌로 침목을 놓았다


이제 바니쉬 작업만 하면 완벽하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바니쉬 오일이 오는 사이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루이틀3흘4흘 지나도 그치지 않아 속이 타들어갔다. 비가 마를 새가 없으니 굵은 원목도 못 견디겠는지 약간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야속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돈 만원에 툇마루가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겨우 며칠짜리였던가.


긴 장마 끝에 비가 그쳤다. 마른걸레로 물기를 훔치고 두고 보는 중이다. 과연 셀프 툇마루, 빈티지 툇마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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