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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ug 27. 2020

나무를 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뒷집 할머니의 배롱나무

긴긴 장마와 코로나19로 인한 유폐생활, 그리고 최근 차고 넘치는 답답한 일들 속에서 나의 숨통을 틔워준 것은 다름 아닌 키 작은 나무 한 그루였다.



우리  거실 , 주방 창으로 들어온 나무  그루는 뒷집 할머니 앞마당 나무다. 이사   나무가 눈에 들어와서 할머니한테 무슨 나무인지 물었다. 할머니는 나무 이름은 말해주시지 않고, '' 꽃이  거라고만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아침 꽃이 폈는지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하루 중에도  번씩 나무를 바라보곤 했다. 삼칠일이 지났을  할머니의 ‘ 나의 그것과는 다름을, 우리의 시간관념에는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가 말한 '' 기다렸다.


꽃 피기 전 배롱나무


한 달쯤 지났을까, 대충 살림살이가 자리 잡아갈 무렵, 꽃이 잠깐 피고 말았나 생각할 무렵, 나무 위쪽이 불긋불긋해지는 것을 보았다. 지척의 거리지만 옥수수의 높은 키에 가려져 있기도 해서 그 붉은 색이 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붉은 기색이 나무 전체로 퍼졌고, 색도 선명해졌다. 마침 밭에 일하러 나온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저 붉은색이 꽃이에요?”

할머니가 그렇다고 하셨다. 뭔가 홀린 듯 했다. 너무 예뻤다. 할머니에게 다시 나무 이름을 물었더니 그제서야 '나무 백일홍’이라는 대답을 얻었다. 휴대폰으로 검색해보고서야 나무 백일홍이 배롱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며 그런 재미있는 이름의 꽃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느 여름 순천 송광사에서 흐드러지게 핀 것을 실제로 보았더랬다. 그 배롱나무 꽃을 내 집 안방에서 이렇게 실컷 오래도록 보게 될 줄이야.



배롱나무 꽃


1년간 집을 짓는 고단함, 오랜 코로나 19 상황, 그리고 여러 가지로 충격이고 상처일 수밖에 없었던 최근 현실들을 저 배롱나무를 보며 달래고 달랬다. 저 할머니의 배롱나무를 보며 나도 나무 심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뜻은 없다. 할머니의 배롱나무가 그랬듯, 내가 심은 나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장마가 끝난 후


배롱나무 꽃은 긴 장마비에 많이 떨어졌고, 남은 꽃들도 약간 빛을 바랐을 뿐 건재하다. 속으로 꽃이 참 오래가네, 생각하다 백일동안 꽃이 피는 백일홍이라는 사실이 떠올맀다. 앞으로 한 달간 저 붉은 빛은 나를 위로하고 달래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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