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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ug 05. 2020

비설거지

소소한 토목공사

비가 오면(아, 비가 오기 시작하면 늦다. 요즘 부쩍 정확도가 떨어지는 일기예보와 뭔가 분주한 새들의 움직임, 그리고 삭신의 쑤심과 멜랑꼴리함의 정도 등을 종합하여 비가 올 것 같으면) 우리는 바빠진다. 제일 먼저 빛의 속도로 빨래를 걷어들여야 한다. 빨래 말고도 마당에서 말리고 있는 것들(채소, 허브, 꽃 등등)도 함께 걷어 들여야 하고,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의자며 신발 등등이 비에 맞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 바로 비설거지다.


장마 때마다 눈가에 염증이 생기는 반려견 여름이도 집안으로 들여야 한다. 하필 털갈이 시즌과 겹쳐 털이 사방팔방으로 풀풀 날려서 난색을 표했지만 남편과 딸은 나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름이를 씻겨 현관에 들여놓았다.


텅 빈 여름이 집


비가 오면 나가는 것도 있다. 집안에서는 시들시들 죽어가던 화분이 밖에서 비를 맞고 비바람에 흔들리다 보면 신기하게 되살아난다.


비설거지를 마치고 창가에 앉아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잔 마시면 세상 행복하다. 그런데 이번 장마는 그런 낭만의 여지가 없다. 새집에 이사 오고 처음 맞는 큰 비인 데다 올해 비가 폭우 수준으로 강하게 쏟아붓고 우기로 불려야 할 만큼 길다 보니 남편은 창문 단속을 하며 혹시 비가 새는 곳은 없는지 새벽같이 일어나 집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서라운드 사운드로 비 소리를 듣다 보니 잠을 설치기도 했다. 집 지으면서 숱하게 들었던 '집은 비 안 새면 된다' 말을 실감하고 있다.



비가 오는 와중에 우리는 소소한 토목공사 중이다. 틈만 나면 동네 산책하며 길거리에 나뒹구는 돌을 하나둘 주워와서 집 기초 하단부를 채우고 있다. 비가 거세게 들이치다 보니 흙이 파이면서 기초가 드러나기도 하고 하얀 집 벽에 흙물이 튀어올라 오염이 되고 있어서 이걸 조금이나마 저지시켜보려는 것이다.


동네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움큼쯤 돌을 주워오는 나를 보며 남편이 아니, 어느 세월에 그걸 채우냐며 조경업체에서 한 포대 사서 깔자고 했다. 나는 비용 면에서, 또 소소한 재미 면에서 직접 주워서 까는 고생스러움을 택했고 남편과 딸도 마지못해 동참하고 있다. 처음엔 궁여지책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돌 줍는 재미가 솔솔 하다. 어딜 가도 돌만 보인다. 돌도 표정이 있다. 돌이 말을 걸기도 한다. 어쩌다 둥글둥글 예쁜 돌을 득템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돌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



주택에 살면 장점만큼이나 불편하거나 번거로운 것이 꽤 많다. 주택에 산다는 건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과 번거로움이라는 것이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사는 것이기에 우리를 더욱 생기 있게 살아가게 만든다. 그렇게 믿고 선택한 불편함을 기꺼이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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