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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ug 26. 2020

세상에 하나 뿐인 싱크대

고군분투 싱크대 제작기


오, 유럽 스타일 주방인데!"


독일에서 수년을 살다 온 친구가 우리 집 싱크대를 보더니 말했다. 얼마 전 집 구경하러 오신 이웃 분들은 우리 집 주방을 일본식 주방이라고 하셨다. 집이 아니라 카페 주방 같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냥 우리식 주방일 뿐이에요, 하고 겸손을 떨지만, 속으론 자부심 뿜뿜이다. 유럽식이니 일본식이니 그런 말들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감행했던 무모한 모험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우리 집 주방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이유는 우리 집 싱크대가 특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스타일을 추구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값싸고 튼튼하게, 그리고 우리의 취향을 아주 조금만 녹여내고 싶었다. 오랜 고민 끝에 싱크대 가격과 내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과 서랍을 떼어버리고 오픈 수납장 형식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리의 계획을 알렸을 때 주위에서 다들 뜯어말렸다. 주방 살림 다 드러나서 정신없다, 먼지 쌓여서 지저분하다 등등. 싱크대 하라고 돈을 빌려준다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비싸지 않지만 유니크한 우리만의 싱크대를 만들어 보기로 의기투합했다.


카페 인테리어를 주로 하시는 분을 소개받았다. 우리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우리 예산은 300만 원 이하라고 했다.(아, 아일랜드 식탁, 싱크볼, 수전, 쿡탑, 후드까지 모두 포함해서ㅎ) 사장님은 집 잘 지어놓고 싱크대는 왜 그렇게 하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하지만 오랜 대화 끝에 우리에게 설득되신 건지 아니면 우리가 가여웠던 건지 우리의 모험에 동참하시기로 하셨다. 그 대신 싱크볼과 수전, 쿡탑, 후드는 우리가 직접 사 오는 조건이었다. 돈이 없으면 발품이라도 팔아야 한 생각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싱크대 디자인을 말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하셨다. 순간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고 아득해졌다. 대략의 콘셉트는 있지만 디테일한 고민을 못한 탓이다. 남편은 내가 잠든 사이 딸아이의 스케치북에 싱크대를 쓱쓱 그려놓고 출근하시었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남편의 그림을 아주 흡족해하시며, 스케치를 액자에 넣어 새 집에 걸어두면 좋겠다고 하셨다.


남편이 그린 싱크대


남편은 밤새 서핑을 하더니 내 마음에 쏙 드는 유니크한 싱크볼도 찾아냈다. 백조 싱크에서 작년 말에 출시한 유럽식 '팜 싱크'였는데, 재료인 스테인리스가 전면에 노출된 싱크볼이었다. 화면으로 보기엔 유니크하고 예뻐 보이는데 혹시 몰라서 청계천에 있는 본사 쇼룸까지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구매를 결정했다. 안내한 직원이 팜 싱크는 우리나라 아파트 구조와 맞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까지 딱 3대만 팔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더 구미가 당겼다.


쇼룸에 전시된 백조 팜싱크


쿡탑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쿡탑으로 바꾸는 추세지만 난 불꽃이 보이는 가스쿡탑을 좋아한다. 가스쿡탑은 전기쿡탑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후드 구멍이 잘못 뚫려 있어서 후드 고르기가 쉽지 않았는데 남편이 밤새 검색하여 인터넷으로 검은색 침니 후드를 구매했고, 아버지와 밤에 가서 직접 설치했다.


사장님이 보내주신 싱크대 모습


고민이 깊으신 걸까? 우리 싱크대는 입주하는 날까지도 완성이 되지 않았다. 인테리어 사장님이 근래 들어 돈은 안 되면서 가장 머리가 아픈 작업이라고 하셨다. 그런 작업을 맡긴 우리는 죄인처럼 마냥 찌그러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사장님에게 연락해보라고 보챘지만 난 조용히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돈을 많이 못 드리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자는 생각이었다. 싱크대가 없는 동안 천사 같은 친구가 보내 준 긴급구호물품으로 연명하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친구가 보내준 긴급구호물품


일주일 뒤 대망의 그날이 밝았다. 도대체 어떤 싱크대일까. 너무 궁금했고,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개망하면 어쩌지. 마음 졸이며 설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오오~~!!! 느낌 있다!


각 파이프와 합판, 월넛으로 마감된 싱크대


이제 상판 얹고 대한민국에서 딱 3대 팔렸다는 싱크볼이 올라갈 차례다. 한샘에서 상판 작업하러 오신 분이 20년 싱크대 상판 작업을 해왔지만 살다 살다 이런 희한한 싱크볼과 싱크대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시원한 음료수와 물수건, 선풍기를 대령하며 연신 죄송하다며, 굽신거렸다. 그렇게 죄인 된 심정으로 지켜본 상판 작업이 끝났다. 오!!! 괜찮다. 솔직히 돈만 있으면 팁이라도 더 얹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 싱크대와 사투를 벌이신 두분께 감사를!
상판 설치 후


이렇게 세상에 하나뿐인 싱크대가 완성되었다. 앞서 셀프 시공한 타일까지 포함해서 피, 땀, 눈물, 콧물 서린 우리 집 주방이다.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한다. 물론 가격 대비 그렇다는 말이다. 문, 서랍이 없고, 보통 막혀 있는 맨 아래칸까지 뻥뻥 뚫려 있어서 수납이 정말 많이 된다. 싱크볼 아래가 뻥 뚫려 있어서 통풍이 잘 되고, 발이 아래로 쏙 들어가서 설거지하기가 편하다. 특히 앞치마처럼 전면이 노출되어 있는 면에 배를 대고 기대어 일하면 너무 편하다. 불안하게 지켜보던 엄마도 인정했다. 본의 아니게 인체공학적 디자인이 탄생했다. 무엇보다 뻔하지 않고 변화가 자유롭다. 필요에 따라 계속 배치를 바꿀 수도 있고, 바구니나 바란스 커튼, 키친 크로스를 바꾸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다. 보면 볼수록, 쓰면 쓸수록 마음에 든다. 역시 모험은 하고 볼 일이다.  물론 그에 뒤 따르는 생고생은 덤이다. 혼자서는 절대 못 했을 것 같다. 역시 동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끝나고 이토록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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